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가끔 그런 생각을 혼자 하거든요.
‘이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야. 삶을 흉내만 내고 있지 않은가.’
제가 삶을 사는 방식이 스스로 삶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요. 스스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허용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투덜대고 있다니. 맙소사.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내 삶을 이렇게 직조해 온 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니. 자기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큰 적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요.
책 제목 그대로 저에게 물어 보아요.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정말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너’가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너’가 표현하는 그대로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주체인 ‘나’가 또 다른 나인 ‘너’에게 이야기해요. 절대 ‘나’이어서는 안 된다고 내몰았던 ‘너’에게. 미안하다고. 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위험하다고 해서 미안해. 네가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해서 미안해.
그 말을 들은 ‘너’는 ‘나’에게 뭐라고 할지도 생각해 보아요. 너는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 대접을 받고도 그 ‘너’는 주체답지도 못했던 이 ‘나’를 사랑하니? 내면아이 치유처럼 상상해 보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아요. ‘너’는 좀 서운한 것도 있지만 언제나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아요. 있는 그대로 허용되지 않았던 ‘너’는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할 말이 없다. 마치 모든 것이 네 책임이라는 듯 분풀이하듯 살기도 했는데, 미안해.
심호흡을 하고 쉽사리 묻지 못한 질문을 하나 더 해 보아요. ‘내 삶’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일이 안 풀릴 때면 제 인생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거든요. 세상이 나만 유독 미워하는 듯 기를 쓰고 내가 하려는 일을 훼방 놓는 듯한 느낌. 애초에 이럴 수밖에 없게 짜인 운명인가. 현실과 상관없이 심적으로는 세상 끝에 발이 걸리도록 몰아대는 것이 내 운명인 것만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 내면 깊이 질문을 해 보아요. 정말 그럴까? 내 삶은 정말 나를 미워하는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음을 알아요. 분명해요. 적어도 내 삶이 나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아요. 내가 내 삶을 미워했다면 모를까. 오히려 바톤 터치를 하듯이 내가 삶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면 응원할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내가 삶을 필요로 한 게 아니라 삶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네요. 삶의 중심부로 와 달라고. 네가 나를 터치해 심장을 뛰게 하면 내가 너를 힘껏 응원할 거라고.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는데 질문만 던지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응답도 해 보아요. 내 삶에게, ‘너’에게 츤데레의 탈을 벗고 제 심장을 담아 말해요.
‘너는 정말 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니?’ 누군가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이렇게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었어. 나를 사랑해서 내가 되기 위한 어떤 위험에도 기꺼이 뛰어드는 삶을 살고 있어, 라고 말한다면 그건 나를 기만하는 말이었을 거야. 있는 그대로 내가 드러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느꼈던 거야. 어디든 숨을 수 있는 구석이 있으면 숨고 싶었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나만 혼자 있는 방에서도. 나만이 있는 정신의 공간에서조차 숨고 싶었던 거야.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서는 해 앞에 나서면 안 되잖아. 나는 그림자를 감추고자 어둠으로 도망갔던 건지 몰라. 은밀히 삶 깊숙이 잠복해서 내가 드러날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몰라. 그래야 나의 어떤 연약함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내 삶을 구제하려 했던 건데 사실은 내 숨길을 내가 막고 있던 거였더라. 오랜 시간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어. 나를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표현하는 길은 어떤 길이든 죄다 피해 왔던 거야. 너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어도 되는 권리와 자유로부터 도망쳤던 거야. 하지만 끝끝내 도망갈 수 없었지. 결국 너는 나니까.
네가 참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나를 기다려왔겠어. 푸른 들판에서 두 팔 벌리고 언제든지 나를 기다렸을 너를 상상해. 그만 거기서 나와서 이 탁 트인 공간에서 화창한 햇볕을 쬐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라고 말하고 있던 너. 너에게 말하고 싶어. 미안했어. 그리고 더 이상은 미안해하지 않을게. 언제나 웃으며 나를 기다려 준 것에 고마워. 그 마음을 간직하고 이제까지와 조금은 다르게 살겠노라고 분명히 말할게.
이 편지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내 삶을 살리겠다는 음모 하에 나 스스로 숨길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분명히 알지는 못했어. 오늘에서야 드디어 이 지점에 이르렀네. 앞으로 용기를 낼 거야. 내가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네가 있다면 그런 너를 허용하는 용기. 네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숨길을 터주는 용기. 강함과 약함을 모두 지닌 너와 손을 잡고 세상 속으로 함께 걸어가는 용기. 지금 난 감히 네 심장을 터치할 용기를 내고 있어. 나와 함께 가 주련. 심장 깊숙이 고이 간직한 츤데레의 사랑을 받아줘.
편지 속의 편지. 어쩌다 보니 선생님께 편지를 쓰다가 저 자신과 제 삶에게 편지를 또 썼네요. 츤데레처럼 겉으로는 좀처럼 티 내지 않으려 했던 말들을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촉촉해져요. 살짝 멋쩍기는 해도 그게 제 심장이 용기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었나 봐요. 용기(courage)는 원래 심장(라틴어 cor)을 담고 있다면서요. 용기의 원래 뜻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온 마음을 다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거라고 들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속에 있는 그대로 겉으로 드러내는 것. 저에게 있어서는 속에서 그러하듯 겉으로도 따듯할 수 있는 것이 되겠네요. 이렇게 쓰다 보니 내면의 따듯함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요. 내면의 따듯함을 꺼내다 설령 내 손을 데더라도 있는 그대로 꺼내 보고 싶어요.
편지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전은 나 자신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 모험에 뛰어드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선생님, 상담시간에도 더더욱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위험을 감수하겠어요. 츤데레는 이제 안녕. 심장의 언어로 말하는 모험을 떠나려 해요. 다음 시간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