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이란 어떤 수업일까요? 잘 가르치기 위해서 전문적인 지식 이외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한국어 수업이 학생들 기억과 마음속에 오래 남을까요?
한국어 교사가 되어 처음 강단에 섰을 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기에 궁금한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았습니다. 각자 체험한 한국 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도 나누고 일상도 나눴습니다.
재미있던 기억은 외국 학생들끼리 쉬는 시간에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고 떠드는데, 정작 한국 사람인 제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영국에 있을 때, 외국 친구와 제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정작 영국인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랐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언어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이기에 이를 잘 활용하고 사용하면 됩니다. 비록 서툰 한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생활이 재미있고 한국어 공부도 즐겁다면, 이미 유학 생활을 성공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오늘날 교실 환경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전처럼 많은 학생이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고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한국에서의 재미있는 경험담을 나누는 것도 이제는 점점 낯선 풍경이 되어갑니다. 일부러 짝 활동이나 그룹 활동으로 대화를 독려하지 않으면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즘 교실에서 만나는 외국 학생들은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의 릴스, 유튜브의 숏츠 등을 보면서 자기만의 세계와 시간에 빠져드는 걸 훨씬 좋아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제는 선생님과 친구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AI에게 물어봅니다. 학생들은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조 발표 등과 같은 과제도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겨집니다. 쉽고 빠르게 해결가능한 숙제와 좋은 학점을 받기 쉬운 과목을 선호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삶도 그리 특별하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하면서 살아가느라 힘든 학생들도 많습니다. 고향에서 봤던 드라마 속의 한국과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한국의 삶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또한 교실에서의 선생님은 친절할지 모르지만, 일을 할 때 만나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은 때로는 매우 거칠고 무례하며 함부로 무시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생활은 자본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냉정한 삶의 현장'일뿐입니다.
예전에는 학생과 가까워지기 위해, 힘든 유학 생활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간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도 하고 회식도 하는 등 사적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과나 식혜처럼 한국의 전통 후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음식 문화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일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영란 법 이후,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이런 활동은 사라졌습니다. 교수자도 학생에게 강의 평가를 받기에 간식이나 식사 등을 제공하는 것은 뇌물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면서 교실 안에서 음식을 나눠 먹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회식 문화는 이제 서로에게 불편해졌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교실 풍경은 변했습니다. 학생들도, 사회도, 문화도 다 변했습니다.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아쉬웠고 때로는 그리웠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등의 표현을 배우면서 약과와 떡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던 그 시절은 흑백 사진처럼 옛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양한 한국어 표현을 배우면서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교사의 말 한마디가 이제는 더 이상 큰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도파민이 터지는 세상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더 편하고 재미있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유학 생활보다는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화려한 삶이 더 새롭고 매력적인 시대에 한국어 교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어쩌면 세상은 점점 더 건조하고 삭막해져 갈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국어 교실은 '웃음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한국어 지식을 전달하고, 잘 듣고 말하도록, 잘 읽고 쓰도록 가르치는 것이 한국어 교사의 주된 업무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온라인 세상에서 AI를 활용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 지식보다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 지식보다 더 오래 기억하는 건 뭘까요? 교사의 표정, 격려의 말,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시간, 교실에서 건넨 따뜻한 한마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AI는 학생의 상처와 울음에 공감을 하지 못하지만, 한국어 교사는 학생을 안아줄 수 있습니다.
이제 교실에서 꼭 필요한 것은 함께 웃고 서로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한국어 교실에 '웃음 한 스푼과 사랑 두 스푼'을 담아서 재미있고 다정한 한국어 교실을 만들어 나갈 때, 한국어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백성을 생각하고 사랑했던 그 마음을... 우리도 조금이나마 닮아갈 수 있다면 이미 그 수업은 성공한 수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