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기 전 나는 누구였을까?
아이가 잠든 밤, 나는 가끔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 그때의 나는 누구였을까.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꿈꿨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분명 나였는데, 지금의 내가 아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닿지 않는 그런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내향인이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오전 시간, 동네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시간이 참 좋았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고, 문장이 머릿속에서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이 가슴에 스며들면 내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텅 빈 내가 조금씩, 조금씩 가득 차는 느낌. 그래서 책을 읽었다. 나를 채우기 위해서.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새로 생긴 카페가 있다고 하면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 사진을 찍고,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삶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집에는 나 혼자였다. 고요한 집에서 책을 읽거나, 가끔 들어오는 일거리를 마감 시간에 맞춰 제출하는 프리랜서였다. 거창한 커리어도, 대단한 야망도 없었다. 그저 소박하게, 소담하게, 남편과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좋은 부모가 되는 것. 그게 전부였다.
밤새워 책을 읽기도 했다. 공상에 빠져 새벽 시간이 되도록 깨어 있기도 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었고, 돌봐야 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다가 눈이 감기면 그제야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품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또다시 책을 펼치는 그런 하루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참 많은 복을 누린 것 같다.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오롯이 내가 정할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인간의 조건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때의 나는 매일 아침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무엇을 읽을까. 그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신혼 초, 남편은 나를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공주님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었다. 주말이면 내가 가고 싶다는 카페에 함께 갔고, 내가 읽고 싶다는 책을 선물했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쌓여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의 나는 꽃이었다. 햇살을 받고 물을 먹으며 예쁘게 피어나는 꽃. 꽃대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으니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시절이 너무 많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누구일까.
거울을 보면 낯선 얼굴이 비친다. 푸석한 피부, 다크서클, 뻣뻣하게 묶은 머리카락. 화장을 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예쁜 옷을 입은 지도. 그냥 편한 옷, 움직이기 쉬운 옷,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 그것만 찾게 된다.
공주님이라고 불리던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의 나는 그냥 푸석한 여자일 뿐이다. 아기를 낳고, 병을 앓고, 기력을 잃은. 산후풍으로 몸이 시리고, 뇌경색으로 손이 떨리는. 서른 넷에 이미 노년을 사는 것 같은.
남편도 더 이상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그 호칭이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그도 모르게. 우리 사이에서 무언가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 시절을 떠올리면 참 그립고 서글프다. 그리움과 서글픔은 닮은 감정이다. 둘 다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든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바라볼 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할 때, 그런 감정이 든다. 예전의 나를 떠올릴 때도 그렇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햇살 가득한 카페에서 책을 읽던 그 오전으로. 밤새워 공상에 빠지던 그 새벽으로. 공주님이라 불리던 그 신혼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조금 더 그 순간들을 음미하고 싶다. 이게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모르고 흘려보냈으니까.
하지만 이미 아이가 태어났다.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움켜쥐는 아이. 엄마를 보면 웃는 아이. 그 아이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다. 그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져야 한다.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엄마가 되었으니까.
복잡하다.
이렇게 나를 잃어버리는 건지, 새로운 내가 태어난 건지. 예전의 나는 죽은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걸까. 엄마라는 이름 아래 묻혀버린 걸까, 아니면 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자라고 있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내향인은 사라졌다. 이제는 책을 펼쳐도 한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아이가 운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사람도 사라졌다. 이제는 아이를 안고 식은 커피를 서서 마신다. 밤새워 공상에 빠지던 사람도 사라졌다. 이제는 아이가 잠든 밤에 같이 잠들어야 한다. 내일도 새벽부터 시작될 테니까.
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 아이가 웃을 때 가슴에서 퍼지는 따스함.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어떤 힘. 예전의 나에게는 없던 것들. 예전의 나는 몰랐던 것들.
아이가 잠든 밤, 나는 창밖을 본다.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저 불빛 아래로 예전의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책을 들고,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작은 행복에 웃고 있는 그 사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닿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에 있는 것처럼.
안녕, 예전의 나.
그때는 몰랐지만, 너는 참 행복했어. 시간이 온전히 네 것이었고, 몸이 성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잖아. 그 시간들이 영원할 줄 알았지. 하지만 영원한 건 없더라. 다 지나가더라.
고마워, 예전의 나.
그때 읽었던 책들, 찾아다녔던 카페들, 꿨던 소박한 꿈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 비록 많이 달라졌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그래도 너의 흔적이 남아 있어. 어딘가에.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나를 잃어버린 건지, 새로운 나를 찾은 건지. 아마 둘 다이면서 둘 다 아닐 것이다. 예전의 나는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지만 완전히 태어난 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꽃대처럼.
언젠가는 알게 될까.
이 흔들림이 끝나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까. 엄마이면서 나인 사람. 나이면서 엄마인 사람.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아이가 뒤척인다. 나는 아이 곁으로 돌아간다. 이불을 여미고, 이마를 쓰다듬고, 다시 잠들기를 기다린다.
오늘 밤도 예전의 나를 그리워했다. 내일 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엄마가 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창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재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