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간사이 ( 코하타 - 우지 - 교토 )
- 2024년 4월 4일 목요일, 저녁 9시 -
"아~ 긴 하루였다"
..
퇴근 후. 맥주 한 캔 사들고 망원 한강 공원에 앉아
여의도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주말에 오토바이 타고 파주에 갈까.." 하며
주말을 계획하던 찰나.
"해외를 가볼까"
그래, 파주보다는 해외가 좀 더 낭만이라.
두 달, 세 달 못 버티겠으니
생각난 김에 떠나야 했고, 엔화도 쟁여놓은 김에
일본으로 떠나자 싶었다.
서울에 살다보니, 복작복작한 것이 힘들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시골로 가야지.
다음 날 아침,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4월 9일 - 4월 14일
나흘뒤, 일본 간사이 공항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예매하고 나서 보니, 내 여권 기한이 만료됐더라.
급하게 알아보니 '긴급 여권'이라는 빛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출국 당일에 발급을 해야 했다.
16시 비행기였고, 10시에 마포구청에서 발급을 완료했다.
역시 방법은 있어
근데 발급 비용 5만 원이더라.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서 괜찮았지만,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 2024년 4월 9일 화요일, 저녁 6시 -
나는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아. 숙소"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세세한 일정을 짜는 성격이 아니라,
큼직하게 가고 싶은 곳만 정하고 왔다.
우지 > 아마노 하시다테 > 나라
다음날 우지에 갈 계획이었기에,
기차 타기 편한 곳에 숙소를 잡아야지. 싶었다.
사람들이 하도 'JR 패스'를 끊으래서
5일짜리 패스를 사 왔는데, 모두 갈 수 있더라.
역무원에게 몸짓 발짓 혓바닥 굴려가며
오늘 어디서 묵어야 우지를 쉽게 갈 수 있나 물어봤다.
'난바'라고 하셨다.
찰떡같이 믿고 아고다를 켰고, 남은 호텔을 잡았다.
어찌어찌 도움을 받아 키티가 그려진 기차를 타고
난바로 와서, 바로 체크인을 하고 난 딥슬립을 했다.
-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 전에 바깥으로 나왔다.
가끔 도쿄로 연휴를 보내러 가는데,
항상 그 지역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보고 왔다.
와이셔츠에 브리프 케이스를 든 샐러리맨
긴 치마와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은 학생들
"음 - 이거지"
일본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날은 근교의 '우지' 마을을 가는 일정이었다.
가서 뭘 할 것이란 계획은 없었다.
블로그에서 본 고즈넉한 이미지에 끌려 일단 가보는 거지.
숙소는 저녁에 내가 서있는 곳에서
에어비엔비로 잡겠다.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체크아웃 - 12시, 나는 우지행 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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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로 가던 중, 창 밖에 마을이 너무 예뻐 보였다.
30분 쯤 지났나, 지하철 방송이 역 이름을 알려줬다.
' 코하타 '
-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홀린 듯 내렸고
코하타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조용한 단독 주택 마을과 대나무 숲, 작은 신사.
너무 예쁘게 핀 벚꽃이 길을 따라 핀 마을이었다.
아무도 없는 신사로 걸어 들어갔고,
자갈밭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조그만 신사의 자갈밭에 앉아
조용한 마을 풍경과 대나무 숲을 보며 일기를 썼다.
아무도 없었고, 온전히 나만 그 공간에 있었다.
펼쳐든 일기장이 이렇게 평화롭기는 처음이었다.
산책로를 걷는 노부부
책가방을 돌리며 집으로 오는 아이들
골목길 벚꽃을 쓸어주는 집 주인들
한국을 사랑하지만,
눈이 아프도록 평화로운 그림을
내가 언제 봤던가.
여유로운 내 마을의 모습과 소리,
배려가 피부로 와닿는 이웃과 자란 아이는
본인의 나라와 고향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마을이었다.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고,
우지에 도착했다.
우지는 녹차로 유명하고, '뵤도인'이란 명소가 있다.
관광지라길래 안 가려했지만..
근처에 있길래 걸어가 봤다.
사실 뵤도인은 기억 안 나고, 녹차 아이스크림 맛있었다.
온천지에 앉아서 멍 때리고픈 정자와 못가가 있었지만,
많은 관광객으로 그러지 못했다.
한 30분 돌아보다가, 뵤도인을 나왔다.
그러고는 구글맵을 켜지 않고 20분 정도 걸었다.
걷다 보니 폭이 넓은 강이 나오더라.
이거지!
분명 이 근처에 걸터앉을 강둔치가 있으리라.
바위에 걸터앉아 청승 떨 생각에 설레어왔다.
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경사는 둑을 쌓아 막아놨었고,
둑을 따라 걷다보니 완만한 경사가 보였다.
그 곳에 낡은 표지판이 뒤집혀있었고,
뒤집힌 표지판을 돌려보니,
나는 뒤집힌 표지판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오히려 경사를 따라 강둑으로 내려갔다.
''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내려오겠지"
''
어글리 코리안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없었고
이 멋진 강에 걸터앉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미안합니다 일본.
이 강 둔치에 걸터앉아 한 시간 정도.
지난 하루를 갈무리하고 일어섰다.
지독하게 평화롭고 깨끗한 그 모습을 담고왔다.
지난날부터 비행기 - 기차 - 도보로
긴 거리를 이동했더니 피곤이 쏟아지더라.
지도를 켜보니 역까지는 40분.
걸어서 출발했다.
..
다음 날은 '아마노 하시다테'로 이동해서
'이네노 후나야'라는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찾아보니 교토역에서 수월하게 갈 수 있었고,
나는 교토역 인근 맨션을 에어비엔비로 예약했다.
그러고 열차에서 사진을 보다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코하타역 사진을 올리니,
누군가 DM을 보냈다.
-
..
잠깐, 8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
- 2016년 12월 24일 도쿄 신오쿠보 -
8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혼자 도쿄에 갔다.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에서 누군가 말을 걸더니,
"한국인이죠?"
무슨 얼짱시대에 나올 것 같은 미남이 말을 걸었다.
그게 김형과의 첫 만남이었다.
김형은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군대를 다녀온 후,
모은 돈으로 일본에 놀러 온 상황이었다.
"일본 좋아요! 시험봐서 일본 대학 입학할까 싶네요"
"저 일본 사람이랑 결혼하고 살까 싶어요"
그에게 나는 그저 - 지나가는 사람이지않나.
무슨 말을 못 하리..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김형은 2년 뒤,
일본어를 독학하고 시험을 봐서
일본 명문대에 합격했고, 현재 일본에서 회사를 다닌다.
지난해 일본인과 결혼하여 신혼집을 꾸렸다.
이후 가끔 SNS를 통해 일본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멋지게 이루어냈다니.
..
김형은 지금 관서 지방의 나라현에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는 3일 뒤 나라현에서 보기로 했다.
교토의 숙소에 도착했고,
근처 식당에서 장어 덮밥과 맥주를 먹고는
나는 다시 딥슬립에 빠졌다.
"푹 자두자"
사각거리는 이불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다음 날이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마노 하시다테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