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입니다.

by apricity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살아가듯이, 모든 수업은 수업 목표가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수업을 하는 기관과 규모, 과목의 특성과 학습자의 특성 등에 따라 수업 목표를 세우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어 수업은 언어 수업이기에 문법을 가르칩니다.


혹시 여러분도 문법을 배웠던 때가 기억이 나시나요? 국어 시간에, 또는 영어 시간에 문법을 배울 때 어땠나요?


우리가 법조문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하지요. 문법의 '법(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스럽게 모국어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문법을 배워야 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때 지켜야 하는 체계적인 규칙과 질서이기 때문이지요.




한국어 교사가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어 문법입니다. 한글을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조금 헷갈리는데, 한글은 글자, 즉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이 바로 한글입니다. 한글은 많은 언어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입니다.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목적, 방법과 원리가 명확하게 밝혀진 문자 체계로서 생각보다 외국인 학습자들이 쉽게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말과 글을 말합니다. 한국어는 교착어인데, 교착어는 '은/는', '이/가', '을/를' 등과 같은 조사와 '-고, -니까, -어/아/여서'처럼 어미의 변화가 활발한 것이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제인 씨가 밥은/밥을/밥도/밥마저... 먹어요."
"비가 올까 봐/올 듯해서/ 올지도 몰라서/올 것 같아서... 우산을 샀어요."
"밥을 먹고/먹고서/먹고 나서/먹은 후에.... 차를 마셔요.


위의 예문을 보면, 조사와 어미에 따른 의미 차이를 외국인 학습자에게 잘 전달한다는 게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문법은 교사 입장에서나, 학생 입장에서나 넘어야 할 산과 같습니다. 교육 경력이 늘어날수록 학생의 다양한 질문에 잘 대답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교사가 한국어와 한국어 교육 방안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학생들 앞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잘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문법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교육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그저 공염불이 되어버리거나 소리 없는 메아리로 남아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집중을 잘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 쏟아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막상 학생들은 관심이 별로 없고 틈틈이 핸드폰을 보느라 바빴습니다. 정작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 선생님인 제가 학생보다 한국말을 더 많이 연습하고 있는 꼴이 되어버려서 속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어를 잘 안다는 것과 한국어를 잘 가르친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은 모두 한국어를 다 잘 사용하고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어 교사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어떻게 가르칠지를 많이 연구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연구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학습자 연구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한국어 교사는 학생이 얼마나 한국어를 공부했고, 왜 한국어를 공부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한국어 공부와 한국 생활은 어떤지, 교우 관계는 잘하고 있는지 등등 전반적인 것을 신경 써야 합니다. 학생의 상황을 잘 알고 이해하면, 문법을 설명하면서 예문을 이야기할 때도 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예문을 만들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좋아하고 재미를 느낄 만한 것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수업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혹여 한국 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나 부정적인 경험이 있다면 수업 중에 서로 나누며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수업 내용과 목표 어휘와 문법 등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한국어 교사가 무슨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이냐고요. 영어 교사는 안 그래도 되는데, 왜 한국어 교사는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냐고 불만을 제기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국어 교사는 때로는 엄마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상담 교사도 되었다가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합니다. 제1외국어인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학습 배경과 동기, 그리고 목적이 다를 때도 많습니다.


어떤 문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계획하기에 앞서 학생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이 되도록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미'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한국어의 특징만큼이나 닮아있습니다. 학생과 교사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수업은 하늘과 땅차이만큼이나 결과가 달라집니다.




한국어 교사는 생각보다 일이 고될 수도 있고, 그에 따른 보수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주어지는 성취감과 보람, 그리고 사명감을 통해 얻습니다.


혹시 한국어 교육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 중에서 한국어 지식이나 학력과 경력 등이 부족해서 걱정스럽거나 불안함을 느끼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불안과 염려는 잠시 접어두셔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셨다면,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 학생들의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면 이미 당신은 충분히 훌륭한 한국어 교사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 앞에서 행복한 한국어 교육을 펼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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