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시술 후 2차 병원 이송

불면의 밤, 어느 노인의 호명 소리에 깨어있던 날의 기록

by 오월의 나무

- 수영아!

- 수영이니?

- 수영아!

- 수영이야?


1분이 머다 하고 이름을 부른다. 애타게 찾는다.

잠시 후엔,


- 물 좀 줘요.


한 모금 드시는가 하더니


- 물, 물 좀 줘요.

- 아무도 없어요?

- 물 좀 줘요.


노인은 끊임없이 아들을 찾고, 간간히 손녀 이름을 불렀다. 간병인이 몸을 뒤척이다 마지못해 다시 일어난다. 물 한 모금 건네고 자리에 눕기 무섭게 또 물을 찾는다.


- 물 좀 줘요, 물....


노인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갈증을 느끼는가?

불러도 자리에 없는 그 이름과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호소하는 노인.

긁고, 긁고 또 긁는다. 보습제를 발라서 가려움증이, 피부가 조금 진정되는가 했는데 다음 날은 또다시 피부과 의사가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한다. 하루 밤에도 수도 없이 이름을 부르고 물을 찾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갈증. 노인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


정작 면회 시간에 아들이 오면 이번에는 5분도 채 못 되어 ‘집에 안 가니?’라며 떠날 것을 재촉한다. 심야에는 수도 없이 부르고 귀에 환청이 들릴 만큼 부르고 또 부르던 이름이 정작 눈앞에 있을 때는 머물게 하지 않는다. 노인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잠꼬대인지 혼자 잠들지 못하는 외로운 호소인지...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잠을 청하다가 오늘은 결국 노트북을 열었다.


설 연휴 첫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모두 고향으로 해외로 향한 탓인지 여느 때 보다 도로는 한산했지만, 진눈깨비가 거센 바람에 섞여 내리는 통에 시야확보가 어려워 엉금엉금 기어갔다. 전날 외삼촌이 엄마의 안부를 물으러 집에 오셨다가 부종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하시고는 다음 날 바로 응급실에 가기로 했던 터였다. 응급실은 연휴 첫날임에도 적잖이 붐비고 있었다. 도착해서 바로 접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적고 접수 여부를 기다리는데만 30분이 걸렸다. 중등도에 따라 접수 순서를 정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오전 접수의 막차를 탈 수 있었다. 피곤에 지친 응급의학과 의사는 엄마를 끝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아니면 지금부터 오는 모든 환자는 대기라며, 도보 내원 환자와 구급대 내원 환자를 모두 조치해야 하는 현재 상황을 몹시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4일 전 외래에서 엄마의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당일 복부 CT를 찍었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은 2주 후 다시 외래 진료였었다. 하지만 2주 후는커녕 3일 만에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몸 상태는 누가 봐도 빠른 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였다.


기초 검사로 혈액, 소변검사와 엑스레이 촬영까지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단단하고 부풀어 있는 배에 복부 초음파를 거쳐서 복수 천자가 시행되었다. 복수 천자는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응급실이라서 그런지 결과를 확인하고는 처치실에서 바로 처치가 이루어졌다. 처치를 하는 응급실 의사는 꽤 친절한 의사였다. 처치하는 동안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처치하는 동안에도 몇 가지 질문에 바로바로 답을 해 주는 등 보기 드물게 친절한 의사였다. 복수를 빼기 위해서 오른쪽 옆구리에 바로 긴 바늘을 꽂았다. 노란색 체액이 줄줄 뽑아져 나왔다. 의사 말로는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라고 했지만 500cc 노란 액체가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뛰었다. 연휴 전부터 황달과 부종이 심해지는데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을 것을 걱정하며 조마조마하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응급실에 와서 이렇게라도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순서는 배출된 복수를 통해 세균 검사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응급실 휠체어에 앉아 수액을 하나 달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우려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복수에서 세균이 검출이 되어 다시 추가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균 확인을 위한 추가 혈액검사와 복부 CT 검사가 이어졌다. 불과 며칠 전 검사를 했지만, 가장 최신 결과와 비교해서 적절한 치료법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 급성 담도염과 간에 농양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결과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다시 기약 없는 대기. 관련 과에 컨설트를 보내고 당일 시행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기다려야 했다. 응급실에는 휠체어에 앉아 수액을 걸고 있는 환자만 8명이었고, 간이 의자에 앉아서 수액을 맞고 있는 환자가 5명이었다. 대부분 보호자 1인씩을 동반하였으니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초만원이었다. 시간은 이미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것은 둘째 치고, 허리 펴고 다리 펴고 누울 만한 침상 하나 없는 딱한 처지.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응급실 옆에 딸린 보호자 대기실로 나왔다. 그나마 보호자 대기실 의자는 장의자여서 여유만 있으면 아쉬운 대로 환자를 눕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쯤엔 막내 이모가 이종사촌 동생이랑 함께 오셔서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참이라 둘이 앉아 있던 자리에 엄마를 눕혔다.


그렇게 1시간 반가량이 지났을까? 보호자 대기실에 누운 엄마를 찾아 의사가 나와서 다음 절차를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2가지 시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것. 하나는 복부경피배액술(PCD), 다른 하나는 경피경간담도배액술(PTBD). 하나는 복수에서 확인된 세균이 간에 생긴 농양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어 농양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담도에 관을 삽입해서 담도에서 배출되지 못하는 담즙을 체외로 배출하는 시술이었다. 시술동의서를 제출하고 또다시 대기. 예상치 못한 시술이었지만, 바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2주를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또 거기에서 시술 날짜까지 기다려야 했을 상황을 떠올리면 연휴에 이렇게라도 시술을 받는 것은 행운에 가까웠다.


오후 5시 30분쯤, 응급시술이 이루어지는 영상의학과로 이송되었다. 두 가지 시술이라 1시간은 넘게 걸릴 거라는 사전 설명에 비해 정작 시술은 영상의학과 대기실에 있었던 시간을 포함하여 15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렇게 빨리 진행된 것은 예정했던 2가지 시술 중에 한 가지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간에 있는 농양은 막상 들어가 보니 좁쌀 크기로 여러 군데 퍼져 있어 배액술로 시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결국 담도에만 튜브를 꽂는 시술만 하고, 간에 있는 농양은 항생제를 써서 처치하며 조절되기를 기대하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쨌거나 한 가지라도 무사히 시술을 마쳐서 다행이었지만, 국소마취가 이루어지긴 했어도 배액관을 달고 나온 엄마의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최근에 컨디션이 떨어져서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도 거동이 힘들었는데 배액관까지 달고 이송카 위에 있는 엄마를 화장실에 모시고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혹시나 하고 담아 온 성인용 기저귀를 채워드려야겠다 싶었지만, 응급실 어디에도 조용히 기저귀를 채워드릴 만한 공간은 없었다. 간호사는 침대 시트 하나를 건네며 응급실 복도에서 시트를 뒤집어쓰고 이송카 위에 있는 엄마에게 기저귀를 채우라고 했다. 아 이런..! 이송카는 높고, 엄마는 허리를 드는 것조차 힘들어하시는데, 기저귀는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모르겠고, 그 와중에 쓰고 있는 시트는 자꾸만 흘러내려 시트를 둘러쓰고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했다.


급기야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이모에게 SOS를 보내고 보호자 1인 이상 안된다는 것을 사정사정해서 응급실로 들어오시게 해서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저귀를 채웠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엄마는 기저귀에 이송카 위에 누운 채로는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통증에 아프고 힘들어도 의식은 너무도 또렷한 탓이다. 통증도 요의도 수치심을 이기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시술은 잘 마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형편없이 낮아진 알부민 수치에 알부민과 항생제, 수액을 계속 번갈아 가며 이송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어찌어찌 어렵게 시술은 받았지만, 연휴 동안 서울대병원에는 입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조건 이송은 기본, 어디든 받아 준다는 곳만 있으면 전원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3순위까지 희망 순위를 이야기하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린 게 무려 4시간. 꼬박 보호자 대기실에 누워 기다리 보니 밤 10시가 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12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복잡하던 응급실이 조금 한산해지고, 심야조 간호사들이 투입되었는지 그 사이 스태프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보호자대기실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때, 11시가 다 되어 갈 즈음에야 이송병원이 정해졌다고 했다. 3순위로 이야기했던 병원이었는데, 전원을 담당하는 간호사는 그나마 이 연휴에 환자를 받아주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로 위로했다.


엄마의 상태가 자차로 이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사설 구급차를 요청했더니 엄마는 구급차보다 내원할 때 도움을 받은 외삼촌과 오후부터 기다리고 있던 이모와 함께 이동하고 싶어 하셨다. 엄마의 바람을 고려해서 어렵지만 자차로 이동을 하기로 해서 구급차를 취소했는데, 만약 자차로 이동을 하게 되면 수액을 달고 있던 라인을 닫아야 하고, 약간의 열이 있어 해열제를 맞고 30분가량 대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어렵게 잡은 라인이니 그대로 수액과 해열제를 달고 이동하는 것으로 다시 의사를 전한 지 불과 5분이었는데, 그 후로 구급차를 타기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이 경우에는 무조건 구급차 이동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바로 구급차를 불렀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부르는 바람에 중간에 의사소통이 연결되지 않아 지연됐다는 것이다. 새로 부른 후 20분 만에 출동한 거라고 하지만 밤 11시 무렵 이송병원이 정해졌다는 안내를 받고 새벽 1시 8분에 구급차를 탄 것을 고려하면 너무나 긴 시간 대기하느라 고통스러운 건 환자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평소라면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단 15분 만에 주파하여 한강을 건너 2차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 1시 반 경 응급실에 도착하여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와 상태를 파악한 후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시각은 한밤 중인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은 하루 30분 밖에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고, 스스로 이동이 가능한 환자가 아니라면 24시간 보호자가 상주하여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일반병동을 권하는 분위기였다. 당장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을 시킨다고 하면 2-3시간에 한 번꼴로 화장실을 가야 하고, 그마저도 혼자서는 이동 및 처리가 어려운 상태인지라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차후의 문제일 테고, 우선 어디든 빨리 병상에 눕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찌 저 끼 병동에는 올라왔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이번에도 만만치 않았다. 병실 안의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크기가 아니었고, 병실 밖 복도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병원 내 장애인용 화장실이 무색하게 휠체어에서 변기까지 몸을 옮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엄마도 나도 울고 싶은 마음인 건 마찬가지. 없는 힘을 짜내어 몸을 안아 변기에 앉히고 가까스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했다. 병동에 올라와 간단한 간호기록 접수면접을 마치고 보호자용 간이 의자에 몸을 누이고 나니 피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집에서 나와 24시간이 지나는 무박 2일 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전원 온 병원에서 시행한 혈액검사 결과 알부민, 헤모글로빈 수치가 형편없이 낮은 것이 재확인되었다. 이틀 동안 3팩의 수혈을 하며 헤모글로빈 수치가 오르기를 기다렸고, 알부민 100ml를 10시간이 넘게 달고 있으면서 더디게나마 회복하길 바랐다. 간에 있는 농양을 말리기 위한 항생제는 각기 다른 종류 두 개를 아침, 점심, 저녁 계속해서 맞아야 했다. 오른손에는 수혈과 알부민을 위한, 왼손에는 수액과 항생제가 들어가는 라인이 잡혔다. 오른쪽 등 뒤로는 담즙 배출을 위한 배액관까지 달고 있는 상태로 한 번 화장실을 이동하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다리 부종은 조금 나아졌다 원상 복귀되었다를 반복하였다.


이틀에 걸쳐 320ml 2팩, 400ml 1팩의 수혈이 이루어지고 나니 혈색이 조금 좋아졌다. 응급실에서부터 맞았던 알부민은 전원 온 병원에서도 세 병이나 맞았다. 그 덕분인지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있던 발도 조금씩 부기가 빠지고 겨우 슬리퍼에 발이 들어갔다.


누군가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 명절 연휴가 하루만 더 길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임시공휴일로 월요일부터 하루를 더 쉴 수 있었지만 마지막 금요일마저 쉬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응급실로 향해야 하는 아픈 이와 그 가족에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연휴 하루가 얼마나 길고 초조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아픈 엄마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과 명절 연휴에도 묵묵히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지난 2월, 엄마가 응급 시술을 받으신 후 2주 남짓 2차 병원에 입원을 하셨던 어느 날의 기록을 꺼내본다.


밤마다 작은 인기척에도 아들과 손녀를 애타게 부르던 노인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여전히 불면의 밤에 대답 없는 이들을 기다리고 계실까?

부디 겨울밤이 너무 길지 않으시기를, 평안하시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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