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미사포는 면사포보다 아름다웠다
호스피스를 알아보면서 가장 1순위로 고려했던 병원은 바로 종교계 병원이었다. 호스피스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병원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생전에 엄마가 세례를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만 25세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는데,, 지금 그 순간을 떠올려도 너무 행복하고 떨리고 새로웠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태어난 시점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세례를 받으면서는 정말이지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에 충만했던 기억이 있다. 세례를 받은 후로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힘들 때 어떤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나를 다독다독 위로해 주는 느낌을 받곤 했다. 두렵고 불안한 순간에도 어딘가 끈이 닿아 있다는 느낌은 힘든 중에도 그것들을 감당할 힘도 함께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편찮으시기 시작한 후부터 언젠가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이 온다면, 오로지 엄마 혼자 그 순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울 것 같았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것처럼 누군가 손잡아 주어 꼭 편안한 곳으로 가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내가 세례를 받으면서 느꼈던 울타리, 보호자의 손길 같은 느낌을 엄마도 느끼실 수 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원래 종교가 없던 엄마였지만 2019년 말쯤이던가, 교리를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엄마는 평소에도 아침 일찍 EBS 왕초보 영어 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 보시는 모범 시청자셨고, 나이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즐기셨던 분이다. 배우는 걸 좋아하신다고는 해도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수개월 이상의 교리 공부를 해야 하는 지라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교리를 배우고 싶다고 먼저 말씀하셔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특정 종교의 영향이 아니라 당신께 주어진 날들을 묵묵히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하늘나라의 좋은 자리에 가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나도 오빠도 세례를 받았고, 조카들도 모두 세례를 받았으니, 너희들이 믿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교리 공부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하셨었다. 하지만 2020년 초부터 코로나 19가 휩쓸면서 지난 몇 년간 집합교육으로 진행되던 예비자 교리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그해 여름에 엄마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게 되셨으니 교리공부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그런데 병원 내 원목실이 있는 곳이라면 엄마가 바라셨던 교리도 배울 수 있고 가능하면 세례까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무엇보다 육체적 고통을 더는 것에 더 무게가 실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면, 심적으로나 영적으로 힘을 보태어 다가오는 마지막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믿었다.
그런 배경으로 가장 처음 외래 진료를 받고 입원 대기를 한 끝에 입원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입원 첫날 사회복지사와 면담 중에 희망사항을 이야기하였고, 나의 바람을 원목실에 전해주기로 했다. 바로 다음 날 엄마의 병상으로 한 수녀님이 찾아오셨다. 알고 보니 그날은 나의 바람이 전달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입원한 분들을 모두 한 번씩 찾아가는 의례적인 방문이었다. 종교계 병원이다 보니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원할 때 따로 방문도 하는 절차를 안내해 주시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찌나 반갑게 수녀님을 맞았던지 수녀님도 거울 같이 환하게 웃어주시며 엄마와의 첫 만남을 기뻐하셨다..
원목실 수녀님은 나의 바람과 엄마의 상황을 들으시고는 무척이나 환영하시면서 당장 교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일반 성당에서와 같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병상에서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허락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매일 오전 오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수녀님의 방문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주님의 기도, 다음 날은 성모송, 또 그다음 날은 묵주가 엄마 병상 옆에 놓이기 시작했다. A4 용지에 크게 확대되어 있는 기도문을 엄마는 읽고 또 읽으셨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통증으로 집중력이 흐려지셨고, 진통제 때문에 주무시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수녀님을 만나는 시간도 불규칙해졌다. 하지만 수녀님을 만나고 교리를 배우는 시간만큼은 눈을 크게 뜨시고 귀를 열고 이야기를 경청하셨다.
긴 하루가 교리를 듣고 배우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답답한 천장만 들여다보셔야 했던 시선을 수녀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미소를 나누는 시간으로도 도 채워졌다. 혼자가 아닌 시간, 조금은 덜 외로운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렇게 얼마간 교리를 배우고 나자 세례까지 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원목실에서는 교리 과정이 엄마의 의지로 시작하여 의식이 충분할 때 교리를 배우셨으니 대세가 아니라 정식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엄마의 세례식은 호스피스 병동 안에서 엄마 만을 위한 세례식으로 거행되었다. 엄마의 대모님은 나와 가장 절친한 동료 선생님의 어머님이 기꺼이 맡아 주셨다. 예쁜 꽃무늬의 미사포, 대추나무 십자고상, 올리브나무 십자가를 정성스레 선물로 준비해 주셨다.
세례식 날 아침, 밖에서는 세례식 준비가 한창일 때, 영성부장 수녀님이 엄마를 보러 오셨다. 수녀님은 더없이 환한 미소로 엄마의 세례를 축하해 주셨다. 수녀님은 엄마가 긴 시간 동안 투병해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물으셨다.
- 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투병을 하셨군요. 어떠셨어요?
- 외로웠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엄마는 외로웠다는 말씀과 함께 눈물도 보이셨다. 엄마를 떠올릴 때 강인하고 씩씩한 모습만 떠오를 정도인데, 외로우셨다니...
생각해 보니, 엄마는 늘 사람들과 함께 하신 분이었다. 문화해설사로 자원봉사자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구청에 복지관에 개설된 강좌도 성실하게 참여하는 학생이셨다. 그런데 코로나와 질병으로 의도치 않게 그 관계들이 차단되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구나 병마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리지 못해 죄송했다.
수녀님은 그런 엄마에게,
- 이제 외롭지 않으실 거예요. 저희는 이제 다 자매가 되었잖아요. 저도 있고, 교리 해주신 수녀님도 계시고, 사회복지사 수녀님도 계시고 저희가 모두 함께 있어요. 그리고 하느님도 예수님도 성모님도 모두 어머님과 함께 하실 거예요.
엄마는 그 말씀에 마음이 놓이시는 것처럼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 그럼 너무 고맙지요. 그래도 이 병원에 오고 나서 저를 이렇게 찾아주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좋았어요.
- 그럼요. 저희가 다 곁에 있어요. 천사들도 이제 함께 할 거예요. 나중에 하늘나라 가시면 **님을 더 많은 천사가 반겨줄 거예요.
- 그런데 너무 속상해요.
- 네, 뭐가 속상하세요?
엄마는 큰 글자로 확대되어 인쇄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 이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몇 줄 안 되는 것도 안 외워져요.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여기 누워서 읽어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읽다가 잠이 들면 또 새롭고... 머리에 안 남아서 너무 속상해요. 세례명도 안 외워지고...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불러도 내가 못 알아듣고 못 따라가면 어떻게 해요.
엄마는 아이처럼 눈물을 보이셨다. 수녀님은 그런 엄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 **님, 아유... 그러셨구나. 어쩜 이렇게 순수하실까. **님, 이름 모르셔도 돼요. 지금 이런 마음 하느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거예요. 하느님이 불러도 모르시면 그냥 빛을 따라가세요. 환한 빛을 따라가시면 하느님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하느님이 **님 길 잃지 않게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빛을 따라가세요.
그렇게 위로해 주시는 수녀님은 엄마의 순수한 마음에 뭉클해하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엄마의 외로웠던 마음과 불안했던 마음을 알게 되어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길을 잃지 않으시도록 빛을 따라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된 오늘에 감사했다.
그날의 엄마는 하얀 미사포를 마치 면사포처럼 쓰셨다. 마치 결혼하는 신부처럼 아름다웠다. 엄마 결혼사진을 보면, 시골집 마당에서 원삼에 족두리를 쓰신 모습이었다. 당시 구식이라고 하는 전통 혼례가 거의 사라질 때쯤, 서양식 결혼식도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가끔 엄마는 결혼식 때 면사포 한 번 써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두어 번 말씀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례식 날 엄마 머리에 씌어진 미사포는 면사포만큼 아름다웠다. 비록 병상에 누운 그대로 앉지도 못하셨지만 호스피스 중앙홀에서 병동 내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것도 엄마만을 위한 세례식으로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축하해 준 특별한 세례식이었다.
엄마는 그날 예쁜 이름을 하나 더 얻으셨다. 요세피나. 성모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 성인의 여성형 이름이다. 세례명을 정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요셉 성인은 노동자들의 수호자이자, 사회정의의 수호자이고 특별히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 품에서 임종한 유일한 사람이라서 그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셨다. 내가 엄마에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지 물었을 때, 당신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맞벌이하면서 평생을 쉴 틈 없이 일하셨고,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생각하신 분이었다. 더구나 요셉 성인의 축일은 3월 19일인데 사순절이 포함된 이 시기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진행되는 엄마의 마지막 날들이 부디 덜 고통스러우시기를 빈다. 요셉 성인의 축일이 있는 3월은 요셉 성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힘껏 투병 중이신 지금,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라는 의미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시라는 것을 떠올리시길, 엄마를 지키는 이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