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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Oct 30. 2023

수술실에서 8시간, 엄마는 강하다

로봇을 이용한 휘플 씨 수술(췌십이지장 절제술)

수술 일주일 전까지 방사선 치료 일정을 힘겹게 마쳤다. 치료 후 바로 일주일 뒤에 제일 중요한 수술이 기다리고 있으니 체력 보강을 많이 하셔야 한다고 했지만, 좀처럼 드시지 못했다. 이러다 수술이나 받으실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주일이 또 지났다. 


 드디어 8월 7일, 진단 후 약 40여 일 만에 췌장암 수술(수술명 Whipple’s Operation)을 받으셨다. 무려 7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휘플 씨 수술은 종양이 자리 잡은 췌장 머리(췌장의 절반), 췌장을 둘러싼 십이지장 전체, 총담관과 담낭 전체, 소장의 일부와 위장의 1/3을 도려내는 수술이다. 그렇게 각종 주요 장기를 제거하고 새로 잇다 보니 장기의 새로운 길을 만드는 엄청난 수술이었다. 


처음 외래에서 처음 외과의가 시도하기로 했던 것은 휘플 씨 수술이 맞다. 그런데 수술 전날 수술에 대한 안내와 수술 동의서 등을 받으러 수술설명전담 의사가 왔을 때는 휘플 씨 수술 대신 유문보존췌십이지장절제술(PPPD)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휘플 씨 수술은 위장의 일부를 도려내야 하는 것이지만, 유문보존췌십이지장절제술은 위장을 보존할 수 있는 수술이어서 여러 장기를 건드리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위장이라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엄마의 수술은 휘플 씨 수술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수술 당일 오후 6시 20분쯤 수술실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술에 대한 안내가 있을 테니 바로 수술실 앞으로 오라는... 집도의는 아직 수술복을 벗지도 않은 차림으로 간단히 수술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수술 전 기대와는 달리 직접 병변 부위를 확인하니 예상과 달랐다고 했다. 예상보다 암세포가 번져 있어 전이를 피하고자 최대한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은 제거하다 보니 수술법이 바뀌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했다. 담즙 배출을 위해 삽입했던 스텐트도 모두 깨끗이 제거했다고 했다. 갑자기 수술 방식이 달라져서 놀라기도 했지만, 모두 잘 끝났다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술실에 들어가신 후,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입원 병실에서 이동하셨는데, 긴 시간 막내 이모가 함께 지켜주셔서 조금 덜 외로웠다. 기다리는 동안 책이라도 읽겠다고 챙겨갔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느라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워 일찌감치 책을 덮었다. 이모는 이모대로 계속 같이 있으면 내가 더 신경 쓸 것 같다시며 병원 주변이나 돌아보시겠다며 일어나셨다. 마침 나에게도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병원 안에 있는 성당이었다. 수술 날짜가 정해진 후 엄마를 위한 생미사를 신청했었던 게 떠올라 성당으로 향했다. 마침 미사 신청을 받으셨던 수녀님이 계셔서 기도를 청했다. 수녀님이 따뜻한 위로와 함께 기도를 해주셔서 조금이나마 불안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오전 11시 40분에 수술실로 옮겨진 엄마는 오후 8시 무렵에야 다시 입원실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으신 채로 ‘나 아프다.. 나 힘들어...’라는 말씀만 겨우 중얼거리셨다. 평소 워낙 단단한 분이셨던 분인지라 엄마답지 않은 모습을 보니 자꾸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거즈에 물을 적셔 입술을 축여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지켜드리고 싶었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이루어지는 병동이라 환자 보호자조차 면회시간이 한 시간으로 제한되고, 코로나 때문에도 병원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수술 환자에 한해서 2시간까지 머물 수 있는 허락을 받았을 뿐. 


엄마는 입원하셨던 병동에서 제일 힘든 수술을 하신 분이셨지만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로 서서히 회복하셨다. 수술 전후의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특강에서 들은 바로는 폐는 수술하는 동안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짧은 수술이면 폐의 축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췌장암 수술은 매우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 폐보다 거의 1/2 가까이 줄어드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단순한 것 같지만 호흡을 충분히 해서 폐를 원상태로 펴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보호자들은 환자가 열심히 공불기(폐를 펼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수술 다음 날부터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누구보다 공불기 운동을 열심히 하셨다. 걷기 운동도 열심이셨다. 기운이 없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지도 못하시면서도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를  미루지 않으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간호간병통합병원의 장점 중 하나는 환자에게 엄살을 허락하지 않는 것 인 것 같다고 하셨다. 만약 가족이 간병을 했다면 애처롭고 안타까워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키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간호사 앞에서는 조금의 변명이나 핑계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엄마의 경우는 여러 장기가 사라지고 새로운 길이 생긴 터라 서서 걸으며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제 자리를 잡기 어렵다고 했다. 호흡이 딸려도 열심히 공불기를 하고 기운이 없어 다리가 후들거려도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이유였다. 엄마는 그 힘든 과정을 조금의 나태함도 없이 성실하게 해내셨다.  


그 와중에 전공의들의 파업이 있었다. 엄마의 수술일 날도 집단 휴진 이야기와 파업예고가 있어 조마조마했었다. 급기야 수술 일주일 후 대대적인 파업이 시작되었다. 만약 로봇 수술을 택하지 않았다면 개복 수술 일정은 2주 후쯤 가능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염없이 지연되었을 수술 일정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행운이고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애타게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다른 환자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웠다. 복잡한 현실 의료의 문제들, 코로나 19로 지친 현장 의료진들의 여러 문제가 얽혀 있었다. 사명감 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의료 현실도 안타까웠지만,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더욱더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간이었다. 


수술 후 일주일쯤 지나 수술 부위가 웬만큼 아물자 병원에서는 퇴원을 하라고 하였다. 대기 환자들이 많은 수술 중심의 병원이다 보니 수술 상태가 안정되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구조였다. 다음 일정에 대기하는 위중한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상태로 바로 집으로 퇴원을 하셔도 될지 겁이 났다. 당장 어떻게 간병을 해야 할지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데다 혹시라도 모를 응급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곳에 며칠이라도 더 모시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퇴원 일정이 언급된 후부터 급히 계실 만한 병원을 물색했다. 코로나 시기여서 어떤 곳은 방문 자체를 꺼리기도 해서 몇 곳은 전화로 문의를 하고, 게 중 몇 곳은 직접 방문을 했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암환자 대상 전문 병원은 양방보다는 한방병원이 많았다. 비급여로 처리되는 고액의 병원비는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수술 후 2주도 안되어 퇴원을 하는 상황이라 혹시라도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하여 병원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면회가 제한되는 곳에 혼자 계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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