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여행을 끝내고 다섯 시간 반을 내내 운전해서 드디어 창원에 도착했다. 파주와는 또 다른 이유로 이번 휴식의 목적지로 정해진 경상도다. 적당히 갖추어진, 그리고 조용한 파주 출판단지와는 또 다른 이유였다. 바로 추억의 장소이자, 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추억을 여러 차례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노래를 들을 때, 어떤 바람의 온도가 느껴질 때, 길을 걷다가 어떤 익숙한 향기가 풍겨올 때, 또 어떤 느낌이 이유도 알 수 없게 피어날 때 그 당시를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 그러한 계기로 되돌아보게 되는 추억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해외여행,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경상도.
태어나서 초, 중, 고를 한 지역에서 보낸 나는 경상도로 대학교를 진학했다. 가 본 적 없는, 이름도 생소한 도시들을 지나고 지나서야 4년간 살게 될 나의 보금자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생소함과 불안함이 상당히 컸다.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보다, 여기서 일본까지가 더 가깝네"라며 친구들과 농담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한 불안한 농담이 무색하게 누구보다 알차게, 즐겁게, 행복하게, 뿌듯하게, 기억에 남는 4년을 살았으니 어찌 보면 내 대학 생활은 대성공이다.
아무튼 이러한 까닭에 이번 여행 경로에 반이라는 꽤나 큰 비중을 경상도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보다도 차가 더 막히는 바람에 저녁 늦게나 창원에 도착하였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구해놓은 숙소에서 이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선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함께 힘든 과정을 헤집고 나온 스터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해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 밀어주고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것에 서로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집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릴 수도 있는, 끝없이 내 것을 모두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실제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서로를 대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들은 다 이 주변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진주에서, 밀양에서, 포항에서 나름의 생활을 만들어가며 알차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이 항상 있다. '만약 내가 경남에서 임용을 치고 쭉 살기로 결정했더라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하는.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친한 친구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동기들, 왜인지 같은 과 동기들이랑은 연락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과에서도 동기들이랑 꽤 친하게 잘 지냈었는데, 유독 우리 과 동기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서울로, 경기로, 충청도로, 전라도로.. 그래서일까 누구도 '한번 다 같이 모일까?'라는 제안을 하기 어려웠나 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번 친구들은 우리 과 동기들은 아니다. 4개의 각기 다른 과에서 친해진 친구들이다. 꽤 오랜 시간을 보지 못했지만 언제 만나도 대학생처럼 즐거울 수 있는 친구들. 얼른 보고 싶다.
그 이후의 일정은 하나도 생각해 둔 것이 없다. 그리고 남은 모든 일정을 창원에서 보낼 생각도 아니다. 진주, 통영, 거제 등 마음이 닿는 곳으로 무작정 움직여 볼 생각이다. 대학교 때 놀러 가 본 곳에 다시 놀러 가 보기도 하고, 학교 앞 허름한 식당에 다시 찾아가 보기도 하고, 분식 세트와 함께 했던 술자리를 그리워하며 분식집에 들러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10년간 내가 바뀌어 온 만큼, 친구들도, 학교도, 장소들도 엄청나게 바뀌었겠지. 바뀐 그 모습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바뀌어버린 모습을 앞으로 살아가며 다시 그리워하게 될까. 아니면 바뀌기 전, 그 예전의 모습을 여전히 추억하게 될까.
추억의 힘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