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가 흔들리는 시간(8)

육아서와 현실의 괴리

by 제이엘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책을 믿었다. 두꺼운 책들을 사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중요한 부분은 노트에 옮겨 적었다. 임신 중에도 읽고, 출산 후에도 읽었다. 책 속에 답이 있을 거라 믿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정리한 지식이니까 이대로만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플라톤은 말했다. 동굴 속에 갇힌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는다고. 나는 책 속의 글자들을 실체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진짜 아이는 책 밖에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출산 후,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몸은 아팠고, 마음은 흔들렸다. 뇌경색과 산후풍으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데, 갓 태어난 아이는 울었다. 왜 우는지 몰랐다.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가 젖은 건지, 아픈 건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해독할 수 없는 언어 같았다.


친정엄마가 말했다.


"속싸개 해줘. 아기가 놀라서 우는 거야."


하지만 책에는 되도록이면 속싸개를 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아이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고관절 발달에 좋지 않다고. 나는 책을 믿었다. 어린이집 원장인 친정엄마의 수십 년 경험보다, 책에 인쇄된 글자를 믿었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모로반사 때문에 팔다리가 퍼덕거릴 때마다 깜짝 놀라 깨어났다. 겨우 잠들었다 싶으면 자기 손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밤새도록. 나는 책을 다시 펼쳤다. 분명 답이 있을 거야. 내가 뭔가를 놓친 거야. 하지만 책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속싸개는 되도록 하지 마세요.


수유도 마찬가지였다.


책에는 수유 텀을 지키라고 되어 있었다. 2-3시간 간격. 규칙적인 수유가 아이의 생체리듬을 만든다고. 나는 시계를 보며 버텼다. 아직 1시간밖에 안 됐어. 조금만 더 참아보자. 하지만 아이는 1시간마다 배가 고팠다. 젖병을 물리면 허겁지겁 먹었다. 배고팠던 거구나. 그런데 책에서는...


"애가 배고프면 줘야지. 책이 밥 먹여주냐."


친정엄마가 말했다.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책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니까.


온도도 그랬다. 책에는 실내 온도를 서늘하게 유지하라고 되어 있었다. 22도 정도. 아이가 더위를 타면 땀띠가 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고. 나는 보일러를 끄고 아이를 재웠다. 하지만 내 아이는 추위를 탔다. 손발이 차갑게 식었고,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책에서는 손발이 차가운 건 정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는 아이 앞에서 그 문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게 달랐다.


책 속의 아이와 내 아이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책은 평균을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는 이렇다고. 하지만 내 아이는 평균이 아니었다. 어떤 아이도 평균이 아니었다. 평균은 숫자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는 없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책 속의 아이는 완벽한 관념이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는 그 관념을 좇느라 눈앞의 아이를 보지 못했다. 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책이 아니라 아이를 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책만 보고 있었다.


좌절했다. 허탈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책대로 했는데 왜 안 되는 걸까. 나는 나쁜 엄마인 걸까. 자책이 밀려왔다. 우는 아이를 안고 나도 울었다. 책을 붙들고 울었다.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아니,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결국 책을 덮었다.


친정엄마에게 의지했다. 속싸개를 했다. 아이가 원할 때 젖을 물렸다. 방을 따뜻하게 했다. 책과 다른 방법들. 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 잠을 잤다. 편안해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아이는 로봇이 아니었다.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저마다 다른, 고유한 사람. 사바사라는 말이 있다. 사람 바이 사람.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 바이 아이. 내 아이는 책 속의 아이가 아니라, 오직 하나뿐인 내 아이였다.


동굴 밖으로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책이라는 동굴, 이론이라는 그림자.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시간. 하지만 진짜 빛은 동굴 밖에 있었다. 내 아이의 울음소리, 체온, 표정. 그것이 실체였다. 책은 참고할 뿐, 답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 육아서를 펼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읽는다. 이건 하나의 가능성이구나. 내 아이에게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읽는다. 그리고 책을 덮고 아이를 본다. 내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게 진짜 답이니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었다.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 내 아이만의 언어를, 내 아이만의 리듬을, 내 아이만의 온도를 알아가는 과정이 육아였다. 책은 지도일 뿐 길은 직접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 길은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친정엄마가 말했다.


"책도 좋지만, 네 앞에 있는 애를 봐. 애가 다 말해주고 있어."


그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아이는 말을 못 해도 말하고 있었다. 울음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언어를 배워야 했다. 책에는 없는 오직 내 아이만의 언어를.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를 본다. 웃는다. 나도 웃는다. 이 순간이 답이다. 책에는 없는, 우리만의 답.




화, 목 연재
이전 24화꽃대가 흔들리는 시간(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