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JE 마이제 May 06. 2024

간호학과, 고등학교 4학년

02. 대학생 때 해야 할 것들

대학생이 되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줄 알았다.

손바닥만 한 핸드백을 옆에 매고, 

얇은 전공책 한 권을 손으로 안고 등교하는 모습.

공강시간에 남학우들과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인문학을 논하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이왕이면 사랑도 논하고요)


하지만 간호학과는 달랐다. 

자대병원 옆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강의실에서 0교시부터 7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여자애들이 얼마나 독한지 시험이 끝나면 다음날부터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애들도 있었다. 

짐작하시겠지만, 4년 내내 학과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직장을 얻게 해 준 고마운 학문이다.


간략한 간호학과 생활대학생인 나에게 가서 해주고 싶은 조언들을 풀어본다.


동아리 : 무조건 하기

입학도 전 OT에서 장기자랑을 하라기에 차력을 하겠다고 코로 촛불 몇 개를 껐더니 한 선배가 나를 끌고 가 자기 동아리로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훗. 내 콧바람이 좀 괜찮았나.


그 선배가 끌고 간 동아리는 의대+간호대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술동아리'였다. 

의대 선배들이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생화학 공부를 공짜로 시켜준다고 했다. 

하아. 뭐여. 대학교 왔는데 뭔 '학술'동아리여.... 실망했다. 


그렇지만 철두철미한 계획 없이 40살 넘도록 살아온 인생 아닌가.

들어오라고요? 그러세요 그럼.

이렇게 허망하게 이름도 잘 모르겠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 모든 것이 우연히 찾아왔다. 


하지만 이 동아리가 내 대학생활 4년의 전부였다. 

찐하게 첫사랑도 했고,

아직까지 찐한 평생친구도 여기서 얻었다. 

나는 '간호학과 학생'이라기보다 차라리 '동아리원'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동아리활동은 무조건 무조건 하는 게 좋다. 

요즘 친구들은 '의리' 이런 거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에서 사회생활 거의 다 마스터하고 나온 것 같다.

우정, 사랑, 선배님 의전부터 차디찬 배신까지 웬만한 건 다 배우고 나왔다. 

확실히 사회생활 초반에는 동아리활동 한 친구랑 안 한 친구의 사회성 레벨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20년 전 이야기니 참고 바란다.



공부 : 학점관리는 기본

공부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요리조리 머리카락 빠지게 연구, 해석, 창조를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공부량은 많았지만 그저 다 덮어놓고 때려 외우기만 하면 되는 과목들이었다. (쉽다고는 말 안 했다)

그저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성적이 괜찮게 나왔다. (내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편이 아니어서 힘들었을 뿐)


토익, 토플이야 언제든 점수가 갱신되지만 학점은 갱신할 수 없다. 

학점관리는 잘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나는 계획성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동아리가 '학술'동아리라서 얻어걸렸다.

선배들이 수시로 족보를 내려주었고, 어려운 과목은 정말로 과외를 해주었기에 우리 동아리 친구들이 늘 상위권에 있었다. (우리도 시험을 치르고 나와서 기억나는 문제들을 그대로 적어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 어쨌든 동아리는 하는게 장땡.


동기들도 각자 개성 있게 공부했다. 

한 명은 모든 동아리의 족보를 비밀리에 베껴왔다. (분명히 우리 동아리의 족보도 흘렸을 것이다 ㅋㅋㅋ)

한 명은 교수님의 농담까지 총천연색 볼펜으로 죄다 기록하는 초능력을 발휘했다. 

한 명은 위의 노트를 가져다가 단권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맨 마지막까지 공부를 미루다가 마지막에 시험공부에 합류함으로써 그녀들의 노트를 얻어내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었다. 


1학년 성적이 우수해 교직이수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상위 5~10%)

(교직이수 과정이 설치되지 않은 간호대학도 꽤 있으니 보건교사가 목표라면 미리 알아보고 진학하자)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공무원은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교수님을 찾아가 당돌하게 말했다.

"저는 교직이수 안 할 거예요. 다음 친구에게 기회를 주세요, "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다. 헛소리 말고 교직 이수해!"

그래서 또 그러겠다고했다. ㅋㅋㅋ 의외로 순종적


아침 8시에 삼각김밥 먹으며 0교시가 시작하고, 7교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은 다들 데이트하러 나가는데.

나는 또 잠깐 쉬는 시간 동안 삼각김밥을 먹으며 미친 듯이 본캠으로 가서 사범대 교직이수 수업을 들었다. 


교육학개론, 교육과정, 교육평가, 교육심리, 교육사회, 교육철학 및 교육사,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교육행정 및 경영, 생활지도 및 상담 등. 뭐.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 공부 역시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고 달달 외우면 그만인 과목들이었다. 머리가 좋아야 하는 공부라기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할 수 있는 공부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과 공부도 그런 종류의 것이라는 것. - 암기량이 많아진다는 소리.


공부 잘하는 여자애들이 학과 공부만 해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거기에 교직이수 과목까지 공부하려니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계속 말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여러분에게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공부할 양이. 

겁나게 많았을 뿐이다. 


(feat. 동기들 국가고시 공부할 때 교생실습 4주도 나가야 한다. 뭐, 그래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고, 크게 힘든 것도 아니니 걱정 말자. 어렵지 않다. 그냥. 많다.)

여튼, 1학년부터 학점 관리를 잘해야 교직이수가 가능하다.


또, 나는 4학년 들어가는 2월에 서울아산병원 인턴쉽과정을 마쳤고, 취업확정통보를 받았다. 

국가고시 공부와 취업준비로 바빴던 친구들에 비해 마음이 엄청나게 편했다.

4학년 내내 수업도 거의 듣지 않고 여행다니고 술마시고 신나게 놀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학점 관리가 중요하다.

좋은 병원 인턴쉽 기회도 성적순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을 사라

공부량이 많네 어쩌네 해도. 

내 인생 중 시간이 가장 많았던 때가 대학생 때다. 


기회가 되는 경험은 그냥 닥치는 대로 모두 해보기를 바란다. 

교직이수든, 자격증이든, 해외연수든. 인턴쉽이든. 

일단 다 따고, 다 해봐라.


현실적인 문제로 안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어려울 것 같아서, 귀찮아서 피하고 싶다면. 그냥 해라.

내가 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그럼 그냥 해라.

시간이 없다고? 그럼 그냥 해라.


접수하면, 일단 하게 된다.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그냥 해라.

하고 실패하는 것이, 안 하고 고민만 하는 것보다 천만 배 낫다.


교직이수 안 하겠다던 나는 동기 중 1번으로 보건교사가 되었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여행도 많이 다녀라. 

내 주변 성인들은 거의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시야가 꽤 좁았던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가 넓어졌다.


만약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경험을 사라.

'좋은 경험'이어야 한다. 

물론 술 먹고 클럽 가고 춤추고 연애하고 다 좋다. 

하지만 많은 경험 속 주된 경험은 '좋은 것'이길 바란다.

좋고 나쁜 것을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위에서 언급한 책, 관계, 사랑을 제대로 경험했다면 이미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다. 


당신의 낮이 달라지면, 밤에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샤넬 가방 한 개 사도 내 마음속 허망함은 그대로이고, 그 가방을 멘다고 해서 내가 이부진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돈으로 경험을 사라.

직접 돈을 벌 수 있으면서

직장 연차를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아이의 이유식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젊은 날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다.




책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래서 안 읽었다.

공부, 동아리활동, 연애사업도 바빴다.

도대체 책으로 어떻게 인생이 바뀐다는 걸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물론 책 한 두 권으로 인생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하루 중 수십 번 하게 되는 선택이 달라진다.

그 작은 선택이 쌓여 내 인생이 달라진다.


고민이 있다면 1~2년 더 산 선배들을 찾아가기보다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천재들이 읽고 인정한 사상이고 생각이다. 

거기에서 삶의 힌트를 얻기 바란다. 

만년 전에도 인류는 사랑을 하고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당신이 하는 그 모든 고민의 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정말 대학생의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술 좀 그만 마시고, 그 시간에 책 좀 읽어라. ㅎ



놀이와 연대

잘 놀아야 한다. 

연애도 후회 없이 해봐야 한다. 

20대는 순수하다. 

사람을 쉽게 믿고, 계산 없이 관계를 맺는다. 


앞으로 앞싸대기 뒷싸대기 정수리 타격을 정신없이 맞겠지만, 

맞을까 봐 무서워서 벽을 두르지는 않길 바란다. 


'좋은 사람'을 만나라. 

'좋은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일단 많이 만나야 한다.

사람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쌓아라.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순수할 때 맺은 인연은 평생 당신의 영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많은 관계를 맺어봐야 나를 바로 볼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나를 새롭게 고쳐 쓸 수 있다. 

또,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될지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책으로 공부하고, 관계 속에서 실전으로 배워라. 

사회 나가서 배우자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타인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마인드를 가져라.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남자친구를 뜯어고치려 하지 말자. 그래야 나도 나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 이것이 즐겁게 사는 비결이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을 찾아라.

사회의 평판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설계한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 어떤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을  찾아라. 그것을 찾는 것이 초, 중, 고, 대학생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적어도 남들만큼은 잘할 준비를 해라. 

자격증이 필요하면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익혀야 하면 기술을 익혀라.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재능이 없어 고민인가? 나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좋아 죽겠는 일을 고르라고 하고 싶다.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죽지 않는다. 우리는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할 수 있다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그럭저럭 공부를 잘했고,

대학에서 시험을 그럭저럭 잘 봤을 뿐.


그래서 지금 뒤늦게 사춘기가 와서 몹시 방황 중이다. ㅋ


되도록 젊을 때 본인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기 바란다.


마흔 살쯤 되면 인생을 크게 바꾸는 선택은 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요즘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산다. 

물론, 인생에서 완전히 늦은 때는 없다. 

마흔이 넘어버렸지만, 나는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쪽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젊다면! 그 질문을 지금 하라! 치열하게!!!


(병원 취업 이야기 To Be Continue)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간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