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온몸이 파묻힌 듯한 시림
추위는 밖에서 오는 줄 알았다.
겨울바람이, 찬 공기가, 눈발이 피부를 스치며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을 두껍게 입으면, 난방을 틀면, 따뜻한 차를 마시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산후풍의 추위는 안에서 왔다. 뼈 속에서, 혈관 속에서, 세포 하나하나에서 올라오는 냉기였다. 그것은 옷으로 막을 수 없었고, 난방으로 녹일 수 없었고, 뜨거운 물로 씻어낼 수 없었다.
3월이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달. 밖에서는 봄이 오고 있었지만, 내 몸속에는 한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끝부터 시작됐다.
아기를 안을 때, 손가락 끝이 시렸다. 겨울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장갑을 꼈다. 핫팩을 쥐었다. 하지만 추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으로 번졌다. 팔꿈치로 올라왔다. 어깨를 타고 목덜미까지 기어올랐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발가락이 시렸다. 양말을 두 겹 신었다. 수면양말을 신고 잤다. 하지만 발목이 시렸고, 종아리가 시렸고, 무릎이 시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온몸이 얼음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귓불부터 척추까지. 입술부터 손톱까지.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얼어붙었다. 마치 눈 속에 하루 종일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얼음 속에 갇힌 것 같았다. 투명한 얼음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3월이 가장 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 속이 차갑게 느껴졌다. 이불을 몇 겹 덮어도 소용없었다. 전기장판을 틀어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가 피부를 스치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샤워를 하면 뜨거운 물이 피부에 닿았다. 하지만 몸속은 여전히 차갑다. 욕조에 몸을 담갔다. 물이 식을 때까지 있었다. 나왔다. 5분 뒤면 다시 추웠다. 방금 전까지의 따뜻함은 환상처럼 사라졌다.
바깥 기온이 영상이 되어도 나는 추웠다. 벚꽃이 피어도 나는 겨울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외투를 벗어도 나는 패딩을 입었다. 가족들이 덥다고 할 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왜 이렇게 추워하니?" 친정 엄마가 물으셨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냉기를. 이 시림을. 뼈 속까지 얼어붙은 이 느낌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한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많이 차가우시네요. 원기가 많이 떨어지셨어요." 당연한 말이었다. 출산하고, 코로나 걸리고, 뇌경색 오고, 산후풍까지. 내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한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두꺼운 한약봉지를 받아왔다. 시커먼 액체가 담긴 팩들. 하루 세 번, 식사 후에 마셨다. 물 마시듯 한약을 들이부었다.
쓰디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액체. 위장에서 열이 올라오는 느낌. 하지만 그 온기는 일시적이었다. 30분, 길어야 한 시간. 그러면 다시 차가워졌다.
한 달이 지났다. 두 달이 지났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사람들은 에어컨을 켰지만 나는 긴팔을 입었다. 가을이 왔다. 사람들은 선선하다고 했지만 나는 온몸이 꽁꽁 얼었다.
2년. 거의 2년간 나는 그 추위 속에서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잠은 잘 잤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나는 기진맥진했다. 아기를 친정 엄마께 맡기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면 미친 듯이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감는 순간 의식이 꺼졌다. 꿈도 없었다. 중간에 깨지도 않았다. 그렇게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엄마가 가끔 걱정하셨다. "어젯밤에 아기가 많이 울었는데 못 들었어?" 못 들었다. 옆방에서 울어도,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깨어날 수 없었다.
그것이 내 몸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깨어 있으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의식이 있으면 추위를 느껴야 하니까. 차라리 잠드는 것. 그것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잠든 동안만큼은 춥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에 집착했다. 아기가 낮잠을 자면 나도 잤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눕고 싶었다. 깨어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거울을 보면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서른네 살. 아직 젊어야 할 나이. 하지만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늙어 있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깊게 패었다. 피부는 거칠고 푸석했다.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했다.
손을 봤다. 관절이 굵어져 있었다. 피부가 거칠었다.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내 손일까. 스물 대 시절, 매끈하고 부드럽던 그 손이 맞을까.
산후풍은 나를 시들게 했다.
꽃이 말라가듯, 나는 시들어갔다. 생기가 빠져나갔다. 활력이 사라졌다. 웃음이 없어졌다.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점점 늙어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애 낳으면 늙는다더니 진짜네." 농담처럼, 가볍게. 하지만 내게는 농담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잔인한 현실.
가장 두려웠던 건 이게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까. 평생 이 추위 속에서, 이 시림 속에서, 이 고통 속에서 버텨야 할까. 2년이 지났는데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계속 이럴까.
미친 듯이 두려웠다.
서른네 살에 찾아온 산후풍이 예순까지, 칠십까지 이어진다면. 아기를 키우는 동안 내내 이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고,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순간을 이 얼어붙은 몸으로 지켜봐야 한다면.
한의사에게 물었다.
"언제쯤 나아질까요?"
"사람마다 달라요. 몇 개월 만에 좋아지는 분도 있고, 몇 년 걸리는 분도 있고."
명확한 답이 없었다. 희망도, 보장도 없었다. 그저 기다려야 했다. 견뎌야 했다. 하루하루를.
밤에 이불 속에 누워 생각했다. 내일도 추울까. 모레도 추울까.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에도 이렇게 춥고 시릴까.
눈물이 났다.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베개를 적셨다.
그러다 잠들었다. 다시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아기는 자라고 있었다.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옹알이를 하고, 웃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엄마" 같은 소리를 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아기를 안으면 관절이 아팠다. 바닥에 엎드려 함께 놀아주면 무릎이 시렸다. 목욕을 시킬 때면 손이 얼어붙었다.
차가운 엄마. 나는 문자 그대로 차가운 엄마였다. 아기가 내 품에 안기면 내 몸이 차갑다는 걸 느낄까. 다른 엄마들처럼 따뜻한 체온을 줄 수 없는 나를 아기는 어떻게 느낄까.
미안했다. 아기에게, 내 몸에게, 나 자신에게. 모두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계절은 돌고 돌았다.
두 번째 봄이 왔다. 세 번째 봄이 왔다. 벚꽃이 피고 졌다. 또 피고 졌다. 아기는 걷기 시작했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손끝이 덜 시렸다. 어제보다 조금. 무릎이 덜 아팠다. 지난주보다 조금.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덜 무겁다. 작년보다 조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추위가 물러가고 있었다.
얼음이 녹듯 천천히. 눈이 녹듯 조용히.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확실하게, 따뜻함이 돌아오고 있었다.
2년이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2년 반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내 몸속에도, 진짜 봄이.
지금도 가끔 추운 날이 있다.
날씨가 급격히 변하거나, 몸이 피곤하거나, 무리를 하면 그 시림이 되살아난다. 뼈 속 깊이 박힌 기억처럼, 세포에 새겨진 흉터처럼, 산후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견디면 지나간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2년을 버텼으니, 하루쯤, 일주일쯤, 한 달쯤은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살아남았다.
눈 속에 온몸이 파묻힌 듯한 그 시림 속에서도, 얼음 속에 갇힌 듯한 그 추위 속에서도, 나는 매일 일어났다. 아기를 안았다. 밥을 먹였다. 기저귀를 갈았다. 울음을 달랬다. 웃어주었다.
한 손에는 한약팩을 들고, 온몸을 옷으로 꽁꽁 싸매고, 이를 악물고, 그렇게 버텼다.
그것이 엄마가 되는 과정이었다. 춥고, 아프고, 시들어가면서도, 계속 서 있는 것. 얼어붙으면서도 따뜻함을 주는 것. 시들어가면서도 아기를 키워내는 것.
거울을 본다. 여전히 서른네 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크서클, 거친 피부, 뻣뻣한 손가락. 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것도 보인다. 생존의 흔적. 견뎌낸 시간의 증거. 강해진 눈빛.
산후풍은 나를 늙게 했지만, 동시에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창밖에 봄바람이 분다. 따뜻한 바람. 나는 창문을 연다.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차갑지 않다. 따뜻하다. 정말로, 진짜로, 따뜻하다.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와 내 다리를 안는다. "엄마." 아기의 체온이 느껴진다. 따뜻하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따뜻하다.
오랜 겨울이 끝났다. 꽃대는 휘청거렸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꽃을 피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