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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Feb 10. 2022

감정의 빛과 그림자

모든 감정은 내 친구다.

심리상담에서 가끔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부정적 감정을 안 느끼고 싶어요."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느끼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다. 심리상담은 오히려 더 깊이 더 많이 느끼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느껴지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것을 안전하게 잘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댐에 갇힌 물이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방류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넘치지 않게 더 많이 담아두려고 해도 댐이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용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방류되고 있는 감정이라면 그 흐름을 역행해서 도로 가둘 수는 없습니다. 그저 잘 흘러가도록 길을 터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요.


이른바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낮에 내가 돌아다닐 때는 늘 내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늘 따라니다. 빛이 있는 곳에 있을 때 우리에게는 늘 그림자가 생기지요. 그림자는 한시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빛은 좋은 것이고, 그림자는 나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너무 당연스럽게 여기고 내 몸의 끝에 그림자가 붙어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이와 같습니다. 그림자처럼 나쁜 것이 아니요, 내가 있는 한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또 내 존재에 늘 붙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림자를 보고 나쁘다고 하지 않듯이 부정적 감정을 두고도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감정일 뿐입니다. 그냥 그런 감정이지요.


일단 이해하기 쉽도록 '부정적 감정'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내 그림자가 내 몸이 있기에 생기듯이 부정적 감정도 긍정적 감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긍정적 감정의 그림자 같은 것이 부정적 감정이지요. 둘은 절대 떼려야 뗼 수가 없는 사이입니다. 부정적 감정의 존재 기반은 긍정적 감정입니다.


이렇게 보면 진실이 보입니다. 부정적 감정을 없애고 싶다면 긍정적 감정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아무리 싫어도 긍정적 감정을 함께 폐기 처분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요?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아무 자극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독방에 혼자 벽만 보고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일라고 하지요. 감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잠시 가정을 해 볼까요? 그러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부정적 감정이 싫다고 부정적 감정을 제거하면 긍정적 감정도 함께 제거됩니다. 그림자와 몸은 한 세트니까요. 그렇게 되면 아예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겠지요. 정신적으로 독방에 갇혀 홀로 벽만 보는 상태와 비슷할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을 만나면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자처럼 드리운 이 감정이 사실은 나에게 긍정적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을 기억하는 거예요.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 감정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뜻입니다. 정적 감정을 잘 느끼고 흘려보내면 긍정적 감정을 만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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