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가 흔들리는 시간(11)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절망감

by 제이엘

산부인과에 산후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들은 말이었다.


"목에 결절이 있네요."


하지만 크기가 너무 작아서 굳이 조직 검사를 받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놓았다. 결절. 그 단어는 금세 잊혔다. 뇌경색, 산후풍, 코로나. 이미 겪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작은 결절 하나쯤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몸이 자꾸 이상했다. 피곤했다. 늘 피곤했다. 식단에 신경을 써도 살이 계속 쪘다. 무엇보다 피곤하면 목소리가 변했다.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면 목이 잠겨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영영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다 이런가 보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가 자라고 있었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싹이.


아이 두 돌이 지난 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에서는 조직 검사를 하자고 했다. 가느다란 바늘이 목으로 들어갔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아무 일 아니겠지. 그냥 결절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결과가 나왔다. 암이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암. 그 단어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내 귀로 들었는데 내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감정이 밀려왔다. 와, 이런 시련까지 주는구나. 대체 뭘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건가.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인생은 부조리하다고. 의미를 찾으려 해도 세상은 침묵한다고. 그 순간이 그랬다. 왜 나인가. 왜 또 나인가. 뇌경색도 모자라서, 산후풍도 모자라서, 이제는 암인가. 하지만 세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감정의 물결은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았다. 지난 시련 동안 겪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뇌경색으로 왼손이 마비됐을 때, 산후풍으로 온몸이 시렸을 때, 아기가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을 꼬박 밤샜을 때.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래서 이제 초기 암이라는 단어에는 무덤덤했다.


또 이겨내면 된다. 그 생각이 먼저였다. 이미 바닥을 여러 번 찍어본 사람은 안다. 바닥을 찍으면 다시 올라오면 된다는 것을.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야 아이가 산다. 그 생각이 나를 붙들었다.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 되려 하고 있었다. 엄마가 필요한 나이. 엄마 없이는 안 되는 나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족에게 말했다. 친정 부모님은 눈물만 훔쳤다. 또 아프다니. 또 수술이라니. 이미 많이 아팠는데, 또. 그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울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이겨내면 되니까.


남편에게도 말했다. 무덤덤했다. 표정 변화도 없었다. 착한 암이라는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 거라는 말이라도. 손이라도 한번 잡아줬으면.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나 암 환자라고. 이 자식아.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으니까. 그에게서 위로를 구하는 건 마른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았다.


아이 세 돌 전에는 수술을 하고 싶었다. 최대한 수술 날짜를 일찍 잡았다. 준비하고, 입원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전신 마취가 되고,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아팠다. 마취가 다 풀리지도 않았는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제왕절개보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새삼 아기 낳는 게 진짜 아프구나 싶었다. 그때 그 고통을 겪은 여자는 강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수술은 끝났지만, 끝이 아니었다. 갑상선을 잘라냈으니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지금도 갑상선약의 용량을 맞춰가는 중이다. 용량이 맞지 않으면 몸무게가 왔다 갔다 하고, 컨디션이 들쑥날쑥하다.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피곤해서 일어나기 힘들다.


이 몸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괜찮다.


카뮈는 또 말했다. 부조리를 인식한 후에도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반항이라고.


나는 반항하기로 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시련 앞에서, 그래도 살아가기로.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뇌경색, 산후풍, 코로나, 그리고 암.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니 이제는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안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남편은 아직도 날 암 환자 취급 안 해준다. 참나. 그 사람은 끝까지 그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위로를 구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위로한다. 내가 나를 다독인다. 그게 더 확실하니까.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그 목소리가 나를 살게 한다. 목에는 작은 흉터가 남았다. 하지만 그 흉터는 내가 살아냈다는 증거다.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나는 여기 있다. 살아 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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