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츤데레. 아직도 기원을 잘 모르겠는 이 말을 오래 전에 참가했던 집단상담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떤 분이 저에게 츤데레 같다고 했거든요. 그때 생전 처음 들었어요. 유행에 둔감한 선생님도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죠? 저도 몰라서 그 자리에서 물어봤거든요.
“츤데레? 그게 무슨 뜻이에요?”
“겉으로 까칠한 것 같지만 속은 따듯할 사람을 일컫는 말이에요. 선생님 캐릭터하고 비슷한 거 같아요.”
그분이 웃으면서 이야기하셨어요. 음. 그렇게 보였구나. 그때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 어쨌든 속이 따듯한 게 그 집단상담 안에서 들통이 났다는 거니까요. 나중에 가끔 생각나서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봤어요. 그랬더니 내면에서 츤데레의 다른 부분이 부각되더라고요. 좀 더 주목하게 된 부분은 숨겨진 따뜻함이 아니라 겉과 속의 불일치였어요. 이것이 이번 편지를 쓰면서 그때 그 집단상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예요.
‘겉과 속이 다르다.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심리상담 장면의 단골 메뉴잖아요. 저의 츤데레 같은 구석은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보니 진정한 한 인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속마음처럼 겉으로도 따듯할 수는 없는 걸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자 가슴에서 파문이 일어나요. 이런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저에게는 인생의 큰 화두처럼 다가옵니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자기 안에 자기만의 상담사가 살아있으면 상담 종결을 논해도 좋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도 상담을 종결해도 좋다는 신호가 아닐까, 잠시 혼자 희떠운 소리를 하고 지나가요. 제 안에 살아있는 목소리가 이렇게 물어요. ‘무엇이 두렵나요?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꺼내면 어떻게 되나요?’
심쿵. 이런 단어 정도는 선생님도 아시겠지요. 심장이 쿵. 보통은 가슴이 기분 좋게 설렐 때 쓰는 표현이지만 여기서 저는 화들짝 놀랐다는 뜻에서 써요. 무엇이 두렵냐고 묻다니요. 그것은 두려움 자체지요. 많은 내담자들이 걸려 있는 그 지점에 저도 지금 도달했어요.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제대로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것. 있는 그대로 내 속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두려움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오들오들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편지를 계속 씁니다. 여기서 멈추면 상담 효과가 없을 테니까. 그 동안 상담에 쓴 돈과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전진해야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심장의 귀퉁이에서는 이렇게 떠들기도 해요. 나의 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아! 심지어 좋은 점도 보이고 싶지 않아! 그것조차 약함의 표지가 될 수 있어!
내 속을 있는 그대로 내비치는 건 그만큼이나 심히 위험한 일이에요. 실제 위험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긴 해도 심리적으로는 지대한 위험을 느끼지요. 내 속이 드러났다가는 끝장날 거야. 뭐가 어떻게 끝장인지는 다시 생각해도 전혀 알 수 없어요. 그냥 무작정 심장이 내달리면서 머리가 하얘지죠. 밑도 끝도 아무 근거도 없이 위험하다고 소리쳐요. 내 속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가는 죽을 지도 몰라. 그것만은 안 돼. 위험하니까 무조건 회피해. 쓰나미 급 경보를 울리는 편도체의 강력한 신호에 옴짝달싹 못하고 마비가 되어 버릴 것 같아요.
그래도 심리상담으로 다진 도력이 있지요. 이럴 때 쓰라고 배운 각종 심리 기법을 써 먹어요. 위스퍼 하. 알렉산더 테크닉의 호흡법을 따라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추스릅니다. 연약한 제 심장이 울다가 웃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네요. 편도체가 진정된 제 뇌가 급기야 오래 전 필사한 글을 기억에서 꺼내 놓습니다.
웃는 건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다.
눈물 흘리는 건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참 모습을 들킬 위험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건 그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희망을 갖는다는 건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움에 갇힌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자유는 ’갇힌 자유’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정신과 의사 김혜남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라는 책에 인용된 작자 미상의 글이에요. 오랜만에 적고 낭송하면서 목구멍에서 뭔가 뜨겁게 치솟네요. 이런 젠ㅈ, 까지만 할게요. Genuine(진실한)의 첫 발음 ‘젠’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울고 싶은 건지 화를 내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진실한 감정이 실려 있어요. 다시 읽어 봐도 맞는 말뿐이에요. 20대에 큰 감동을 받으며 적어 놓은 글인데. 가끔 읽어 보고는 울먹울먹해져 새롭게 다짐하고는 했는데. 지금 봐도 뜨끔해요. 20대나 지금이나 아직도 나는 충실하지 못하구나. 나는 얼마나 내 삶에 진심인가. 진실한 나를 담아 삶을 살고 있는가.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안전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진실한 나로 사는데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소름이 돋아요. 저런 감동적인 글을 읽고 몇 번을 다짐했어도 평생 똑같이 살고 있다니. 가끔 그런 생각을 혼자 하거든요.
‘이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야. 삶을 흉내만 내고 있지 않은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