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코로나
낮에는 잘 놀았다. 까르르 웃기도 하고, 손을 뻗어 장난감을 잡기도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아이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마에 손을 대니 열기가 느껴졌다. 체온계를 꺼냈다. 38도. 괜찮아, 아기들은 열이 잘 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새벽이 되자 39.8도까지 올랐다. 아이는 기침도 하지 않았다. 보채지도 않았다. 그저 축 늘어져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힘이 없어서 울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다섯 달밖에 살지 않은 작은 몸이 그렇게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코로나였다. 친정 아빠에게서 옮은 것이었다. 의사는 수액을 놓으려 했지만 아기의 혈관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리고, 너무 작아서. 결국 병원에서도 포기했다. 5개월이라 타이레놀 말고는 쓸 수 있는 약도 없었다. 그것뿐이었다. 그 작은 몸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꼬박 일주일이었다.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39도를 넘으면 타이레놀을 먹이고, 조금 내려가면 안도하고, 다시 오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사이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됐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 옆에 붙어 앉아 체온계만 들여다보았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 내 몸이 아픈 건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건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이 열을 내가 가져갈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병 자체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있었다.
미셸 푸코는 말했다. 권력은 처벌이 아니라 감시를 통해 작동한다고. 그때의 코로나가 그랬다. 병 자체보다 사회의 시선이 더 무거웠다. 코로나에 걸리면 범죄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어디서 옮았냐, 누구를 만났냐, 왜 조심하지 않았냐. 병에 걸린 사람이 죄인이 되는 이상한 시대이다.
우리 아이에게 낙인이 찍힐까 봐 무서웠다. 고작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할까 봐. 아이가 잘못될까 봐 무서웠고, 동시에 세상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 두 개의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친정 아빠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원망할 수 없었다. 나와 아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는 친정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몸이 무너졌을 때 나를 받쳐준 곳, 아이를 함께 돌봐준 곳. 이곳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 일주일 동안 친정엄마가 없었으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고, 체온을 재고, 아이를 달래는 것. 그 모든 걸 친정엄마가 했다. 나는 곁에서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뇌경색 이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저 아이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것뿐.
남편은 하루에 한 번 연락이 왔다.
"아기 어때?"
그게 전부였다.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달려오지도 않았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일주일째 열이 오르내리는데, 그는 서울에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분노가 치밀었다가, 이내 허탈해졌다. 기대하는 내가 바보인 걸까.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가 회복했다. 열이 내렸다. 다시 웃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장난감을 잡았다.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일주일 동안 멈춰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해방감이었다. 이제 코로나라는 족쇄에서 최소 몇 개월은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 항체가 생겼으니 당분간은 걸리지 않을 거라는 시원함. 늘 조마조마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솔직히 시원했다.
엄마로서 느껴야 할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아팠는데 해방감을 느끼다니.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병 자체보다 사회적 낙인이,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무거웠으니까. 그 무게에서 벗어났다는 게 시원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사회적 낙인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병은 병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에 도덕적 판단을 덧씌운다. 걸린 사람은 잘못한 사람이 되고, 피한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 된다. 하지만 병은 죄가 아니다. 아픈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런 걸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로든 낙인찍히는 일. 손가락질당하는 일.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세상이 조금은 나아졌으면 좋겠다.
아이가 열에 들떠 축 늘어져 있을 때 내가 그 열을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인 걸까. 내 몸이 아픈 건 견딜 수 있는데 아이가 아픈 건 견딜 수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가 다치면 내가 대신 다치고 싶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는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낙인찍히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건강하게.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이다.
아이가 햇살을 보며 손을 뻗는다. 저 작은 손이 아프지 않기를. 저 작은 몸이 건강하기를. 오늘도 나는 그렇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