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도시는 내가 건설했다.
농민공이란 무엇일까요. 조금은 낯선 이 단어는 중국의 농촌에서 돈을 벌고자 도시로 나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신조어라고는 해도 역사는 제법 되죠. 벌써 90년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명칭이니까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농민이자 기술자이기도 한 사람들을 일컫는데 농번기엔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한기에 도시로 나와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중국엔 크게 “농촌호적”과 “도시호적”의 두 가지 호적이 있어요. 처음 호적제도가 시행된 50년대만 해도 그저 출신과 거주지에 따른 큰 의미가 없는 호적이었으나 개혁과 개방의 시대였던 80년대가 되자 돈을 벌고자 도시로 몰려든 농촌인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많아졌고 이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됩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도시로 몰려드는 농촌인구의 유입을 막고자 도시호적을 취득하는데 많은 제약을 두게 되죠.(덕분에 중국의 호적은 도농의 구별을 넘어 차등적 신분제도로 변질이 된다.) 사실상 취득이 거의 불가능하게 말이에요. 이는 폭증하는 인구가 유발하는 도시의 문제와 별개로 공산화된 중국이 얼마나 농업을 중시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면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리면 그만큼 농사를 지을 농촌인구의 부족을 의미하니까요. 체제의 유지를 위해선 항상 인민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줘야 했던 중국 정부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요.
上地
커다란 배낭을 맨 어느 농민공. 북경에 살고 있어도 그들에게 도시는 언제나 낯설다.
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에서도 항상 중요했던 과업이기도 했습니다. 잦은 전쟁과 그로 인한 수많은 왕조의 등장과 퇴장은 걸핏하면 전쟁에 불려 나가고 그 비용까지 짊어져야 했던 백성들에게 끔찍한 일이었겠지만 당장 굶지만 않는다면 참아낼 수는 있었거든요. 왕이 누가 되든 국호가 뭐가 되든 일반 백성의 입장에서야 하등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굶주리게 된다면 그건 위정자들에겐 큰 위협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새롭게 등장한 중국공산당 역시 이 문제를 늘 중시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 농업과 관련해 마오와 참새와 관련된 일화는 아주 유명하지요.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立水桥
모든 것이 꽁꽁 얼 것 같던 북경의 1월. 난방도 틀지 않은 세워진 버스 안에서 한 청년이 잠이 들었다.
꿈에서 고향이라도 거닐고 있었던 것일까. 잠이 든 그의 표정은 그를 둘러싼 환경과 달리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늘 소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마오의 입장에서 소련의 후루시쵸프가 “앞으로 15년만 지나만 우리 소련은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농업 1등!”을 외쳐대자 크게 자극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다혈질로 유명했던 후루시쵸프(당시의 소련 서기)식 “늘 하던 허풍”이었습니다만 당시 마오는 크게 자극을 받았던 것이죠. 가진 것이 사람밖에 없는 중국의 입장에서 미그기와 발레라면 몰라도 농사라면 한번 붙어 볼 만했으니까요. 공산주의 세상의 만년 2 인자로서 소련의 원조 없이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던 그간의 서러움을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겁니다. 그래서 간부들에게 이것저것 시켜야겠는데 막상 농사에 대해 뭘 알았어야죠.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부하들의 눈망울을 보니 그저 답답하기만 한 겁니다. 그러다 부하들을 이끌고 농촌을 찾았는데 들판에 귀여운 참새들이 짹짹거리지 뭡니까.
“아! 저거다! 저거야!!”
기쁨에 벌어지려는 입을 간신이 틀어막고 부하들을 향해 근엄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시게 됩니다.
“저, 버~드는, 해로운 버~드다 해~”
중국인들은 새를 좋아한다. 일부에겐 혐오의 대상인 비둘기조차 그들에겐 소중한 반려동물인 것이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걸 모르냐고. 근데 그게 그렇게나 문제가 되는 거야?
쟤... 실은 바보 아냐??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그의 부하들은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어요. 간만에 자기 대장이 뭔가를 찾아 저리 무게를 잡는데, 까딱했다가는 참새를 가리켰던 마오의 중지가 자신을 향하며 “이 매~엔은 해로운 메~엔이다 해~” 해버리면 자기 인생까지 저 새들처럼 메롱되게 생겼거든요. 그래 입을 꾹 다물고 메아리를 튕겨내는 작은 산처럼 마오의 말을 전국으로 여과 없이 중계하게 됩니다.
"나쁜 버~드를 박멸하라 해~ 세상의 모든 버~드를 박멸하라 해~"
북경역
북경역 광장엔 항상 농민공들이 모여 있다. 북경역 주변은 북경에서도 호텔이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고향행 기차를 기다리며 노숙을 한다.
결국 중국의 참새는 마오의 희망대로 멸종되어 버렸지만 그 기쁨도 잠시, 천적이 사라진 병충해들의 세상은 날마다 샴페인이 터지고 나팔이 울리는 봄날이 오게 되고, 모든 수컷 해충들은 암컷들의 손을 잡고 장미여관으로 달려가는 촌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해충들은 자식 농사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놈들이거든요. 결국 중국 전역에 어마어마한 병충해가 창궐하게 되고 당연한 결과로서 농사는 망하고, 무려 3천만에 가까운 인민들이 굶주림에 죽게 되는 것이고요.(자료에 따라 2,500 ~ 3,000만 명이 굶주림으로 희생이 되었다.) 결국 대약진 운동이라 불렸던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짓 이후 마오는 실각하게 됩니다.(그렇다고 그의 권력이 사라졌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 참고로 이후 마오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잘 아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발전을 50년쯤 후퇴시키게 되는 것이고요.
아 마오~ 그러지 마오~
西直門
저 긴 호수는 어떤 용도였을까. 아마 지하에 매설되는 광케이블 같은 종류였을 것인데 상당히 무거워 보였지만 그들은 우리네 뱃노래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자에 맞춰 줄을 당겼다. 그 모습이 정말 그물을 끌어 올리는 어부들 같았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길었네요. 아무튼 개방 이후 모든 것은 달라졌고 더 이상 농업은 중국의 주력산업이 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농촌에 살며 농촌호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반드시 농업에 종사한 것만은 아니었겠죠. 중국은 공산국가이고 과거 모든 기업은 국가의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런 농촌지역의 국영기업(대부분은 농장)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개혁과 개방 이후 농촌의 작은 국영 조직들은 해체되게 되고 이들은 일거리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게 됩니다. 이들에게 고향에서의 마땅한 생계 수단을 마련해 준다거나 금융적 지원을 해주는 일을 정부에 기대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요. 정부가 한 일이라곤 앞서 말했듯 도시호적의 취득 제한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주를 막는 일뿐이었습니다. 당장 일거리와 먹을 것도 없는 형편에 그런다고 막아지나요. 이런 중국공산당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그저 방관일 뿐인 거죠. 늘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라면서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각자도생의 홍몽세계(鴻濛世界)가 바로 중국이니까요.
西二旗
설렘 반 두려움 반을 안고 이제 막 북경에 도착한 한 무리의 농민공들. 낯선 도시에 아직은 두려운 마음이 컸는지 서로를 연신 불러대며 무리가 흩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걸었다.
늘 그렇듯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죠. 물론 퇴직금도 없었고요. 그럼 이들은 어떻게 먹고살 궁리를 했을까요. 빙고~ 그들에겐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는 방법 외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고 개방으로 일거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안가 도시들로 밀려들게 되었던 거예요. 작은 해안가 도시는 밀려드는 일거리와 사람들로 점점 도시의 규모가 팽창하게 되고, 팽창된 도시는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되고 그들, 농촌에서 온 농업호적의 이들은 이렇게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 바로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에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하층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고요.
五道口
24시간 영업하는 우다코의 맥도날드에서 젊은 청년이 잠이 들어있다. 북경엔 하루종일 영업하는 수많은 패스트푸드 매장들이 있고 밤이 되면 숙박료를 덜어보려는 농민공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을 꺼려하는 손님도, 쫓아내려는 직원도 없다. 인간의 힘없는 아이가 무시무시한 정글로 들어가 숲속 동물들의 도움으로 모글리로 성장했듯이 그들에게 이웃의 어려운 형편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북경인들의 미덕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들이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 후로 시작되었어요. 도시호적이 없는 이들은 당국에서 발행한 거주증을 갖고 있어야 했습니다. 일종의 체류증인데 그 거주증엔 도시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의 제약이 있었고, 먹고 살고자 고향까지 등지고 낯선 도시로 오게 된 농민공들은 당국이 허가해준 그 짧은 기간에 만족할 순 없었을 겁니다. 그들 중 일부, 아니 상당수는 기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도시에 남았고 그러한 불안한 신분은 도시에서 살아가려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키게 됩니다. 도시의 호적이 없다면 교육과 의료는 물론 정부가 베푸는 모든 복지혜택에서 제외가 되니까요. 결국 돈도, 기술도, 신분도 불안한 그들은 도시의 최하위계층으로 전락하게 되고 공사장의 인부로, 길거리의 노점상 등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하게 됩니다.
方砖厂胡同
낡은 사합원을 개축 중인 어느 농민공. 무단으로 공사장을 침입한 이방인을 발견한 그는 내쫓는 대신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었다.
우리가 북경을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엄청나게 많은” 공사장의 인부들과 길거리 노점상, 걸인, 작은 식당 등에서 일하는 어려 보이는 점원들은 거의 모두가 이들 농민공들입니다. 이들은 호적이 없는 헤이하이즈들(과거 1가구 1자녀 정책에 반하여 몰래 낳은 자식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그렇게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헤이하이즈라 부른다.)과 대학은 나왔으나 일자리가 없는 개미족과 함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의 3대 신인류라고 할 수 있어요. 중국당국이 당장 풀어야 할 심각한 문제이자 쉽게 풀 수 없는 고민거리이고 살아 움직이는 중국의 현실인 셈입니다.
시즈먼 13호선 객차 안
고향에서 출발해 시즈먼에 도착한 어느 농민공이 지상철인 13호선을 갈아타고 불안한 시선으로 가는 내내 창밖을 내다봤다. 그는 나에게 뭔가를 물어봤지만 내가 그들의 말을 모르는 외국인임을 어필했음에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 긴장해서일 것이다.
지금의 중국에서, 적어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중국 전체로 봤을 때 2022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2,000달러 정도 됩니다. 한국의 같은 해 1인당 소득(GNI)이 35,000달러를 넘겨 두 나라 간 격차가 제법 있어 보이지만 이는 중국 전역을 평균 낸 수치일 뿐이니 도시근로자의 수입만 계산하면 그 수치를 훌쩍 넘기게 되겠죠. 중국의 성장 속도는 누구나 알고 있듯 대단히 빠르기에 아마 앞으로의 중국은 더 빨리 성장할 겁니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아요.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설령 변화는 있더라도 농촌의 특성상 매우 더딜 것이고요. 지금도 중국농촌과 도시 간의 소득격차는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크고 공식적인 수치만도 세 배가 넘죠. 중국 정부의 발표는 언제나 허수가 만연하니 현실에선 훨씬 심할 것이고요.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단순히 숫자로 끄적댄 수치상의 차이일 뿐 실제 격차는 공식적인 통계를 훨씬 상회할 것임을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어요. 한 예로 시진핑은 자신의 정책인 소위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앞세워 이제는 중국이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중국의 전 총리였던 (故)리커창은 생전에 공식 석상에서 한 달에 천 위안, 한국 돈으로 18만원도 벌지 못하는 인민이 6억 명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리커창은 우수한 인재였고 지도자감이었지만 중국의 권력 싸움에 밀려 그렇게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시진핑은 여전히 건재하죠. 부패 척결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그의 모든 정적들을 제거한 채로 말이죠. 중국의 미래가,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가 여전히 어두운 이유입니다.
鲜鱼口街
재개발이 한창인 첸먼 근처 후통에서 마주친 아저씨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기분 탓일까.
앞으로도 도시를 향한 이들 농민공들의 이주는 계속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듯 이들은 도시의 가장 힘들고 가장 보수가 적은 일들을 도맡아 살아가게 되겠죠. 그들의 가난은 고스란히 그들 자식에게 세습될 것이고요. 실제로 이들 중 일부나 그들의 자식들의 상당수가 범죄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아 중국사회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온갖 험한 일을 하며 월급으로 2천, 3천 위안을 받을 때 한 접시에 그들 월급보다도 비싼 요리를 일상으로 먹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작은 방 월세도 내지 못하는 현실에 어떻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형편에 자식의 교육은 그저 사치일 뿐일 겁니다. 도시호적이 없다 보니 애초에 아이들을 도시로 데려올 수도 없고요. 그러니 그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는커녕 당장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 쉽지 않으니까요. 경제력이 곧 신분을 만든다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를 세계에서 가장 큰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 슬프네요. 아이러니를 넘어 허탈합니다. 이방인의 눈에도 그러하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은 오죽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