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미약한 글재주밖에 가진 게 없다 하더라도
첫 시작은 만화였다. 줄이 없는 스프링 노트를 여섯 칸으로 나눠서 사람 몇 명을 그렸던 것 같다.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의 일이라 자세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친구에게 노트를 선물한 기억만 있다. 내용이 썩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그 이후는 줄곧 글이었다. 내가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 감명 깊게 플레이했던 게임의 등장인물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쉬는 시간마다 공책을 채웠다. 오리지널 창작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 대회 두 곳에서 글쓰기로 상을 받아 총 20만 원을 받았다. 그때부터 글을 쓰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친구를 구름처럼 몰고 다니지 않았다. 내가 많은 사람, 불특정 다수가 보내는 애정이나 그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다 글을 통해서 나왔다. 번역은 그러한 행위에 포함되는 일이라 즐거웠다. 내가 쓴 소설이나 내가 번역한 자료가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득이 되고 나름의 쓸모를 갖는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겐 분명한 ‘자아실현’의 행위였다.
그러다 보니 대학 전공도 자연스럽게 그런 일과 연관이 되는 것으로 선택했다. 바로 문학이었다. 문학을 배우면서 엿보았던 인문학적인 사고방식, 소설가와 시인들의 치밀하고 위대한 사유, 사상가들의 선구적인 문장들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좋은 글을 많이 접하니 나도 더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었고 거기에서 오는 뿌듯함은 더욱 귀해졌다. 내가 글을 썼기 때문에 만난 소중한 인연도 있었다. 그러니 글과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취미는 글쓰기요, 생업은 번역이 되어 일할 때도 쉴 때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그 탓에 20대부터 손가락이 아파 병원에 많은 돈을 바쳤으나 글을 쓰는 게 고통스럽거나 싫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쓰기는 나의 ‘재주’였다. 내가 그나마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아무리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는 게 글쓰기였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이 말을 청산유수로 내뱉으며 기계가 인간이 지은 텍스트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AI 시대가 되자 나는 순식간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처음 경제 활동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지만 번역 일은 여전히 90% 이상이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다. 그나마 최저 시급은 오르는데 번역료는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프리랜서 일이 재밌지만 불안정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뒤로는 악착같이 회사로 출퇴근하는 일자리를 잡았으나 이제는 정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조만간 전직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직업 교육을 받고 싶은데, 하필 문학을 전공한 탓에 유용한 자격증을 따기에는 자격 조건부터 처음부터 다시 갖춰야 한다. 체육 성적이 그토록 못하던 수학보다 바닥이었을 만큼 운동 신경은 없고 이미 손은 남들보다 조금 망가져서 몸과 힘을 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손재주가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운전면허를 딸 때는 단계마다 총 다섯 번을 떨어졌으니 사실상 면허증을 구입한 셈이다. 정말 나는 타자 치는 일밖에 못하나 봐.
그 때문에 며칠 동안 내가 조금 미웠다.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 그나마 가지고 있다는 재능이 하필 사라져 가는 분야에 모두 쏠려 있는 건지. 심지어는 대학 때 어문학을 전공한 게 후회스러웠다. 인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그것을 온갖 곳에 적용할 수 있음을 나의 자산으로 여겼을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수학이나 과학을 잘했다면. 운동 신경이 좋고 겁이 없었다면. 대학 때 쓸모 있는 학문을 배웠다면. 하다 못해 체격이 좋고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었다면. AI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라도 괜찮게 했다면.
존재를 향한 좌절스러운 미움과 원성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도 흐리멍덩한 이 날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계 때문에 내가 나를 미워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고.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가 가진 최후의 보루는 언제나 나이기 때문이다. 그 무수한 의미와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던 요인들이 하나씩 사라졌을 때 내가 돌아갈 곳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 이 정도 글재주로는 단 한 사람에게도 감흥을 주지 못할 수 있지만, 대신 내가 이 문장들을 두드려 쓰면서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를 알아주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몸과 정신으로 태어났다고 가슴을 퍽퍽 치면서 억울해 한들 그 또한 나에겐 하나의 문젯거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많이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번역을 할 때는 이보다 더 알차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천직을 가진 자의 특권을 느껴보기도 했다. 졸업 논문을 쓰는 것마저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회상은 차라리 원망보다 유익하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AI 때문에, 기계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가진 본질과 자질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몹시 미약한 무언가로 전락했지만 그것을 싫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나다. 내가 나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죽음 말고는 없다.
마지막으로 기도가 아닌 위로를 위해 나 자신의 손을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