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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Aug 22. 2017

​하늘소의 습격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고, 나도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국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숲을 돌아다녀 보면 곧이곧대로 사실임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의 숲은 소나무 위주의 수종에서 참나무 위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것을 생태학 용어로 '천이'라고 한다. 참나무 수종으로 천이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나라 숲은 점점 성숙해져 간다.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이지만 일반인들이 숲의 천이를 눈치 채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져 숲의 변화를 알려 준다. 작년에 서울의 남산에서 솔부엉이가 인공둥지에 번식하고 있다는 일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올해는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에 인접한 지역에 하늘소가 대발생하여 지나가는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서로 다른 종이고, 지역도 다르지만 이 두 사건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7월 말에 하늘소가 사람을 습격한다는 우이동으로 향했다. 하늘소가 대발생 한지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어둑어둑한 시간이었지만 우뚝 솟아있는 북한산의 인수봉과 백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곧 북한산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소를 쉽게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얼굴에 부딪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바닥을 보니 여기저기에 하늘소의 사체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발걸음은 하늘소가 많이 출현했던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편의점의 강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편의점의 차양과 창문에서 하늘소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 검지 손가락만한 하늘소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경고음을 내었다. 그리고 큰턱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주치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버릴 기세였다. 살짝 손가락을 대었더니 바로 물어버린다. 조금 따끔하긴 하지만 심각하진 않았다.      


하늘소의 대발생을 이해하려면 집근처의 야산을 가봐야 한다. 보통 나무들이 일정하게 줄지어 심어져 있는 숲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숲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조림한 지역으로 키 큰 나무는 모두 소나무이다. 소나무 숲의 아랫부분은 주로 관목이나 어린나무이다. 이때 어린나무를 보면 미래의 숲이 보인다. 많은 경우 소나무 숲이라도 어린나무는 참나무를 위주로 한 활엽수이다. 지금은 소나무 숲이지만 미래는 참나무 숲으로 천이가 일어날 예정이다.      


성숙한 참나무 숲은 대형 야행성 곤충을 등장시킨다. 참나무 낙엽으로 이뤄진 부엽토는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좋아한다. 사슴벌레는 쓰러진 고목에 알을 낳고, 하늘소는 살아있는 참나무에 알을 낳는다. 이들 곤충은 모두 솔부엉이가 좋아하는 먹이이고, 서울 도심 한가운데나 인접한 산에 솔부엉이가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다.   

   

하늘소의 포식자 방어 전략도 이들이 대발생하게 된 이유로 중요하다. 솔부엉이와 같은 포식자에 대응하여 하늘소는 한꺼번에 모두 출현하여 동시에 짝짓기를 시도한다. 엄청나게 많은 수가 출현하므로 솔부엉이가 배부르게 포식할 수 있다. 그래도 하늘소가 충분히 살아남아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다. 이것을 포식자 포만(predator satiation) 전략이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수가 발생할수록 한 마리 당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떨어진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생물종은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대발생한 하늘소를 인가로 끌어들인 요인은 강한 조명이다. 밤에 활동하는 곤충들은 달빛이나 별빛 같은 천체의 빛을 이용하여 비행한다. 야행성 곤충들이 이런 달빛이나 별빛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밤에 곤충들이 달빛이나 별빛을 기준으로 비행한다는 가설이 많이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장애물이 없는 비행경로를 잡기위해 불빛으로 향한다는 가설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밤에 비행을 하는데 강한 인공조명이 근처에 있으면 곤충들은 달빛이나 별빛대신 인공조명을 향해 비행한다. 인공조명에 유인된 곤충들은 대부분 짧고, 혼란스러운 생을 마감한다.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늘소의 습격이 연례행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늘소 대발생의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숲에 참나무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 하늘소가 짧은 기간에 출현하는 이유는 포식자 방어전략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늘소를 인가로 끌어들여 지나가는 사람을 습격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은 강한 조명이다.      


그럼 하늘소 대발생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나는 하늘소가 대발생하는 시점에 맞춰 ‘하늘소 소등 지역’을 선포하자고 제안한다. 한 2주 정도면 충분하다. 호주 크리스마스 섬(Christmas Island)에서는 매년 수천만 마리의 홍게가 산에서 바닷가로 산란하러 대이동한다. 홍게가 이동을 시작하면 마을 주민들은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로통제에 동참한다. 우리나라도 초봄이면 두꺼비가 이주하는 길에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는 곳도 있다. 하늘소는 빛이 없으면 인가에 내려오지 않고, 사람을 습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잠시만 불편하면 하늘소와 인간이 서로 뒤엉키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조금만 양보할 수 있으면 하늘소와 우리는 충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이 글은 2017년 8월 22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212120005&code=990100



서울 우이동에 대발생한 하늘소 (배윤혁 제공)


서울 우이동에 대발생한 하늘소 (배윤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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