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는 치료를 누릴 권리
엄마가 다른 병원 호스피스에 입원하신 지 딱 일주일 되셨을 때였다. 서울대 응급실을 거쳐 시술받은 곳을 유지치료 하기 위해 2차 병원으로 전원한 지 열흘 째 되는 날이었다. 한 달 전부터 미리 예약을 걸어 두었던 호스피스에서 입원하라고 연락이 왔었다. 전원을 원하지 않는 엄마를 설득하고 달래서 겨우 옮겨 올 수 있었다. 입원한 호스피스는 최장 60일간 머물 수 있었는데, 엄마는 1주일만 계시고 집에 가시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받고 전원을 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아갈 때만 해도 시술 후 바로 집으로 혹은 전원을 한다 해도 며칠 치료받고 집으로 가실 줄 알았는데 벌써 3번째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응급시술 후 옮긴 병원에서 각종 기초 검사들을 위해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는 과정부터가 고통이었다. 재원해 있는 동안 2-3일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했고, 각종 수액과 항생제, 진통제 등을 맞기 위해 잘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아야 했고, 기껏 찾은 혈관도 제대로 투여되지 않아 위치를 바꾸기 위해 또 다른 혈관을 찾는 일이 다반사였다. 알부민이나 수혈을 받아야 할 때는 다른 수액들과 다른 혈관을 찾아야 했기에 양팔에 수액줄이 걸렸다.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할 때는 발등에서도 채혈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엄마가 재원 중 가장 고통스러워하셨던 검사는 엑스레이 촬영이었다. 등 근육과 살이 빠져 척추와 꼬리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재원 기간 열흘 동안 세 번 시행했다. 반사판을 등에 댈 때마다 뼈가 쓸려서인지 방사선 기사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도 등에 살이 별로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손으로 잡아보면 피부가 잡히는데, 엄마는 그야말로 종잇장 같은 피부에 불과해서인지 그 고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평소 엄마는 통증을 너무 참는 게 문제일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과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짐작조차 되질 않으니 안타까움만 컸다.
그런 상황에서 기다리던 호스피스 병원에서 연락이 왔으니 반갑기만 했는데, 엄마는 단호히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기껏 서둘러서 여기저기 정보를 알아보고 미리 준비했던 노력은 둘째 치고, 당시 입원했던 병원보다 여러 면에서 시설이나 시스템, 장비들이 나을 것으로 예상되는 병원으로 가시지 않겠다니 허탈했다. 열흘 남짓 계시던 병원 간호사들이 이제 눈에 익는다면서 그분들 중 친절하고 공감을 잘하는 간호사 앞에서는 호스피스에 가고 싶지 않다고 두 번이나 눈물을 보이셨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호스피스’ 병원에 가고 싶지 않으신 것으로 오해했다. 흔히들 ‘호스피스에 가면 죽는다더라’, ‘이제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구나...’ 하는 말들이 호스피스에 대한 선입견인 것 같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호스피스에 대한 개념을 잘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시스템이나 여건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데 일조한 바가 없지 않아 보인다.
엄마만 하더라도 항암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보 아닌 통보를 받은 직후 호스피스나 요양병원 등에 대한 체계적인 안내를 받지 못했다. 암이 재발한 후 항암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묻지도 않고 바로 진료실 옆방의 약사로부터 항암 주사제와 치료 일정에 대한 안내를 이어서 받는 절차와는 너무 다르다. 항암까지는 병원이 환자에 대한 치료 의무가 있지만, 더 이상 항암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호스피스나 요양병원은 환자의 선택이기만 한 것일까? 호스피스든 요양병원이든 오직 환자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항암절차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돕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그때야말로 정보뿐만 아니라 더욱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시점인데 말이다.
대형병원들이 암병원 혹은 암센터를 따로 두고 환자를 치료할 만큼 암환자들은 많지만, 호스피스 병원을 별도로 둔 대형병원은 찾기 어렵다. 소위 빅 5라고 불리는 대형병원 중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곳은 종교계 대학병원이 유일했다. 별도의 암병원에서 치료받던 많은 환자들의 마지막은 과연 어디에서 보내야 하는지... 많은 환자가 몰리는 암병원 운영은 병원 유지에 도움이 되지만, 호스피스는 의료진의 수고와 노력이 더 세심하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수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외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병원이라 하더라도 병동에 침상수는 매우 적었다. 엄마가 입원하셨던 병원만 해도 1인실 2개, 남자 환자용 4인실 2개, 여자 환자용 4인실 1개가 전부라 총 14명이 수용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니 마지막 시기에 접어든 환자들은 요양병원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고, 오랜 시간 대기를 해서 운 좋게 시립병원이나 종교계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더라도 그때는 생의 시계가 거의 멈출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저기 호스피스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에 우리나라 환자의 평균 호스피스 재원 기간이 3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호스피스에 입원한다는 것은 곧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밖에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호스피스에 입원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임을 알았다. 어려운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수준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하다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엄마가 입원했던 호스피스는 최장 60일 입원이 가능했지만, 다른 병원들은 30일, 짧게는 2주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호스피스에 입원을 하고 있더라도, 다른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고 여러 병원에 대기를 걸어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족이 여럿이라 역할을 나눠서 맡지 않는 이상 간병과 병원 예약 및 진료까지 감당해야 했던 상황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벽처럼 느껴졌었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는 종교계 대학이 운영하는 호스피스에 입원하실 수 있었고, 다른 어느 호스피스보다도 의료진이며 제공되는 의료 수준과 환경이 탁월했던 것 같다. 엄마가 호스피스에서 다시 기본적인 검사들을 받으셔야 했던 것은 통과의례였지만, 확실히 달랐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케모포트를 오른쪽 쇄골 아래에 심으셨는데, 호스피스에서는 기본 혈액검사부터 수액 투여가 모두 케모포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전원 직전 병원에서도 케모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간호사가 있었지만, 사용을 꺼리는 것 같았다.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환자가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았어서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로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었다. 하지만 호스피스에서는 매번 어렵게 혈관을 찾으려 주사 바늘을 찔러 대는 고통은 면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호스피스에 대해 거부적이셨던 태도에서 한결 누그러지셨다. 물론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겪으셔야 했지만, 휠체어가 아닌 침대 채로 영상의학과로 이송되셨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동한 것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도 잠시, 어려움이 모두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 호스피스 성격 상 환자들은 위기 상태에 있다 보니 병원 면회와 간병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은 면회 대상이 가족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친구나 지인도 면회할 수 없었다. 하루 두 번 이른 아침과 저녁 시간을 피해서 면회가 가능했다. 한 번에 1명씩 30분간 허락된 면회는 하루 최대 2명까지 가능했다. 그렇게 정해 놓은 이유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만약 가족이 해외나 먼 곳에 사는 경우, 혹은 가족이 없는 미혼인 환자라면 누구의 방문도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더구나 직장을 다니는 경우라면 정해진 면회시간에 맞춰서 면회하려면 일과 중에는 불가능했다. 까다로운 면회 규정을 만든 이유를 잘 살펴보면, 생의 마지막 시간을 온전하게 가족과 함께 나누면서 차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뜻은 아닐까 짐작한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에게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뜻도 있을 테고. 하지만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가족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눈 지인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조차 제한되는 상황은 너무 아쉽다. 실제로 같은 병실에 계셨던 한 분은 서로 커튼을 내리고 있어 얼굴도 볼 수 없었지만 찾아주는 가족이 거의 없어서 입원부터 임종 직전까지 간병인과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면회 시간도 문제지만, 가족이든 간병인이든 한 사람은 환자 옆에서 24시간을 돌봐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는 가족조차도 면회자 신분이 되니 규정을 엄격하게 따른다면 하루 2번 30분씩 총 1시간만 함께 할 수 있었다. 물론 요령 아닌 요령이 생기고 환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 면회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족 중 1명은 24시간 환자 곁을 지켜야 하니 병원 밖에 잠시 외출을 하거나 다른 가족을 몇 시간만 대신하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내 경우는 방학이고, 휴직계를 낸 상태였기에 간병이 가능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혹은 다른 돌볼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24시간 가족 간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 역시 한 달 여 전부터 24시간 간병 중이라 체력이 떨어지고, 집에도 보살펴 드려야 하는 아버지가 계셨었다. 무엇보다 재원기간이 끝난 후에 전원 할 만한 다른 호스피스를 미리 알아보려면 하루는 다른 병원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 5일 간 간병인을 고용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안내된 정보로 간병인을 찾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1주일 이내의 짧은 기간 간병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간병인의 입장에서 보면 최소한 2주 이상의 장기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하지만 간병비를 고려했을 때 장기간 고용은 가족 입장에서 부담될뿐더러,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환자와 함께 보내려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간 간병인을 고용하는 일은 재정적 부담과는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
마침 가족의 24시간 간병이나 환자 1인 간병인 고용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동 간병인 제도를 운영하는 호스피스가 있었다. 당시 내가 알아본 서울 시내 호스피스 중에는 은평구에 있는 가톨릭대성모병원과 서울 시립병원들이었다. 4인실 기준으로 간병인 한 명이 보호자를 도와 간병을 해 주는 시스템 같았다. 임종기가 다가올수록 보호자는 잠시도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지는 데다가 한두 시간쯤 급한 볼일이 생기는 경우를 생각하면 공동 간병인 제도는 무척 유용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간병은 허락되지 않는 대신 환자 네 명 당 공동 간병인 1명이 고용되어 간병비도 나누어 부담하니 간병비 부담도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호스피스 병원은 입원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어차피 의료 기관에서 호스피스 병동의 운영이 어렵다면 가정형 호스피스라도 더 많이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는 호스피스에서 3주 정도 계시다가 5일간의 짧은 퇴원을 하셨었다. 뜻하지 않게 응급실부터 이어진 병원에서의 생활이 한 달이 되어 가니 집에 한 번 다녀오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셨다. 호스피스 환경에는 잘 적응하셨지만, 때를 놓치면 집에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엄마와 의료진이 모두 같았다. 세심하게 경과를 보면서 5일 간 짧게 퇴원 후 재입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5일간의 퇴원 기간 중에도 가정형 호스피스로 전환하여 집에서도 기본 치료는 받을 수 있었던 점이다. 투약하던 주사제와 몇 가지 처치 방법을 가정형에 맞게 변화를 주고 안정된 상태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필요했지만, 가정형 호스피스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가정형 호스피스를 전담해 주는 간호사님이 퇴원 당일 집으로 오셔서 병원처럼 안전하게 투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셨고, 주사제와 기본 처치 요령을 상세하게 교육해 주셨다. 그래도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24시간 언제든 연락하라고 안심시켜 주셨는데, 실제로 주사제 투여와 배액관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을 드리니 즉각 조치할 수 있게 차근차근 대응 방법을 알려주셔서 문제를 해결했다. 재입원 전까지 전담 간호사님이 두 번 방문하셨는데, 병원 환경보다 편하게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5일은 엄마나 내게 휴가 같은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좋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가정형 호스피스 역시 재정적인 면에서는 어려움이 많은 듯했다. 중증환자에게 치료비 혜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더 이상 ‘치료’가 아닌 ‘존엄한 생명 유지’를 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를 바라는 것은 역시 지나친 것일까.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환자들은 더 많은 배려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이다. 통증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고,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욕창이 무서운 속도로 발생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지막 빛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심리적인 두려움은 차치하고라도, 누구나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덜 아프게 그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호스피스에 있는 동안은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지막을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가. 그때는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없더라도, 고통이 온몸을 질식시킨다 하더라도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덜 고통스럽게, 덜 외롭게 세상과 작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