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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Nov 13. 2023

집으로, 그리고 항암치료 시작

본격적인 간병과 6개월의 항암치료가 시작되다

서울대병원에서 퇴원 후 회복을 위해 동네 병원에 입원을 하신 지도 2주가 지났다. 더 이상 치료적 개입이 없는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을 할 수는 없어서 집으로 모셨다. 워낙 큰 수술을 하신 터여서 집보다는 병원이 안전하게 느껴졌지만, 그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입원 일을 연장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일반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의료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일반 환자의 장기 입원을 원하지 않았다. 요양병원이나 암을 전문으로 돌보는 병원이 아닌 다음에야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라도 다른 병원으로 또다시 입원을 하기엔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간병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집에서 간병을 하기로 정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환자용 전동 침대를 배치하는 일이었다. 전부터 사용하시던 침대는 가죽 소재로 된 것이라 꽤 비싼 것이었지만, 낡은 데다가 부피만 커서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였다. 2차 병원에서 일자형 침대의 불편함도 있고 환자가 쓰기에는 일반 침대보다는 전동침대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낡은 침대를 과감히 버리고 가장 빨리 배송되는 일정으로 전동침대를 주문했다. 병원처럼 전문적인 간호는 어렵지만 몸이라도 최대한 편하게 해드려야겠다 싶었다. 적당한 자리에 전동침대를 배치하기 위해 거실 소파도 처분했다. 역시 가죽 소재의 큼지막한 것이었지만 여기저기 낡았어서 정리하는 것이 하나도 아쉬운 줄 몰랐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아버지가 앉아 지내실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직접 쇼핑을 하러 다닐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소파도 주문했다. 사용하던 침대와 소파를 모두 버리고 전동 침대와 작은 소파 세트를 배치하니 다른 집 같이 느껴졌다. 다행히 엄마는 만족해하셨다. 물론 병원에서 지내실 때보다 불편한 것도 많겠지만,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 덕분인지 바뀐 침대, 소파에도  불평이 없으셨다. 


집으로 오신 지 열흘쯤 지나 서울대 병원에서 퇴원을 하시고 한 달을 꼬박 채우기 전이었다. 9월 10일에 췌장/담도암센터 진료 예약이 있었다. 진료 2시간 전에 채혈을 한 후 기다렸다 담당 의사를 만났다. 그런데 채혈 검사 결과를 확인 후 바로 당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셨다. 큰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첫 진료에서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한다니 덜컥 또 겁이 났다. 엄마의 병기는 2B기에 해당하는 상태였다. 췌장암은 다른 암들과는 달리 3기부터는 수술이 어렵고, 방사선이나 항암주사 같은 화학적 요법을 중심으로 치료를 한다. 암이 3cm 이상이면 수술이 어렵다고 했는데, 2.94cm 크기여서 다행히 수술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림프절 전이가 한 개 있어서 항암치료는 필수라고 하셨다. 워낙 다른 암에 비해 재발이 잘 되고, 완치 자체가 매우 어려운 암이다 보니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항암치료 일정만 정하고 오는 줄 알았던 터라 수술 후 한 달이 지났으니 치료를 시작해도 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막상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한 달여 기간 동안 이미 10kg이 넘게 체중이 줄어든 상태라 긴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실지도 걱정되었다. 


엄마가 받게 된 항암치료는 한 세트가 4주에 걸쳐 시행되는데, 1~3주 차에 주 1회씩 항암 주사를 맞고 4주 차는 쉬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6세트를 6개월 동안 시행하였는데, 총 18번에 걸쳐 항암 주사를 맞는 대장정이었다. 맨 처음에 항암치료 일정을 들었을 때는 ‘주사’라는 단어 때문인지 얼마나 어려운 치료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감기 주사, 예방 주사 등등 일반적으로 작은 주사기로 엉덩이나 팔에 맞는 주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암치료 과정에서 ‘주사’는 정맥을 통해 주사액을 주입하는 방식인데, 한 번 맞을 때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먼저 본격적인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 20~30분 동안 작은 항구토제를 200ml가량 주사한다. 항구토제를 다 맞으면 본격적으로 항암 성분이 포함된 주사를 다른 주사액과 섞어 맞는 최대한 천천히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왜 1주일에 1회만 항암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는지, 3주 연속 주사를 맞고 1주를 왜 쉴 수밖에 없는지를 아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더 자주 항암치료를 받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워낙 그 과정이 혹독해서였음을 치료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암투병 환자들이 구토를 하는 것이 단순한 설정이나 연기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항암치료 과정임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항암치료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을 때는 ‘항암치료’가 암세포만을 죽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이름 ‘항암화학요법’은 암세포만이 아니라 모든 정상세포까지 공격하여 살아남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독성화학치료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탈모 구토, 오심 같은 전형적인 부작용만 보더라도 암세포만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 살기 위해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것이 치료라니...! 공격적인 치료과정이라도 버틸 수 있기만을 바라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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