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람들
북경올림픽 이전에 티벳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조직적인 시위가 있었고 중국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이목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위는 올림픽 바로 직전에 이루어졌고 올림픽 때문에라도 진압은 강경했으며, 올림픽 이후 예상되는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시기하던 서방 세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었죠. 도덕적이지 못하면서 언제나 자신들을 도덕적이라 우기는 프랑스가 타도 중국의 선봉을 섰음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그 모든 것들은 흡사 수돗물이 잠기듯 갑자기 끝이 났습니다. 하루키식 표현을 빌리자면 누군가 뒤로 돌아가 조용히 스위치를 꺼버린 듯.
탄압은 지금도 조용히 계속되고 있지만, 아니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당시 안팎으로 드높던 시위의 기세는 꺾여버렸고 세계는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핑계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있었고 자신들이 그들에게 관심 있었다는 것조차 잊은 듯합니다. 불쌍한 프랑스는 관계가 벌어진 중국의 눈치를 보며 연합군의 도움으로 나치로부터 파리를 되찾은 이래 누군가에 대해 가장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십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五道口
혹독한 북경의 겨울 날씨를 피해 도로변 감시초소에 들어가 지나는 행인들을 지켜보는 공안
그러나 티벳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희미해졌을 뿐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싸까지 놓인 천장공로(川藏公路)가 중국 정부가 취할 앞으로의 행동을 쉬이 예측 가능하게 해줄 뿐입니다. 한족으로 대표되는 중국인들은 끊임없이 티벳으로 몰려갈 것이며, 관광지화 되어 버린 티벳은 더 이상 과거의 이상을 지켜낼 수 없게 되겠죠.
마치 우유에 부어진 에스프레소가 섞여 들어가듯 각자의 정체성을 잃은 채,
아니, 양이 적은 쪽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西直門
지상철 문이 열리기 기다리는 사람들. 소나기가 내렸지만 역내에선 우산의 사용이 금지였는지 아무도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독립을 원하는 티벳인들은 그 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며 언젠가는 대다수의 티벳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는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중국인들이 몰려와 내가 이렇게나 돈을 잘 버는데 왜 니가 방해하냐며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죠. 한낱 사회에 불만을 가진 테러범 취급을 받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중국 정부가 원하는 티벳의 미래일 것이고요.
中南海
국무원과 주석의 집무실 등 중국의 중요한 기관들이 몰려있는 중난하이에는 소수민족들을 대표하는 기관들도 위치해 있다. 티벳과 관련한 건물도 있었는데 티벳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천년만년 티벳을 잘 다스릴까 궁리하는 곳 같았지만, 아무튼 건물의 꼭대기엔 티벳을 상징하는 타르초가 바람에 날려 이곳이 티벳과 관련한 건물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반간첩법이 시행된 요즘에는 카메라를 들고 중난하이 인근을 배회하다가는 검문을 삼백 번쯤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카메라로 티벳과 관련된 무언가를 촬영한다? 말리고 싶다. 사진 속 철문 너머의 저 무경은 내가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을 알아채자 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총을 겨눴다.
어느 날인가 찌뿌둥한 날씨를 핑계로 호텔 방에서 빈둥거리며 TV를 켰더니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로 방송되는 CCTV international의 컬쳐 익스프레스(culture express)라는 프로에서 티벳에 대한 내용을 방송합니다. 리포터는 서양의 여자로 방송내용은 과거 티벳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인생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달라진 티벳에서는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현대무용가, 화가, 동물학자 등 소위 잘나가는 티벳 출신 여성들이 나와 자신들 어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에 대해, 세상이 변해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행운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세상이 변함은 곧 긍정의 변화를 의미했고 그 긍정의 핵심은 열린 티벳(혹은 인의적으로 열어버린)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열린 티벳이란 개방이라기보다 희석의 의미에 더 가깝겠죠.
五道口
북경 내 유명 대학들이 몰려있는 오도구의 지하철역 주변 인도에 티벳족 여인이 좌판을 펼쳤다. 정부의 정책으로 이주된 한족들에 의해 밀려난 그들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흩어지며 그들만의 정체성도 희미해지는 중이다.
결국 라싸에는 넘쳐나는 관광객들과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로 채워져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이, 그저 보여지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천장공로(川藏公路)는 길이라기보다 오물이 흐르는 하수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하수도를 통해 오물이 전이된 티벳의 여인들은 천장공로를 따라 대도시로 나와 싸 들고 온 보따리를 길에 풀고 연명을 합니다.
五道口
여인은 아들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끄러워하는 아들의 등을 밀었다. 전철역 주변에서 다양한 티벳 악세사리들을 팔고 있는 티벳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중국 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에서 서양 사회자와 현지에 나가 있는 금발머리의 리포터의 목소리로 “티벳은 중국 덕분에 잘살고 있어요. 이것 보세요. 우리가 괴롭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저들이 원하잖아요. 저들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제 마음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요.
大山子
왜 이렇게 그림을 양쪽에서 눌러놨을까 궁금했다. 위축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원래.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높은 곳에 살며 고개를 숙여 세상을 내려 봤습니다.
올려 볼 것이 없기에 오만했어야 했으나 그들은 내려 봤기에 언제나 겸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알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신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스스로 부정할지언정 그들 모두가 부처처럼 예수처럼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그들에겐 애초에 종교 따위는 필요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라싸 한구석에서 휘날리는 타르초 한편에 전설로만 남아버렸고 그 흔적마저도 바람에 변색 되어 희미해지고 있어요.
이들은 또 다른 아메리칸 인디언일지 모릅니다.
아마, 중국이 바라는 것은 그것일 겁니다.
실체는 없이 전설로만 남아, 고스란히 중국의 것이 되는
龙泽
밤도 아닌 듯 낮도 아닌 듯 밤하늘이 중국에서 살아가는 티벳인들의 처지와 닮았다.
방송 말미에 리포터는 티벳의 승려 한 명을 취재하고 방송은 그의 멘트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간섭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온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했으니까 됐어.
그런데,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