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를 온몸으로 막았다

by 제이드
sara-kurfess-Y9j7PLr8w90-unsplash.jpg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내 친구 중 한 명은 내가 예전부터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빠는 내게 긍정적인 기억을 남긴 적이 많지 않다. 친척집에 안 간다고 내 뺨을 때렸던 건 기억하지만 그 이후에 아빠가 내게 사과했던 기억은 없다. 아빠가 핸드폰을 던지고, 쿠션을 던지고, 부모님이 싸우지 않게 해달라고 내 방 창문가에서 기도했던 건 기억한다. 물론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 아빠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나를 안아주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해야 했을 때는 늘 데리러 와주었다. 독감에 걸려서 수액을 맞고 있는 동안 내 방을 환기하고 소독했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로는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엄마의 부은 입술 사진을 지울 수 없다.


아빠는 아마 엄마가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찍은 사진을 몇 개 가지고 있다는 걸, 그걸 내가 봤다는 걸 모를 터다. 나는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아빠를 싫어한다.


물론 그 감정에는 주관적인 이유도 덧붙일 수 있다. 가령 아빠는 자녀를 자꾸 ‘빚쟁이’로 만든다. 먹여주고 키워준 거, 돈 들여서 학교 보낸 걸 본인에게 매달 용돈을 부치는 식으로 갚아야 한단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은행 빚을 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며, 아니면 ‘고소’를 하겠단다.


내 월급은 꽤나 적은 편이지만 부모님에게 조금씩이라도 돈을 보내는 거에 별다른 이의는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구실을 드는 건 다른 문제라고 본다. 저절로 생긴 것도,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닌 생명을 먹여주고 키워주지 않을 거면 왜 태어나게 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약 20년간 ‘미성년자’, 즉 누군가의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혹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어디든 일터로 뛰쳐나가란 뜻인가?


그렇게 ‘가성비’를 따질 거면 우리도 할 말이 있다! 나와 언니는 해외 연수 한 번 나가본 적 없으며 사교육을 많이 받지도 않았고 재수를 비롯해 어려운 시험을 다시 치르겠다며 수험 기간을 길게 가지지도 않았으며(참고로 언니는 사법고시 합격자이다) 대학교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언니는 심지어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아빠는 언니의 대학 등록금을 낸 적이 없고, 나 역시 입학 시 등록금을 일부 받았는데 그것조차 입학금 자체를 언니가 내주었으며 2학년부터는 장학금으로 수업료가 다 채워져서 낼 돈이 없었다. 여기에 나는 공무원 시험을 무료 강의로 공부했고 나중에 추가로 결제한 유료 강의마저 합격 수기를 제출하여 환급받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빚을 갚고 있었다’.


엄마가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치부하는 것도 싫다. 엄마는 몇 년 간 말 그대로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웠다. 언니와 나를 양육했고, 엄마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노동력을 사야만 해결할 수 있는 가사 노동을 했으며, 온갖 음식점에서 아빠가 노동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이른바 ‘바깥 돈 벌어오기’도 했고, 아빠가 일을 손에서 놓은 뒤로는 손녀를 키우면서 가장 노릇도 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악질적인 채무자인 것처럼 아빠는 달려들었다. 본인은 ‘우리를 죽이고 감방에 가면 된다’면서.


그때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아빠를 막았다.


마침 들고 있던 커다란 액자를 힘껏 밀었다. 기억의 왜곡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 나는 떨지 않았다. 나는 꽤 특이한 순간에 침착한 재주가 있다. 그래도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냈다. 슬그머니 핸드폰으로 녹음 기능을 켜면서도 아빠가 싫어하지 않을 말을 쉽게 반복적으로 했다(돈 부칠 거야, 내가 안 부친다고 한 게 아니잖아).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분명하게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엄마를 먼저 보내려고 했다. 결국 함께 그곳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나란히 울었다. 그리고 엄마를 안아주었다.


감정을 추스르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나중에 엄마는 아빠 목소리도 조금 울먹이는 것 같았다고 얘기했다.


무엇이 우리를 눈물짓게 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엄마의 젖은 눈을 보면서 무언가가 공감된 건 아닐까. 이혼하고 나서도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엄마가 그냥 너무 불쌍해서였나. 혹은 내가 돌이킬 수 없이 아빠를 더욱 미워하게 될 미래를 무의식적으로 씁쓸하게 여겨서였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코 남편과 배우자 관계처럼 정리될 수 없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아주 볼썽사납게 격하되었기 때문일까.


아마 마지막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아빠라는 사람이 내가 온몸으로 막아야 하고, 한 달에 얼마씩 주어서 그 성미를 달래주어야 하며, 진심으로 오래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채권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