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가 흔들리는 시간(10)

좋은 엄마가 되려는 소비 심리

by 제이엘

임신 중에는 많이 사지 않았다. 아기 옷 몇 벌, 기저귀 한 박스, 젖병 몇 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금방 크니까 많이 사봤자 소용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현명한 엄마가 될 거라고,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출산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내 몸이 무너지면서 아이 곁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봤다. 먹이고, 재우고, 안아주고.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을 친정엄마가 대신했다. 나는 그저 곁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나 아이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사기 시작했다.

장 보드리야르는 말했다. 현대인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산다고. 우리는 물건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를 소비한다고. 나는 육아용품을 샀지만, 사실 내가 사고 싶었던 건 '좋은 엄마'라는 기호였다.


이걸 사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좋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샀다. 후기가 좋으면 바로 결제했다. 다른 엄마들이 쓴다니까, 좋다니까, 필요하다니까. 그 말들이 나를 움직였다. 이걸 사면 아이가 좋아하겠지. 이걸 사면 아이에게 유용하겠지. 그런 기대 심리가 있었다. 고작 몇 개월밖에 안 된 아이인데 말이다.


친정엄마는 이런 나를 달랬다.


"그렇게 많이 안 사도 돼. 애는 뭘 갖고 놀든 잘 놀아."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소비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 빈자리가 더 큰 소비를 불렀다. 물건을 사는 순간에는 잠깐 안도가 됐다. 이걸로 아이에게 뭔가 해줄 수 있겠구나. 좋은 엄마에 한 발짝 가까워졌구나. 하지만 그 안도는 금세 사라졌고, 또 다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사놓고 안 쓴 것들이 산더미였다. 딱 한 번 쓴 것들. 포장도 안 뜯은 것들. 좋다고 해서 샀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것들. 그것들이 방 한구석에 쌓여갔다.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당근마켓에 올렸다. 샀을 때의 반의 반의 반 값에.


씁쓸했다. 이걸 샀을 땐 얼마였는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샀는데. 결국 헐값에 팔고 있구나. 물건만 남고, 의미는 사라졌다. 그게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멍청하게 살았구나. 돈을 이렇게 썼어야 했나. 그 돈으로 다른 걸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는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한 두 돌이 넘어서까지 내 소비는 계속됐다. 이번엔 진짜 필요한 거야. 이건 아이가 좋아할 거야. 매번 그렇게 합리화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물건을 산 게 아니었다. 죄책감을 덜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 곁에 있지 못하는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아이를 안아줄 수 있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보상 심리가 줄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직접 밥을 먹이고, 직접 재우고, 직접 안아주는 것. 그게 물건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좋은 엄마는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비싼 장난감, 좋다는 육아용품, 후기 좋은 이유식 도구. 그런 것들이 좋은 엄마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아이 곁에 있는 것. 아이를 바라보는 것.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게 전부였다.


나는 물건을 사면서 나의 부재를 메우려 했다. 아픈 몸으로 아이 곁에 있지 못하는 죄책감을, 택배 상자로 덮으려 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물건으로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쌓여가는 물건들이 죄책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리면서 느꼈던 씁쓸함. 한 번도 안 쓴 장난감을 포장하면서 느꼈던 허탈함. 그때의 나는 참 불안했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구나.


소비는 불안을 잠시 잊게 해줄 뿐, 불안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 물건을 사는 대신 아이를 보면 된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건 커뮤니티 후기에 없다. 내 아이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는 비싼 장난감보다 엄마의 손을 더 좋아했다.


아이가 내 손을 잡는다. 작고 따뜻한 손. 이 손을 잡아주는 것이, 어떤 물건보다 값지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화, 목 연재
이전 26화꽃대가 흔들리는 시간(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