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나는 구조된 수리부엉이를 방사하는 행사에 참관하였다. 간이 우리에 들어있는 수리부엉이는 주위의 많은 시선에 위협을 느낀 것 같다. 눈 위의 우각을 바짝 낮추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리부엉이는 전세계 올빼미과 맹금류 중에서 매우 큰 편이다. 이렇게 큰 녀석의 부리와 발톱은 날카로워서 사람에게도 치명적이다. 우리는 조심히 다가가 이 매력적인 새의 자태를 관찰하였다. 커다랗고 노란 눈을 가진 수리부엉이는 단번에 우리를 압도하였다.
이 수리부엉이는 한 달 전쯤 파주 장명산에서 발견되었다. 이 녀석은 절벽의 집에서 추락한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 이 수리부엉이를 발견하여 119에 신고를 하였다. 수리부엉이는 탈진된 상태이지만 다행히 골절이나 외상은 없었다. 구조된 수리부엉이는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재활훈련을 받았다.
한 달 동안 돌본 수의사에 따르면 이 수리부엉이가 한 시간만 늦게 발견되었어도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의사는 발톱의 상태나 크기로 봐서 이 수리부엉이가 3-4 세의 수컷이라고 추정하였다. 마을 주민도 최근 1, 2년 사이에 기존의 수컷이 사라지고, 새로운 수컷이 암컷 수리부엉이와 번식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이 탈진하여 발견된 수컷이 장명산에서 올해 번식을 시도한 수리부엉이 같았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1월 하순부터 번식을 시작한다. 사람이나 네발 달린 동물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의 중간쯤에 둥지를 잡는다. 알을 낳은 이후 암컷은 둥지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 암컷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알은 금세 추위 때문에 식어 버리고 만다. 포란하는 암컷이 굶지 않도록 수컷은 끊임없이 먹이를 물어 날라야 한다. 그래서 수리부엉이는 포란할 때 암컷과 수컷의 역할 분담이 분명하다.
수리부엉이의 양육은 암컷 혼자서 담당하기 어렵다. 이런 번식 체계에서는 수컷이 양육에 큰 기여를 해야 하고, 수컷이 공동으로 양육에 참여하는 일부일처제가 나타난다. 어느 한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새끼가 성공적으로 부화하고 이소하기 어렵다. 수컷 입장에서 보면 한 배우자와 양육에 전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수의 생존 가능한 자손을 기대할 수 있다.
일부일처제는 새들에서 아주 흔한 짝짓기 체계이지만, 수리부엉이의 일부일처제는 다른 어떤 새들보다 엄격하다. 예를 들면 수리부엉이는 다년간 같은 배우자를 유지하며 바람을 피우지도 않는다. 심지어 비번식기에도 수리부엉이 부부는 같은 장소에서 머무른다.
그렇다고 수리부엉이의 결혼 생활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조류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지만 바람을 피울 수 있다. 부엉이는 바람피우는 일은 드물지만, 대신 이혼을 할 수 있다. 스위스에 서식하는 헛간 올빼미의 경우 이혼률이 4분의 1에 가깝다. 보통 이혼은 주로 번식에 실패한 결혼 초반기에 일어난다. 처음 만나서 번식을 시도하여 성공하면 계속 살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한다. 그래서 헛간 올빼미는 대부분의 이혼이 1년 정도 같이 살아보고 일어났다. 우리 사람으로 치면 1년 정도 동거를 해보고, 서로 번식에 자신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결혼생활에 들어간다.
장명산의 수리부엉이 부부는 올해 번식의 실패를 맛보았다. 아마 수컷은 올해 처음으로 번식을 시도했던 것 같다. 번식 실패 후 수리부엉이 부부는 이혼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수의사에 따르면 수리부엉이의 경우 힘이 센 암컷이 수컷을 내쫓을 수 있다. 그 결과 수컷 수리부엉이는 절벽 밑에 떨어져 탈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올빼미과의 맹금류의 경우 이혼을 할 때 암컷과 수컷이 물리적인 충돌이 없이 서로 헤어진다. 물론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비행에 능숙한 수리부엉이가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전 세계에 약 만 종의 새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새들의 일부일처제는 사람의 일부일처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새들의 결혼생활에서 나타나는 좋은 점과 부닥치는 문제점은 분명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새들의 짝짓기 체계에 대한 연구는 곧 우리 인간을 이해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수리부엉이가 활동을 시작하는 저녁 무렵까지 기다렸다. 그런 다음 수리부엉이를 방사하기 위해 둥지로 사용되는 절벽으로 접근하였다. 나뭇가지와 풀들을 헤쳐 가며 오솔길을 걸었다. 절벽은 넝쿨식물이 일부를 수놓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커다란 새 한마리가 날기 시작했다. 수리부엉이 암컷이었다. 둥지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우리가 접근하자 놀란 모양이다. 암컷이 평소 먹이를 먹는 소나무 숲으로 날아갔다.
암컷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힘을 얻었다. 절벽 바로 밑의 평평한 장소에 간이 우리를 내려놓고,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나 수컷은 전혀 나갈 생각을 않는다. 우리가 두려운 지 커다란 눈으로 둘러만 본다. 그래서 우리는 간이 우리를 들어 올려 수리부엉이가 나가도록 유인하였다. 그 순간 수컷은 우리에서 튀어나와 날아올랐다. 어느 친구 머리 위로 비행하여 바로 암컷이 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하게 회복된 수리부엉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암컷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내년에는 번식에도 성공하기를 기원하였다.
이 글은 2016년 7월 26일자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52128005&code=990100
탐사일: 2016년 6월 23일
탐사장소: 파주시 오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