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한 학기를 좌우하는 열쇠

by apricity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는 처음 한국어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긴장과 설렘을 느끼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이미 익숙한 베테랑 선생님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의 글이 첫걸음을 떼는 선생님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며, 강의 평가의 점수가 생각보다 낮아서 힘들어하시는 경력직 선생님들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9년간 학생을 만나면서 '시작이 반이다'는 말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첫 수업'때문입니다. 첫 수업은 서로가 모르는 상태이고,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함께 공존합니다. 이 첫 수업을 잘하게 되면, 이후의 수업이 굉장히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첫 수업에서 서로의 인상이 기대보다 별로라는 느낌을 주게 되면, 교사는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 때로는 쉽지만 교실 분위기와 학생에 따라서는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어 교사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합니다. 저처럼 대학에서 유학생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학 부속 교육 기관이나 사설 기관, 또는 국공립 기관 등 다양한 환경에서 한국어 교육은 이루어집니다. 물론 다양한 환경만큼 지위도 천차만별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부터 단기 강사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두 동일한 "한국어 교사"라는 것입니다. 교육 환경과 근무 조건 등이 다를지라도 만나는 대상은 동일합니다. 바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처음 만날 때, 저는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립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너무나 유명한 시이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첫 시간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면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우리는 그렇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어라는 언어를 배우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추억의 시간을 만들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수강생의 이름을 가급적 미리 외우고자 노력합니다. 낯선 외국인 학생의 이름이 입에 익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권 학생의 이름은 그래도 쉽게 말하게 되는데, 베트남이나 몽골 등 다른 나라의 언어는 평소에 자주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보니 발음이 낯설고 어렵습니다.


지금은 한류의 열풍으로 달라졌지만, 제가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제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영국 친구가 제 이름을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는데 너무 놀랍고 반갑다 못해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나의 이름을 잘 불러주기 위해 한국어 발음도 찾아보고 몇 번을 연습했을 친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 수업 전에 학생의 이름을 여러 번 소리 내어 불러보며 외우고 들어갑니다. 물론 너무 많은 학생은 당연히 어렵겠지요. 그래도 학생들의 이름을 많이 불러보고 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교사에게 그저 여러 학생 중 한 명인 것과 교사가 기억하는 학생이 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학생들은 자기를 기억해 주는 교사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면, 수업 분위기도 좋고 학생들도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고 따라오게 됩니다. 한국어 실력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겠지요.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도 점점 커집니다.


"교육이란 양동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 불을 지피는 일이다. - W.B. Yeats
(Education is not the filling of a pail, but the lighting of a fire.)"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말처럼 한국어 교육도 그저 수많은 한국어 어휘와 문법과 표현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습 동기와 의욕과 의지를 갖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어 교육입니다.


제가 이렇게 첫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생의 이름을 미리 부르며 연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가 그 학생을 진심으로 환대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한 학생이 제게 올 때는 그 학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제게로 옵니다. 그리고 학생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비록 몸은 혼자이지만, 그 학생을 먼 이국 땅에 홀로 보내 놓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을 가족이 함께 옵니다. 특히 부모님이지요.


저는 아이를 낳고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학생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부모님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함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이지만... 그 마음을 압니다.


19년 차 한국어 교사로서 알려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첫 수업의 열쇠, 그것은 바로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출석부 명단'에 불과하겠지만, 이 글을 읽는 한국어 교사분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름도 학생들의 마음속에 의미 있는 이름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이전 03화왜 한국어 교사가 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