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좋은 이동수단이란 무엇일까
엄마의 투병이 이어지는 동안 소소한 에피소드가 쌓였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는 이른 새벽 시간이어서 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가량 걸리는 데다 수십 차례 왕복을 했으니 횟수만큼 여러 기사님들을 만났다. 그중 몇 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먼저, 암환자에게 좋다는 각종 보양음식을 소개해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특히 개고기를 권하셨다. 주변 지인이며 기사님 본인까지도 실제로 효과를 보셨다며 얼마나 강조를 하시던지... 단백질을 보충하기 어려웠던 옛날이면 모를까 ‘반려’ 견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개가 아직도 보양 음식으로 선호된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아직은 개식용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 않지만, 정서상으로 뿐만 아니라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많은 요즘에도 환자에게 음식으로 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치료받으러 새벽같이 나선 길에 듣는 개고기 예찬이라니... 처음에 오붓이 가는 차 안이라 마지못해 '아... 네... 그렇군요.' 따위의 반응을 했더니 기사님은 구하는 곳과 가격, 보관법까지 점점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딴에는 비법이라도 전수한다고 생각했던지 내가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연신 ' 꼭 해 드리라'는 당부까지 하셨다. 자기에게 아무리 좋은 것도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강요이고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 걱정해 주는 마음만 생각하자.'
장거리 운행 내내 섬세하게 배려해 주신 베스트 드라이버도 한 분 계셨다. 이동 중에 구토할까 봐 걱정하는 엄마의 상태를 수시로 물어가며 살펴주시고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최대한 흔들림이 덜하게 신경 써서 운전해 주셨다. 조수석 좌석도 뒤로 바짝 눕혀서 침대처럼 편안히 누워갈 수 있게 조정해 주시고는 내리기 전에 따뜻한 응원의 말로 마음까지 위로해 주셨다. 매번 비슷한 시간에 택시를 이용하기에 이후에도 한 번쯤 더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최고의 드라이버로 기억에 남아 있는 그분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승객에게도 최고의 친절을 베풀어 주고 계실 것 같다.
어두운 새벽 빗길에 택시를 탈 때마다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운전을 부탁드렸지만 대부분은 질주 본능이 발휘되어서 그런지 부탁이 무색할 정도로 거칠게 운전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 급출발과 급정차는 기본이고 수시로 운전대를 한 손으로만 잡고 운전해서 뒷좌석에 앉아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던 적도 있다. 편의를 위해서 택시를 탔지만, 편의보다 불안과 긴장감이 더 커서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기만을 바랄 정도였으니 환자였던 엄마는 오죽 불편했을까.
새벽에 집을 나설 때 엄청나게 내린 눈 때문에 도로가 빙판이 되는 날은 새벽 칼바람을 뚫고 택시 대신 지하철을 타고 가야만 했던 날도 있었다. 지하철 역까지 이동하는 거리며, 오르락내리락 계단과 환승 같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택시보다 지하철 이동을 선호하셨다. 특히 항암주사 치료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난 뒤부터는 귀가할 때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했다. 잦은 흔들림이 몸으로 바로 전해지는 택시 승차는 구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택시에 따라 기사분 특유의 냄새가 차에 배어 있어 웬만한 청결도가 유지되는 택시가 아니면 일반인인 내게도 힘든 때가 많았다. 아무리 코로나 기간이라 위생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귀가하려면 한 번 환승을 해야 하고, 적지 않게 걸어야 하지만, 작은 택시와는 흔들림 자체의 리듬감이 달라서 그런지 오히려 덜 힘들어하셨다. 무엇보다 이동 시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교통량이 많은 날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면 막히는 도로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이 있어 힘들었다. 반면, 귀가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면 승객이 적은 시간 대라서 교통약자석 자리에 여유가 있어 편리했다.
승용차가 늘 집 앞에 세워져 있고 내가 운전도 할 수 있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운전할 것을 청하지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이력이 있어서 평소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는 근거리 위주로 조금씩 운전을 하지만, 통행량이 적은 지방에서 단거리만 왕복했던 터라 서울 시내를 안심하고 모시기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난폭 운전하는 기사분들이 많다고 흉볼 처지가 아니다.) 돌아보면 택시보다 지하철을 선호하셨던 것이 택시에 대한 불편함도 있는 한편, 자차로 편하게 모시지 못하는 나의 죄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시려는 배려가 아니었을지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