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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Feb 09. 2022

내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다면

주목하는 것은 커진다.

심리상담에 와서 '삶이 너무 행복한데, 어떡하죠?'라고 묻는 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들 한 아름의 괴로움을 짊어지고 옵니다. 요새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하지요. 의문이 듭니다. 우리 안에는 왜 이렇게 괴로움이 많은 것일까요?


우리의 뇌는 원래 부정 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뇌는 원래 부정적인 것을 더 잘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원시시대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늑대에게 한 번 물린 적이 있는데 그 다음에 늑대를 만나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가선다면 곤란하겠지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라도록 우리의 뇌는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 진화된 뇌 덕분에 우리는 부정적인 자극에 훨씬 민감하며 부정적인 경험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내가 들은 욕설이나 모욕이 잘 잊히지 않는다면 그건 내 탓이기에 앞서 뇌 탓입니다. 인간의 뇌가 수만 년 동안 그렇게 설계되어 진화해왔다고 과학이 이야기해주잖아요?  


이제 적당히 위로가 됐다면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뇌가 원래 부정 편향이 심하다고 해서 계속해서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럴수록 나만 괴로우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것을 기억에 움켜쥐고 있으려는 뇌의 선천적인 경향을 뛰어넘으려는 노력 말이지요.


내 뇌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부정적인 정보를 쉽게 떠올립니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애써 주의를 돌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도 동등하게 내 삶의 일부입니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기억을 상기하고 그 기억을 음미하는 연습. 감사일기를 쓰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다 같은 맥락입니다. 조금이라도 삶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지요.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자꾸 커집니다. 그리고 강화됩니다. 단단해지고 확정적인 것이 되지요. 부정적인 경험을 되새김질하려는 뇌의 본능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부정적 기분이 나를 잠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본능을 자꾸 돌려세워 내 삶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면 긍정적 기분이 점점 더 커져 내 존재를 채울 수도 있습니다.


내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다면 어느 경험과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가요? 내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느 부분을 형광펜으로 칠하고 싶나요? 눈에 잘 띄게 만들고 싶은 그 부분, 자꾸만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은 어디인가요?


나와 내 삶의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하기. 이는 심지어 부정적인 이야기가 범람하는 심리상담 장면에서도 유효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때는 마음이 상처를 곱씹는 경향도 치유해야 합니다. 정신분석을 받든 트라우마 치료를 받든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일상을 충실히 살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심리치료 과정을 잘 해낼 수 있겠지요.


내가 기억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고 다시 봐도 언제나 좋은 그 경험. 그런 기억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세요. 그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형광펜으로 눈에 띄게 표시를 해두세요. 먼지 낀 책장에서 내 인생이라는 책을 꺼내 볼 때는 그 부분에 주목해서 보세요. 그리고 다시 볼 때는 밑줄도 죽죽 그어 한 번 더 강조하고요. 식물도 관심을 쏟은 만큼 쑥쑥 자란다고 하지요. 내가 주목하는 마음도 점점 더 자라나 튼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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