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두 번의 대피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수요일에는 안전한국 훈련의 일환으로 오후 2시에 민방위 훈련을 겸한 지진대피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금요일에는 3교시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화재대피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마땅히 때가 되면 잊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대피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나는 이번 주 훈련 스케줄을 보고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올해 이 학교에서 방송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에 항상 훈련이 있는 날이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방송교육 업무 담당자가 미리 내려가서 준비도 해야 하고, 사이렌도 직접 틀어야 하고, 화재 대피를 위한 안내 방송도 해야 하며, 교실로 아이들이 다시 들어간 뒤에는 안전교육 영상도 재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담임을 맡고 있는 나는 훈련 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걱정이다. 나는 업무 때문에 1층에 있는 방송실에 내려가서 이런저런 조작을 훈련 시간 내내 해야 하는데 우리 반에는 대피를 도와줄, 아이들을 인솔해 줄 교사가 없으니 말이다.
평소에는 도덕 시간을 대피 시간으로 옮겨서 하곤 했다. 도덕 선생님이 교과 전담 교사로 따로 계시기 때문에 교실에서 함께 대피를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주처럼 대피 훈련이 두 번이나 겹친 때에는 참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학년 부장 선생님과 교과 전담 선생님께서 논의 끝에 우리 반 대피 인솔은 어찌어찌 해결이 되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물론 들었지만 어이가 없기도 했다. 물론 내가 방송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계 작동을 준비해 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훈련 시간에 음성파일의 재생, 방송 멘트, 영상파일의 재생을 버튼을 눌러 실행시키는 것 정도는 누군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담임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힘듦이나 아쉬움 없이 알아서 해냈을 것이다. 나는 올해 실시한 4~5번의 대피훈련을 우리 반 아이들과 한 번도 함께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은 도덕 선생님, 체육 선생님 또는 처음 보는 선생님과 어색한 대피를 해야 했다. 진짜로 불이 나도 방송담당인 내가 내려가서 사이렌을 울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거냐고 한 우리 학년 부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안전교육과 대피 훈련을 총괄하는 행정실에서는 아쉬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차피 행정실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방송기기 조작을 하더라도 실수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내가 내려가야 하므로, 애초에 내려와서 맡아해 주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을 했다. 훈련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진행하는 단계에서 행사 진행에 관련된 부분과 함께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계획에 마련해준다면 나야 마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일부 부장회의에서는 내가 내 업무를 열심히 하기 싫어서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는 등 힘든 척을 한다는 투의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물론 누구 한두 명의 의견이긴 하겠지만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다. 보통 대피훈련을 하는 시간에는 나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담임 수업을 하곤 한다. 전담교사가 수업을 하게 되면 진도를 다른 반과 맞추기 어려울뿐더러 담임교사가 할 일이 붕 떠버리기 때문에 담임이 맡아서 대피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이루어졌다. 교무실에는 몇몇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담임은 없다. 선생님들이 먼저 우리 반 아이들 인솔에 도움을 주었다면, 도움 줄 사람을 계획에 넣어주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도 언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 떠넘기고 편하기만 하려 한다고 깎아내리는 그런 말과 행동에 너무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난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하고,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과연 그런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업무라고 쓰인 한 줄짜리 소개 문구에 따라 척척 진행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이리저리 시간표를 바꾸어가면서 난감해했는지 알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대피 훈련 때마다 3층에서 1층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땀범벅이 된 나를, 대피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 느지막이 걸어 나오며 마주쳤을 때 조금이라도 뻘쭘하거나 민망했다면 그런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차피 나는 이러한 상태로 1년을 모두 지냈다. 나는 학교를 이제 옮겨가야 하는 입장이지만 내년에도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전담 선생님이 방송을 맡던지, 아니면 대피훈련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 보조해 줄 업무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방송교육을 제외한 다른 업무들은 이유도 모르게 2개, 3개로 나누어졌다. 우리 학교 학급 수가 내년에 늘어나서 교사 정원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럼에도 방송 업무는 그대로다. 난 충분히 할 만큼 의견도 내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투정으로만 보이나 보다. 내년에 누가 이 업무를 맡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