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울어도 움직일 수 없던 순간
꽃대가 부러질 것 같았다.
뇌경색 이후,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왼손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고, 손가락 끝이 저리고 무감각했다. 물건을 잡으려 하면 손이 멋대로 떨렸다. 머리는 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기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스물아홉의 몸이 칠십 노인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아기는 울었다.
배고프면 울었고, 기저귀가 젖으면 울었다. 안아달라고 울었고, 졸리면 울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기는 우는 것으로 말을 하니까. 그것이 아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심하게 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순한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정도였을 뿐. 배고픔, 불편함, 외로움. 아기의 울음은 정직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아기의 울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귀를 찢는 사이렌처럼, 가슴을 조르는 경보음처럼 들렸다.
친정 부모님이 잠깐 외출하신다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금방 올게. 한 시간만. 장 좀 봐야 해."
엄마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미안한 듯 말씀하셨다. 아빠는 차 키를 들고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셨다.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불안이 밀려왔다.
한 시간. 고작 한 시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 마트 한 번 다녀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산책 한 번 하기에도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 집은 갑자기 넓어졌다. 평소에는 작게만 느껴지던 친정집이, 그날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광활하게 느껴졌다. 거실에서 방까지의 거리가, 방에서 부엌까지의 거리가 끝없이 멀게 느껴졌다. 아니, 내가 작아진 걸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치 부모님이 나가는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일어나야 했다. 아기를 안아야 했다. 배고픈지 확인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달래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침대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고,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는 그 모든 과정이 산을 오르는 것만큼 어려웠다.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눈앞이 핑 돌았고,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중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하게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
아기는 계속 울었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칭얼거리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목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미안해, 미안해.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가 지금 가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하지만 아기는 기다릴 줄 몰랐다. 아기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전부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안과 죄책감이 뒤섞인 박동. 손바닥에 땀이 났다. 숨이 가빠졌다. 패닉이 오는 것 같았다. 안 돼, 진정해야 해. 내가 무너지면 안 돼.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엄마인데, 왜 이렇게 무능한 걸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못하는 걸까. 아기를 낳았으면 당연히 돌봐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출산 전에는 몰랐다. 아기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본능이 발동하고, 사랑이 넘쳐서, 힘든 줄도 모르고 아기를 돌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본능은 어디에도 없었고,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필요한 건 체력이었고, 정신력이었고, 무엇보다 멀쩡한 몸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손을 뻗어 침대 옆 핸드폰을 집었다. 화면에 남편의 이름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까 망설였다. 손가락이 번호 위에서 맴돌았다. 누르고 싶었다. 도와달라고, 힘들다고, 아기가 울고 있는데 내가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그는 서울에 있었다. 나는 친정에 있었다. 서울과 친정, 물리적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우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멀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대에,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전화를 해봤자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기가 울어서 힘들다고? 그럼 그가 뭐라고 대답할까. "그냥 안아줘"라고 할까. "곧 부모님 오실 거 아냐"라고 할까. 아니면 "나도 힘들어"라고 할까.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회사에 있을 테니까. 일하느라 바쁠 테니까. 그렇게 받지 않는 전화만큼 서러운 게 또 있을까. 차라리 걸지 않는 게 나았다.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은 많았지만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 고통을, 이 무력함을, 이 죄책감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설명한다 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어땠어?" 그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힘들었어"? 그럼 그 다음은? "그래? 고생 많았네"? 그리고 대화는 거기서 끝? 그런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느니 차라리 침묵이 나았다.
그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아기를 안는 것도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왼손에 힘이 안 들어가서 젖병을 떨어뜨렸던 일, 어지러워서 아기 안고 넘어질 뻔했던 일, 기저귀 가는 것조차 숨이 차올랐던 일.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알게 되면 부담이 될 테니까. 알게 되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일상을 유지하는 게, 그게 더 편한 거였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평범하게 출근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저녁에 집에 가서 혼자 TV를 보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 평온한 일상이, 내 무너진 일상과 대비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먼저 상체를 일으켰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잠깐 멈췄다. 숨을 고르고, 시야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침대 끝에 앉았다.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차가운 마룻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침대 모서리를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한 발을 내디뎠다. 중심을 잡았다. 또 한 발. 벽을 짚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기가 있는 요람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마라톤을 뛴 것처럼 숨이 찼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기를 안았다. 왼팔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오른팔에만 의지해야 했다.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속으로 되뇌며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기저귀를 확인했다. 젖어있었다. 기저귀 가는 곳까지 가야 했다. 다시 걸어야 했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벽을 짚으며. 매트 위에 아기를 눕혔다. 아기는 더 크게 울었다. 차가운 매트가 싫었던 걸까.
새 기저귀를 꺼냈다. 젖은 기저귀의 테이프를 뜯었다. 한 손으로는 아기의 다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기저귀를 빼내야 했다. 왼손에는 힘이 없었다. 오른손만으로 모든 걸 해야 했다. 손이 떨렸다. 땀이 눈에 들어갔다. 따가웠다.
기저귀를 반쯤 갈았을 때, 아기가 오줌을 쌌다. 매트가 젖었다. 아기 옷도 젖었다. 나도 젖었다. 한숨이 나왔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계속해야 했다.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새 옷을 꺼냈다. 아기의 팔을 옷 소매에 넣었다. 머리를 조심스럽게 옷 목에 통과시켰다. 다른 팔을 넣었다. 단추를 채웠다. 작은 단추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땀이 계속 흘렀다.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니, 아기는 조금 진정됐다. 울음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입을 벌리고 울기 시작했다. 칭얼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배고픈 울음이었다. 아, 분유. 이번엔 배가 고픈 거구나.
분유를 타야 했다. 부엌까지 가야 했다. 아기를 안고 갈 수는 없었다. 매트 위에 아기를 눕혀두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기는 더 크게 울었다. 혼자 두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분유를 넣었다. 한 스푼, 두 스푼. 손이 떨려서 분유 가루가 바닥에 흘렀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젖병을 흔들어 섞었다.
아기에게 돌아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울다 지쳐서 목이 쉰 것 같았다. 안아 올렸다. 젖병을 입에 가져갔다. 아기는 재빨리 물었다. 고요해졌다. 오직 젖병을 빠는 소리만 들렸다.
팔이 저렸다. 허벅지가 아팠다. 등이 굳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아기가 분유를 다 먹을 때까지 이 자세로 있어야 했다.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동안, 벽시계를 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모님이 나가신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조금 전 같았는데. 현관문이 닫힌 게 불과 몇 분 전 같았는데.
고작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는데 한 시간.
다른 엄마들은 이 모든 걸 얼마나 빨리 하는 걸까. 유튜브에서 본 육아 브이로그들이 떠올랐다. 젊고 예쁜 엄마들이 아기를 능숙하게 돌보는 영상. 웃으면서 기저귀를 갈고, 노래를 부르며 분유를 먹이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들의 하루는 빛나고,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나의 하루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왜 이렇게 느린 걸까.
시계를 다시 봤다.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였다. 느리게, 또 느리게.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저녁이었고, 저녁이 되면 다시 밤이었다. 시간은 빨랐지만 하루는 길었다. 역설적이었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하나를 하는 데 몇 시간씩 걸렸다. 샤워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저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끝났다.
아기가 분유를 다 먹고 잠들었다. 젖병에서 입을 떼자 우유가 입가에 묻어 있었다. 거즈로 닦아주었다. 트림을 시켜야 했다. 아기를 세워서 안고 등을 토닥였다. 트림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요람에 눕혔다. 아기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아기를 내려놓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해야 했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그냥 침대에 쓰러졌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안도감과 동시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잠들 것이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일상. 반면 나는 여기, 친정 침대에서 온몸이 부서진 것처럼 누워 있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나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쌓여갔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아기와 둘이 있어도 혼자였다. 아니, 오히려 아기가 있기에 더 혼자였다.
꽃대는 흔들리고 있었다. 부러지지 않기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계속 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흔들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아기가 울어도 움직일 수 없었던 그 순간들. 그때의 무력함과 죄책감, 그리고 깊은 외로움.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됐다. 그렇게 부서질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결국 일어났다는 것을. 한 시간이 걸렸어도, 온몸이 비명을 질러도, 나는 아기를 안았다는 것을.
꽃대가 흔들려도, 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결국은 버텼다.
그것이 엄마가 되는 과정이었을까. 부서지면서도 버티고, 쓰러지면서도 일어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옆에 없어도, 그렇게 해내는 것.
오늘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흔들림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버티는 것 또한 힘이라는 것을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