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와 요추 골절이라니!
엄마가 췌장암 수술받으신 후 1년쯤 되는 때였다. 항암 치료를 마치고는 6개월쯤 접어들 무렵. 항암 치료가 워낙 치열했기에 치료 중일 때는 다른 곳이 불편해도 신경 써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탈이 났다.
고생하시던 항암 치료가 끝나고 조금 기운이 회복되시려나 집안일을 하나씩 시작하셨다. 무거운 몸으로 종일 누워계시는 것보다는 움직이시는 것이 회복의 신호로 느껴져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도 들기까지 했었다. 반가움도 잠시, 허리가 아프다고 돌아눕기가 힘들다고 하셔서 정기진료 간 김에 정형외과 진료를 예약했다. 혹시나 암이 전이가 된 것은 아닌지 예약을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1주, 검사를 하고 또 1주.. 그 시간은 정말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일반 정형외과 전문 병원이면 당일 MRI 촬영까지도 가능한 곳들이 있다지만, 코로나 기간이고 대학병원에 그렇게 빠른 절차는 불가능했다. 초조하게 진료와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지! 척추 골절 진단!
‘어이쿠... 지금 상태면 왜 진작 치료를 안 받으셨어요. 이 정도면 100명 중에 6 번째예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걸로요.’
이제 겨우 한숨 돌리나 했는데, 척추 골절에 놀랄 새도 없이 다음번 진료에서는 요추에도 골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암이 전이된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위로하는 한편, 가볍게 다니던 산책은 그렇다 쳐도 누워계시기만 해도 이전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엄마와 정형외과 진료를 가면서 알게 된 사실. 암 진단을 받기 전부터 골다공증으로 동네 정형외과에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아오셨다는 것이다. 수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고 가끔 물리치료도 받으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마저도 중단하셨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예전에도 내게 말씀하셨었는지도,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큰일이 벌어지고 나서 엄마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해 갈수록 그동안 나의 편안함은 무심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척추와 요추 골절 진단을 받고는 입원 치료 대신 통원 치료를 받았다. 사이즈를 측정하며 몸에 맞춘 갑옷 같은 것을 입고 계셔야 했다. 석고 깁스는 아니라 탈착이 가능하지만 최대한 움직임을 적게 하셔야 했고, 집에서도 주무실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착용을 하셨다.
내가 엄마의 골절 진단에 배경으로 짐작하는 주요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항암 치료로 인한 전신 기능 약화이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흔히 알려진 탈모나 구토 같은 증상 외에도 예상보다 뼈나 근육의 약화도 상당한 것 같다. 원래 골다공증이 심하기는 하셨어도 골절까지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뼈에도 영향이 있지만 뼈를 지탱해 주는 근육이 손실되고 재생이 더디니 당연히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이런 위험에 대한 대비가 꼭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척추와 요추 골절 치료가 끝날 무렵에는 다시 치아에 문제가 생겨서 치과 치료로 넘어갔는데, 이 부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특히 치과 치료와 정형외과의 골다공증 치료는 병행치료가 어려워서 한쪽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동안은 다른 쪽 치료를 미뤄 둘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치료하고 있지만 늘 한쪽은 불안한 상황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골절 진단의 배경으로 짐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집안일이다. 엄마는 골절 진단 직전에 그동안 하시지 않던 집안일에 부쩍 시간을 보내셨다. 조금 회복된다는 느낌이 드셔서였는지, 아니면 회복을 위해서 힘을 내시려고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봄이면 장 담그기부터 겨울 김장까지 손수 하셨던 분인지라 1년여 다른 사람이 챙겨 주는 식사가 오히려 불편하셨던 것일까? 내가 직장 일로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장독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장을 새로 장만하시는 것도 모자라 집에 돌아오니 김치를 담그시겠다고 배추를 절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목격하던 순간, 절이던 배추를 그대로 내다 버리고 싶었다.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다양한 양념장과 각종 브랜드의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도 누구나 다 사서 먹는 것을 왜 굳이 몸도 편찮으신 분이 손수 하시려는지. 조금이라도 당신 몸을 더 아끼고 챙기셨다면 골절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당신을 더 챙기지 않은 것이 속상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머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당신이 아파도 묵은장을 살려내야 하고, 가족들에게 새 김치를 만들어 주셔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내 몸이 힘들어도 당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아직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자식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희생이나 헌신이 아니라 당신에게는 사랑일 테니까. 어리석은 자식은 아마도 평생 엄마의 그 깊은 사랑을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