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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Dec 05. 2023

3개월 후에 봅시다

항암치료 끝나던 날의 기록

아득하게 느껴졌던 시간은 흐르고 2021년 2월 10일을 끝으로 엄마는 항암치료 일정을 모두 마치셨다. 마지막 6차 일정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하셨지만, 18번의 주사치료 과정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사히 마치셨다. 3차 이후로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으셨다. 


왼쪽. 암센터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창경궁/ 오른쪽. 주사 치료 접수 전 창밖에서


3개월 전에 예약된 CT 검사였지만 설 연휴로 일정이 밀려서인지 검사 시간은 2월 15일 저녁 8시 30분이었다. 지난겨울 동안 치료를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설 때도 어두웠지만 치료를 마치고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던 날도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치료 중에는 주사를 다 맞고 나왔어도 밝은 낮이었지만, 마음은 그대로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았었다. 하지만 이 날 밤 검사를 마치고 밖에서 바라본 병원은 평소와 달랐다. 병원 안은 여전히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로 가득한데, 병원 밖에서 보이는 불빛은 너무 반짝거려... 예뻤다. 비현실적 이리만큼...  


왼쪽. 병원 안은 치열한데, 밖에서 보면 이렇게 환했구나 / 오른쪽. 다음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그렇게 시행한 검사 결과를 2월 18일과 22일에 걸쳐 세 개 진료과(내과_췌장/담도암센터, 간담췌외과, 방사선종양센터)에서 들었다. 다행히 세 곳에서 모두 검사 결과가 좋다고 하시며 ‘3개월 후에 보자’고 하셨다. 


‘야호!’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온몸에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젊은 사람도 버티기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70대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신 엄마의 의지가 존경스럽다. 충격과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치료받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지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처음 진단을 받았던 날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지만, 그래도 행운과 보이지 않는 보살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발견하기 어렵다는 췌장암을 건강검진 과정에서 발견한 것, 예약하기 어렵다는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를 2차 병원 진료 다음 날 바로 할 수 있었던 것, 진료 이틀 후 급속도로 진행된 황달에 어찌할 바 몰랐을 때 바로 입원해서 시술받을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조직검사도 빨리 시행될 수 있었고, 전공의 파업 직전에 로봇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등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특히 온 지구가 유례없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시기 동안 엄마를 간병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직장이 지방에 있어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병원 출입도 제한되고,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조력받을 수 없어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지만, 직접 돌봄이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이 느껴진다. 


당장 항암치료 일정은 끝났지만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서 워낙 재발률이 높고 5년 생존율이 12.6%(2020년 국가암등록통계)의 고약하기로 악명 높은 암인지라 앞으로도 더욱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고 있다. 잘 해낼 것이라고...

엄마도 나도. 

엄마의 용감한 도전은 완치 판정을 받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초록 슬리브를 보며 곧 봄이 오기를 바랐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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