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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Nov 16. 2023

아프니까... 살아 있다

항암치료 중

항암치료가 시작된 후 엄마의 체중 관리가 주요 과제로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드시지를 못했다. 주요 장기 5곳이 전부 또는 일부 절제가 된 데다 위장은 9개월 아기 수준의 기능이라고 퇴원 직전에 간호사가 안내를 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3끼 식사를 나누어 자주 드셔야 하는 상황인데, 독성화학 치료 때문에  온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매주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은 집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가량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항암 주사는 매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대체로 오전 10시 전후에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으려면 2시간 전에 채혈을 해서 혈액검사 수치를 확인해야 처방을 받을 수가 있었다. 집에서 병원까지 이동하는데만 1시간가량 걸리다 보니 채혈을 위해 7시 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채혈은 8시간 이상 금식이니 당연히 공복 상태로 이동을 해야 하는 것도 어려움이었다. 일상적인 식사량도 아니지만 기운 없고, 몸은 무거운데 물도 한 모금 못 드시고 흔들리는 택시를 타는 일이 매번 고역이었다. 주사도 맞기 전 이미 지친 몸으로 병원에 도착해서 채혈을 하고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여느 환자들이라면 가벼운 단백질 음료나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으련만, 엄마는 좀처럼 드시지 못했다. 항구토제 처방이 무색하게 구토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는 고파도 채혈 후 결과가 나와 의사를 만날 때까지 2시간은 꼼짝없이 대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진료 시간이 되어 의사를 만나 혈액 수치를 확인하고 처방을 받으면 처방전을 들고 주사실로 간다. 그때부터 다시 대기가 시작된다. 암 환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암센터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넘치고 주사실과 간호사는 부족했다. 예방접종하듯이 간단히 엉덩이나 팔에 찌르는 주사가 아니다 보니 평균 한 시간씩은 주사를 맞는다. 그러니 주사용 침대에 누울 때까지는 하염없이 주사실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주사 맞기 전까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환자들이 대기할 만한 곳이 너무 부족했다. 코로나 기간이라 동반 보호자 1인으로 제한을 했음에도 거리두기 등으로 대기 좌석조차 모두 활용할 수 없어 눕기는커녕 앉을 공간조차 찾기 힘든 날이 대부분이었다. 


주사를 맞으러 대기하던 중에 남긴 흔적

특히 명절이나 연휴가 있었던 주의 어느 날은 처방전을 접수하는데만 3시간을 기다리고, 처방 이후 주사를 맞기 위해서 다시 4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아침 7시 무렵 집을 나서서 집에 돌아오니 오후 7시가 넘어 있었다. 이제는 주사실에도 접수 번호표가 생겼지만, 항암치료 초기에 진료 카드 제출 순서로 처방 접수를 할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날이 여러 번이었다. 언제쯤 접수 차례가 돌아올지 가늠이 안되니 멀리 가서 대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앉을 곳도 없으니 호명되기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래 이어졌었다. 나는 보호자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환자는 그야말로 주사 맞기 전에 초주검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주사실 앞 야외 테라스 나무 블록에 누워 세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후로 주사치료실 앞에 그동안 없었던 접수 번호표 기계가 생겨서 다행이었지 정말 악몽 같던 날이었다. 


항암주사 치료 때 얇은 담요는 필수다. 체온이 떨어지는지 대부분의 환자들이 오한을 호소했다.


항암주사를 맞고 오시면 드시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에서도 거동을 거의 못하셨다. 주사가 워낙 독해서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하시며 2박 3일 동안은 좀처럼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드시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쉽게 주무시지 못했다. 그저 생각이 많아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통증이 동반된 고통스러운 불면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3일이 지나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시는가 싶으면 또 2~3일 후에 항암주사를 맞는 일이 반복되었다. 엄마 말씀을 옮기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3차 항암(주사 회수로는 9회)까지는 그럭저럭 견디시는가 싶었는데 4차(주사 횟수로는 10회) 항암이 시작되고부터는 항암주사를 맞으시는 동안에도 구토를 하셨다. 항암 주사 직전에 구토 방지를 위한 별도의 항구토제가 주사제로 처방되었지만 구토방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엄마에겐 효과가 없었다. 



엄마는 만약 당신 혼자 병원에 가셔야 하는 상황이거나 고통만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항암을 중단하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다. 힘들지만 함께 병원에 동행하고 간병해 주는 딸을 생각해서, 외국에 나가 있어 아직 만나지 못한 아들이 있으니,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지만 참는 거라 하셨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지만 청춘만 아플까...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아픔은 피할 수 없는 것일 텐데... 


그저 아프니까,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에 감사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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