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가 흔들리는 시간(12)

마음의 감기가 우리 집에 들었다

by 제이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냈다. 사소한 일에 짜증을 냈다. 아이가 우유를 흘리면 소리를 질렀고, 내가 말을 걸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집 안에는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옆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상담을 받아보자고.


그는 처음에는 거부했다. 나는 괜찮아. 그냥 피곤한 거야.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을 설득했다. 결국 함께 병원에 갔다.


둘 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정기적으로 오셔야 해요. 그렇게 우리는 우울증 환자가 됐다. 같은 진단, 같은 병원.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전혀 달랐다.


그는 진단을 받고 더 우울해졌다. 아니, 우울해졌다기보다 면죄부를 받은 사람 같았다. 나는 우울증이니까. 그 말을 방패처럼 들었다. 화를 내도, 짜증을 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우울증이니까. 마치 타당성을 제시하듯이.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우울증인데. 나도 힘든데. 왜 나는 방패가 없는 걸까.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지만 그 절망을 자각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우울증도 그런 것 같았다. 진단을 받는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거기서 어떻게 하느냐가.


치료를 시작하고도 2년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화를 냈고, 여전히 짜증을 냈다. 나는 불안했다. 이게 평생 가는 건가. 우리는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건가. 약만 먹으면 다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울증이 다른 병과 다른 점을 알게 됐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으면 낫는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회복된다. 하지만 우울증은 달랐다.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지만, 감기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그게 중요했다. 약은 도움을 줄 뿐, 걸어가는 것은 본인이었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의 상담은 길지 않았다. 길어봐야 5분. 어떠세요? 좀 나아지셨어요? 그런 질문들. 하지만 그 짧은 5분이 숨통을 틔워줬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5분간 진료를 받고, 약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패턴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2주에 한 번, 그다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지금은 두 달에 한 번.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아이가 세 돌을 지나고 네 돌을 앞둔 지금, 많이 나아졌다. 남편의 약은 열몇 알에서 여섯 알로 줄었다. 나는 이제 두 알만 먹는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볼 때마다 안도했다.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이제는 소소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TV를 보다가 웃기도 하고, 아이 이야기를 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예전처럼 폭탄 옆에서 사는 기분은 아니다. 긴장감이 조금은 풀렸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아이를 보고, 함께 잠든다.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달라졌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안다. 신혼 때 공주님이라 부르던 그 사람, 모든 걸 함께하자고 약속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없다.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우리는 둘 다 변했다. 너무 많은 것을 겪었고, 너무 많이 부서졌다.


사랑은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 설레지 않는다. 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미움도 없다. 원망도 많이 내려놓았다. 그냥 담담하다. 함께 사는 사람. 아이의 아빠. 그 정도.


우리는 이제 공동체다. 아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살아가는 공동체. 사랑이 아니라 책임으로 연결된 관계.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어쩌면 많은 부부가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식은 자리에 책임이 들어서고,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습관이 자리 잡는다.


키르케고르는 또 말했다. 삶은 앞으로 살아가지만 뒤돌아봐야만 이해된다고. 지금 나는 뒤돌아보고 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이해한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일상의 균형을 찾았다. 완벽한 균형은 아니다. 여전히 흔들린다.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힘들다. 하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게 균형이라면 균형이다.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


아이가 우리 사이에서 웃고 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이 아이를 위해 우리는 계속 함께할 것이다. 사랑은 없어도, 공동체로서. 그게 우리가 찾은 균형이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더 나아가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이 없어도, 그래도 앞으로 앞으로.

화, 목 연재
이전 28화꽃대가 흔들리는 시간(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