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령
오래전 제가 북경에 있을 때 후진타오가 아프리카를 돌았습니다. 지금의 중국주석은 곰돌이를 닮아 푸근한 인상의 시진핑이지만 당시엔 후진타오였어요. 정말 까마득한 이름이군요. 후진타오라니. TV에서 그는 이름 모를 독재자와 나란히 무개차를 타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학교 대신 도로변으로 끌려 나온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구령에 맞춰 환호를 지르고, 후진타오와 독재자는 “이미 가난한 나라를 조금 더 가난하게 만들자고” 합의를 합니다. 그 대가로 후진타오는 독재자에게 혼자 먹고살 돈도 좀 주고 만약을 대비해 AK소총을 건네는 것이죠. 까불면 아무나 갈겨버리라고. 천연자원만 대주면 당신 뒤는 13억 인민들이 든든하게 봐줄 테니 그깟 사람들의 눈치는 볼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이번 순방의 이름은 우호합작(友好合作)이었습니다.
우호합작이라...
천안문
별것 없는 이 구도의 사진 한 장을 얻겠다고 너무나 추웠던 북경의 1월, 새벽부터 천안문 앞을 나가 벌벌 떨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인의 장막에 가려 무경도, 붉은 벽도 구경하지 못했을 테니까.
북경에 와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얼굴은 누구일까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북경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얼굴은 바로 “마오“입니다. 북경을 찾는 이방인들은 좋든 싫든 강제적으로 마오의 얼굴을 보게 되어 있어요. 천안문에 떡하니 걸려 있는 마오의 대형초상을 보지 않고서는 북경 제일의 관광지인 자금성을 구경할 수 없으니까요.
자금성에 걸린 마오는 천안문광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매일 아침 천안문 국기 게양대에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금성 문이 닫히고 올라갔던 국기가 다시 내려오고, 수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북적이던 장안대로마저 깊은 잠에 빠져들 때까지 그저 하염없이 앞만 바라보는 것이죠. 달리 무슨 할 일이 있을까요. 이마에 파리가 앉아도 얼굴 한번 찡그릴 수 없어요. 생전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리도 사람들의 미움을 사 북경에서도 가장 시끄럽고 사람들로 붐비는 자금성 대문에 걸려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까요. 더구나 등을 지고 걸렸으니 천년만년 흘러도 남들 다하는 자금성 구경도 못 하고 말이죠. 그러고 보면 중국인들은 마오를 미워했나 봅니다.
地安门外大街
스차하이 인근 고루 앞 대로를 행진 중인 아직은 앳된 얼굴의 공안들
냉전 시대를 겪은 우리는 마오를 스탈린, 김일성 등과 동격으로 생각하고 그만큼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슴 가득히 안고 있지만 중국인들 입장에선 전혀 다르겠죠. 그들에게 마오는 건국의 아버지이자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항일 영웅이니까요.(사실 일본군에 맞서 싸운 건 장제스의 군대였고 중국공산당은 늘 일본군을 피해 다녔다. 일본군과의 잦은 전투로 전력이 약해진 장제스의 군대는 결국 농촌으로 도망가 힘을 비축한 공산당에게 패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체제이자 종교인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마오이즘으로 대표되는 중국공산당의 가장 큰 어른이니까요. 국부나 교주를 넘어 거의 메시아급이죠. 공산당의 선전대로라면 마오앞에 백두혈통 따위 아이들 장난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마오의 이미지는 문화혁명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어요.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어린 시절 홍위병이었거나 그들에 의해 인생을 유린당한 세대이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든, 당의 명령을 따라 그들이 어떤 짓을 했었든 그들 모두는 피해자였잖아요. 만약 중국이 소모적인 문화혁명을 거칠 시기에 개방과 개혁을 시작했다면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長安大路
천안문광장에서 날마다 아침이면 벌어지는 조촐한 국기 게양식이 끝나고 그들의 기지로 돌아가는 무경들의 행렬. 언젠가 저들의 겨울 외투를 입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옷이라기보다는 이불에 가까웠다. 옷을 입으니 춥지 않구나라는 감상보다 무겁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했던 옷.
아니, 남의 인생은 그렇다 칩시다. 뻘건 깃발을 앞세우고 꽹과리를 두들기며 그 많은 중공군들이 압록강을 건너오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이 대목에서 갑자기 불끈한다.) 신생국 중국 본토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았던 마오는 사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 고민한 끝에 지원병의 형식을 빌어 그들의 군대를 압록강 너머도 내몰았다지만 당신 때문에 우리 민족이 지금 이 모양이란 말이야. 일제가 36년 동안에도 못 해냈던 짓을 고작 사흘 밤만 지새고 해낸 것에 미안하지만 침이라도 뱉고 싶어.
아니, 솔직히 미안하지도 않고.
东棉花胡同
벼룩시장 한 켠에서 과거 공산주의 소품들을 판매 중인데 마오의 기념품은 언제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년 마오의 얼굴은 거리에 넘쳐납니다. 열쇠고리나 배지 등 기념품점의 액세서리로, 가방이나 티셔츠에도 마오의 사진은 여기저기 보란 듯 인쇄되어 있는데 가슴에 중년의 마오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토할 것 같아요. 그가 중화인민들의 영웅, 마오이즘의 마오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천만을 굶겨 죽이고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말살한 중국 현대사의 최종 빌런(villain)이 아니었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이건 제가 마오를 미워해서만은 아닌 거예요. 가슴에 그려진 얼굴이 그저 동네 세탁소 아저씨라고 해도 제겐 마찬가지니까요. 세탁소 아저씨 얼굴을 가슴에 그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하물며 마오라니요. 제발 그러지 마오~ 네? 찾아보면 체 게바라가 그려진 옷은 많다고요? 체 게바라는 가능한데 왜 세탁소 아저씨와 마오는 안되냐고요?
地安门外大街
마오라는 이름은 북경인들에게 건들 수 없는 성역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이용되곤 하는데 그러한 점은 이방인에게 당혹감으로 다가오곤 한다. 이건 시진핑과 닮았다고 곰돌이 푸도 마음대로 그릴 수 없는 중국에서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는 결이 많이 다르기 때문인데 일종의 우상화의 친밀한 접근이랄까. 부정의 이미지, 긍정의 이미지, 역사, 가공의 인물, 건국의 아버지, 악마, 어떤 생각으로 차용하던 남들만 알 수 없다면 뭐.. 아무렴 어때. 더구나 고양이의 중국어 발음도 마오다 보니 기저에 풍자가 깔린 중의적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솔직해져 보죠. 이방인들에게 체 게바라가 인기 있는 이유는 잘생긴 얼굴 덕분 아닐까요? 스타일이죠. 헐리웃 영화배우 같은 미남형 얼굴에 호소력 짙은 크고 부드러운 눈매, 젊음, 딱딱한 군복과 대비되는 멋스러운 장발과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터프한 수염, 베레모, 그리고 쿠바산 시거까지. 그들의 세상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이념이고 뭐고 그에게 붙은 혁명가라는 타이틀은 그저 낭만적으로만 들릴 뿐입니다. 쉽게,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더 멋있어!” 같은 것이죠. 우리에겐 미지의 대상에 대한 근거를 알 수 없는 호의적인 환상이란 게 늘 있으니까요. 오래전 우리나라에도 체의 열풍이 불었고 그의 행적을 담은 전기와 사진집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어요. 마치 다들 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잘난 “체”를 할 수 있고, 아는 “체”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습니다. 아니라고요?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으셨다고요? 그렇게 유치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럼 죄송합니다. 제가 삐뚤어졌네요.
什刹海
체와 나란히 전시된 마오가 그려진 인민군 가방. 후진타오, 시진핑, 버락 오바마, 심지어 김정은이 그려진 가방도 있다. 아무나 걸려라식 상술인가. 그럼에도 그 귀여운 곰돌이 푸우~ 만은 없는 것이다. 거참 이상하네...
지금도 한국에서 체의 인지도는 여전합니다. 그의 평전이 셀러 목록에 오른다거나 TV의 교양프로 소재로는 더 이상 다뤄지지 않지만 대형서점만 가봐도 문구 코너에서 팔고 있는 노트나 머그컵 등에서 여전히 그의 얼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핸드폰 고리의 모습으로 인사동 거리에서 대롱거린다든지, 명동거리 노점에 걸린 티셔츠에서도 여전히 그의 얼굴과 조우할 수 있죠. 마치 미키마우스와 같아요. 의미를 따지기엔 귀찮기만 할 뿐, 그저 하나의 비쥬얼적 아이콘, 팬시 캐릭터로써의 그런 인기.
북경역
제복이 어울리는 젊은 공안과 창 너머 그들 바라보는 북경 여인들.
자신들 등 뒤에 엄청 (큰)미남이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저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얼굴 크기 이야기다.
체가 멋진 이유는 단지 옆자리의 카스트로가 늙어버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뤄낸 것으로 따지자면 카스트로가 한 수 위였으니까요. 그러나 언제나 젊고 잘생긴 체의 옆자리엔 늙고 괴팍해 보이는 카스트로가 함께 하니 그의 외모만 더욱 도드라졌을지 몰라요.
大山子
798 다산쯔 예술구의 한 화랑을 지키고 있던 젊은 경비.
제임스 딘이 불의의 사고로 박명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장쩌민, 헨리 키신저 만큼이나 늙어 있다면 지금처럼 인기가 있었을까요. 젊은 시절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체와 카스트로는 어땠을까요. 살아남은 카스트로는 어떻게 변해갔나요.
늙으면 별 볼 일 없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되는 세월은 때때로 “그 사람을 변질시킬 수 있다”는 점을 말하려 합니다. 체와 함께한 시절, 카스트로 역시 혁명을 꿈꾸는 순수한 행동가였을지 모릅니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겁니다.
자금성
자금성을 지키는 무경들의 행진. 많은 관광객들이 보고 있어서인지 구령도 걸음걸이도 절도있게 멋졌다.
문화혁명 이전의 마오의 모습(더불어 우상화를 벗겨낸)이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순수했을 마오의 젊음을 보고 싶지만 그런 모습은 북경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거리에서 만나는 마오의 얼굴은 언제나 저의 구토를 일으키는, 사상과 이상으로 충만한 혁명가의 얼굴이 아닌 권력에 찌들대로 찌든 중년 마오의 얼굴뿐이니까요. 물론 제가 그리 생각하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겠죠. 에이, 나쁜 놈! 하면서 바라보니 눈에 나쁜 놈만 보이는 것일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면 근사한 미남만 보이는 것처럼. 그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그의 얼굴 위로 불행했던 중국의 현대사가 점철되어 보이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의 욕망이 앗아간 수천만 인민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니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쩌면 그는 중년의 마오가 되기 전, 체 게바라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어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그는 과오 없는 순수한 중국의 영웅으로만 남게 되었을 것이고 수천만의 소중한 생명도 잃지 않았을 테니까요.
东铁匠胡同
막다른 골목에 홀로 서 있던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문화혁명은 끝났습니다. 대륙에 뿌려졌던 수천만 점의 마오 사진들은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그들은 다시 마오를 사랑하는 것 같네요. 물론 개개인의 가슴속에 피어난 사랑은 아닐 겁니다. 요즘 들어 부쩍 바람이 부는 공자와 유교의 재평가, 강화된 중화사상과 애국주의 교육 열풍 등과 함께 관속에 들어간 마오가 다시 소환되고 있으니까요. 한족 중심의 국가 운영에 대한 반감과 그에 따른 민족 간 분열과 대립, 그에 따른 독립에 대한 목소리, 소득의 불균형, 계층 간의 반목, 부패, 청년 실업, 경기침체 등 최근 중국 정부가 안고 있는 골치 아픈 모든 것들을 “해결이라기보다는 봉합”차원에서, 사상이든 과거 인물이든 그게 뭐든 인민들을 단합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그런 바지사장님 자리에 마오만한 인물은 없으니까요... 라고 썼지만, 사실은 시진핑의 독재 때문인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자금성
자금성 성내를 지키는 무경들이 우문 앞에서 제식훈련을 하고 있다.
굳이 사람 많은 성내에서 저러는 이유는 뭘까.
북한의 어린 뚱보가 북한의 권력을 잡으면서 영도자로서는 터무니없는 스팩 콤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묘수가 바로 백두혈통의 원조 김일성의 몸매를 닮는 것이었어요. 경험이나 능력은 하루아침에 갖추기 불가능해도 살찌우기는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먹었습니다. 애초에 먹는 걸 좋아하던 어린 뚱보였기에 이참에 신나게 먹었던 거예요. 그 좋아한다는 뢰스터도 맘껏 먹고 에멘탈치즈로 머리를 감고 욕조에 부은 보르도 와인 속을 허우적거리며 먹고 먹고 또 먹고. 그랬더니 이젠 음... 어린 뚱보가 거대한 뚱보가 되어버렸죠. 결국 그런 노력 아닌 노력으로 그가 원했던 할아버지 김일성의 포스를 갖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건강은 크게 나빠져 버린 것이고요. 무슨, 백두혈통이라며 그 나이에 계단도 혼자 못 내려오는 게냐. 으이그~
현재 3 연임을 이뤄낸 시진핑 입장에선 4 연임, 5 연임.. 하는 김에 187번째 연임까지 해 먹고 싶은데 마땅한 명분이 없는 겁니다. 마오의 혹독한 독재에 치를 떨었던 등소평이 최대 2 연임+일곱 명의 상임위원을 통한 집단지도체제를 중국공산당의 차기 지배구조로 정립해 놨지만 그걸 시진핑이 깨부수고 벌써 3 연임까지 해버렸으니 앞으로 더 해 먹기 위해선 지금까지 써먹었던 경제발전이니 부패 척결 뭐 이런 것보다 훨씬 막강한 명분과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위대한 영도자 마오를 소환해 애국 운동이니 뭐니 하며 인민들에게 자신과 마오를 오버랩(overlap)시키는 세뇌 공작에 몰두하게 된 것이고 이걸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흡사,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려는 어린 뚱보의 살찌우기처럼.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권력층의 분열, 이념 수정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구심점이 필요했던 등소평은 마오의 영웅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여도 마오를 중심으로 단결한다면 별문제는 없을거야~ 뭐 이런 생각으로. 하지만 그의 그런 임기응변식 판단은 중국 사회에 독재에 대한 관대함을 심어 버렸다. 독재자가 영웅이 되는 사회라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독재자는 탄생할 테니까. 결국 등소평이 깔아놓은 판 위에 시진핑이 춤을 추는 형국이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가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북쪽의 어린 뚱보의 귀여운 코스프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문화혁명을 일으켜 지식인들을 싸그리 숙청하고 현대판 분서갱유를 저질러 모든 기록과 역사를 말살하고 장차 중국을 이끌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 농촌으로 보내 지식인의 싹을 싹 잘라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멍청이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마오의 광기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려는 거예요. 단순히 “많이 먹어 할아버지 몸매를 닮을래~” 하는 어리광 수준이 아닌 겁니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상식적인 대책이 아니라, 문혁의 폐해 중 하나였던 하방을, 그래서 본인도 십 년 가까이 겪었던 그 하방을 지금의 정부에서 권장하고, 평등을 앞세워 사교육을 없애고, 공동 부유론을 들먹이며 성장하는 빅테크 기업들을 박살 내 결국 돈 많은 부자들이 겁을 먹고 해외로 도망가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고 방관하고 있어요. 왜? 그래야 마오도 이뤄내지 못한 멍청이들의 나라를 완성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187번째 연임을 넘어 38,925번째 연임도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대학생부터 유치원생들까지 군사훈련을 시키고, 마오의 어록을 흉내 낸 자신의 어록집을 학생들에게 달달 외우게 하고, 소분홍(小粉紅)으로 대표되는 맹목적인 애국 집단을 키워낸 그 모든 일들도 과거 마오가 했던 것들을 이름만 바꿔 하나하나 그대로 재연(기업가 압박-지주 척결, 하방-신 하방 운동, 군사훈련-뭐 늘 하던 거, 마오 어록-시진핑 어록, 홍위병-소분홍)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마오와 같은 종신 권력만 남은 셈이네요. 참~ 열심히들 삽니다.
네, 아닐 수도 있어요. 마오를 향한 시진핑의 마음은 한없이 순수한 흠모일 뿐이고 모든 게 우연일 수 있어요. 취직을 못 한 어린 친구들은 진심으로 고향으로 가고 싶을 수도 있겠죠. 어릴 적 꿈이 농부였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그저 마오를 미워하는 속 좁은 저의 망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주는 도너스일 수도 있고요.
1. 북경의 공원에서 만난 너무나 예쁜 길고양이 두 마리. 공교롭게도 흑묘와 백묘였다. 이 녀석들이었구나...
2. 최근 중국공산당은 인민들의 단결과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애국주의 운동을 펼치면서 성룡과 같은 중국 계 연예인들의 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홍콩출신 배우임에도 중국공산당의 정협의원으로 활동중 인 성룡이 북경역에 걸린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국 정부를 홍보하고 있다.
3. 홍위병 시절의 향수에 젖은 중국 따마들의 군무. 중국 전역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는 풍경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마오가 세상과 안녕! 하는 순간 이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중국과도 완전히 안녕을 고했을 것이고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오는 공산당의 필요에 의해 사후에도 살아남아 신화가 되었고 지금도 중국 정부는 마오의 찬양을 멈추지 않는 것이죠. 아마 중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는 한,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마오의 인기는 영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등소평은 참으로 똑똑한 인물이었어요. 과거 자신을 숙청했던 그 미운 마오를 “오로지 정치적 판단으로” 지금의 위치로 만들어 내었으니까요. 덕분에 개방과 개혁의 불안한 시기를 정치적으로 잘 넘길 수 있었고 지금도 공산당은 꿋꿋이 살아남아 여전히 중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마오가 아닌 등소평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예상보다 너무 쥐를 많이 잡고 있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