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등이와 대포는 서울대공원의 최장기 쇼돌고래였다. 무려 20년 동안의 수족관 생활을 마치고 올해 5월에 제주도로 이송되었다. 이 두 남방큰돌고래는 함덕 정주항 근처에 있던 가두리에서 약 두 달간의 방류적응훈련을 마치고 지난 7월 18일 방류되었다. 안타깝게도 방류 이후로 이들은 한 번도 목격되지 않고 있다. 한 번에 다섯 팀이 나서서 동시에 모니터링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나는 남방큰돌고래를 보러 9월 초에 제주도를 찾았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마중 나온 이화여대 장수진 연구원은 비가 오지 않는 지역으로 간다고 안심을 시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제주시에서 해안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래를 찾아 나섰다. 바다는 아주 잔잔했고, 날씨도 덥지 않았다.
남방큰돌고래는 일 년 내내 제주도 바다에서 살고 있다. 가끔 3-4 km 앞바다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남방큰돌고래는 해안에서 2 km 이내에서 자주 출현한다. 이들은 고등어와 전갱이와 같은 군집성 어류 또는 오징어를 쫓아 연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덕분에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은 해안에서 관찰만으로 가능하다. 이날은 제주도 서쪽에 있는 애월읍에서 시작하여, 한림, 고산, 신도, 무릉, 영락을 거쳐 일과리까지의 해안도로로 이동하였다. 이중 신도리에서 일과리 사이에 있는 '노을해안로'를 따라 해안을 돌다보면 돌고래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모슬포에 있는 한 돌고래 관광업체는 무려 85%가 넘는 발견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제주도 북동쪽에도 돌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경로가 있다. 신촌리에서 시작하여 함덕, 행원, 세화, 종달을 거쳐 성산읍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도 돌고래를 보고 싶다면 가 볼만한 곳이다. 2015년 이전에도 북동쪽과 남서쪽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발견되었지만, 제주 다른 해안에서도 종종 출현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이 두 해안 지역에서만 돌고래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다른 지역이 돌고래가 활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대부분의 돌고래들이 이 두 지역에 쏠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장 연구원은 전방과 바다를 능숙하게 번갈아가며 주시한다. 연안에서 수평선까지 훑으면서 떠 있는 건 다 본다. 가마우지, 부표, 쓰레기, 파도, 해녀, 모자반 등이 주로 보인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도 자주 본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남방큰돌고래의 삼각형 등지느러미이다. 가끔 차에서 전망이 좋은 지점으로 가서 조사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전 내내 찾았지만 돌고래를 보지 못했다.
차귀도에서 점심을 먹고 노을해안로에 들어섰다. 무릉리를 지날 무렵 장 연구원은 연안에서 돌고래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바로 길가에 주차했다. 나도 뛰어내려 갯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반짝이는 하얀 바다에 대조하여 검은색의 뚜렷한 삼각형이 보인다. 그리고 곧 아치를 그리면서 물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돌고래 무리가 보였다.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장 연구원은 한 15마리의 돌고래 무리라고 알려준다. 내 눈에 보인 것은 대 여섯 마리 정도인데 이 숫자에 2, 3을 곱하면 무리의 수를 가늠할 수 있다. 모든 돌고래들이 숨을 쉬러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나는 2013년에 방류한 제돌이를 보았다. 돌고래 무리 중에서 살짝 바란 숫자 '1'이 있는 등지느러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출산하여 새끼와 같이 있는 삼팔이도 있었다. 이제 새끼도 제법 성장하여 삼팔이를 따라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또 작년에 방류한 복순이도 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등이와 대포는 이 무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수족관에 오래 있었던 돌고래들은 생리나 행동이 야생의 개체와 다르다.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방류는 방류개체의 선정에서부터 야생적응훈련, 방류 및 모니터링까지 국제적인 권고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방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추적하여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 포식자에 대해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야생의 돌고래와 비슷한 운동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방류는 유기와 다름이 없다.
이런 방류 기준을 모두 통과했더라도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을 보냈기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대한 지식이나 필수적인 생존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금등이와 대포와 같이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아온 돌고래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또 이런 돌고래를 야생으로 방류해야 하는가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래서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 결과는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돌고래는 인간과 비슷하게 가족이나 친구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고 산다. 가두리에 갇힌 돌고래나 죽은 돌고래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면 우리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이별할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돌고래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자의식이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고래는 이제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로 인정한다. 돌고래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격체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해가 지는 노을해안로를 벗어나면서 금등이와 대포가 저기 어딘가 살아있기를 기원했다.
이 글은 2017년 9월 19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8210801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