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친구(朋友)

북경사람, 친구들

by 신정훈





중국인들에게 친구의 의미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이에도 친구라는 표현을 쉽게 쓰긴 하지만 속마음까지 진짜로 친구라 생각진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일단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우리의 가족만큼이나 강한 유대감을 갖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는 힘들어도 한번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는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절대적인 맹우(盟友)가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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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觉胡同

동네 시장으로 향하는 아이들. 사진 속 시장은 2년 뒤 사라지고 공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맹우지간도 우리와 문화적 차이가 있어 시시콜콜한 개인적 문제에 있어서는 쉽게 속을 털어놓거나 남의 일에 섣불리 간섭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외로 중국인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이죠(믿거나 말거나.). 털어놓지 않고 캐묻지 않으니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에 대해 짐작, 추측성 대화를 많이 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단순히 표현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네요. 한 예로 누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면 “그 친구는 다음 달에 결혼해~”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그 친구는 다음 달에 결혼할 것 같아~” 하는 식인 거죠. 뭔가, 한 발을 뒤로 살짝 뺀 느낌이랄까요. 사실이 아닐 경우 책임을 면하기 위해 조심하는 것처럼요. 한편으론 추상적이고 살짝 시적(詩的)이기도 합니다. 물론 결혼 같은 큰일이야 그렇게 표현하지 않겠지만 예로 든 것이죠. 또한 듣는 상대방 역시 조심하는 면이 있어요.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그런 행동이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하는 것이죠.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하고 듣습니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 입장에선 주제를 가운데 두고 주변만 맴도는 느낌인 거죠. 같은 중국인들끼린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한국인과 많은 차이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중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한 : 어? 점심시간이네? 너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갈래?

중 : 그러고 보니 슬슬 갈 때가 되었네~

한 : 먹고 갈 거야 말 거야?

중 :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긴 해~

한 : 어쩔거야? 밥 차려?

중 : 아침을 좀 일찍 먹기는 했지~

한 : 안 먹는다는 거지?

중 : 저녁밥 먹으려면 아직 많이 남았고~

한 : 그럼 잘 가~

중 : 안.먹.는.다.곤.안.했.다!(버럭!)


대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제삼자에게 그의 이야기를 옮길 때는 특히 조심합니다. 그들에게 뒷담화는, 그러니까 친한 사이 간의 뒷담화는 정말 못 할 짓이거든요. 비단 그 대상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입장에선 우정이고 신의인데 우리의 관점에선 정도에 있어 조금 과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우리는 친한 사이라면 그 친구가 없어도 집에 찾아가 냉장고를 뒤지고, 샤워도 하고, 잠도 자다가, 읽을 만한 책 서너 권쯤은 챙겨 나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왔다 갔냐?”

“어~”

“왔으면 청소라도 해놓고 가든가~”

“미친~”


그러고 보니 중국인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너무 과할지 모르겠네요. 중국의 친구 사이는 덕담과 시조 배틀이 오고 가던 선비들의 우정과 닮았다면 우리는 전우애와 같다고 할까요. 호칭에 욕이 난무하고 매너 따위 제로에 수렴하지만 기저에 깔린 끈끈함은 우리도 상당하니까요. 그들 사이에 예(禮)가 있다면 우리에겐 정(情)이 바탕인 것이죠. 이처럼 친구 관계에 관해서도 두 나라 간 문화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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寿比胡同

사진 속 중국 청년에게 옆 외국 청년과는 어떤 사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친구라 했다. 어떤 친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중국인들 중에서도 북경인들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북경인들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특히 그렇다는 것이죠. 충청도 사람들은 행동과 말이 느리다든지 오사카 사람들은 속마음을 잘 숨긴다는 등의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혹은 고정관념과 같은 것이랄까요. 예로부터 거대 제국의 수도였던 북경은 북경인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세상 그 자체였던 중국에서 황제가 있는 세상의 중심 북경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당시엔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었으니 더 그랬겠죠. 그래서인지 북경인들만큼 점잖고 예의 바른 중국인은 없다고들 합니다. 덕분에 그러한 과도한 예의(혹은 격식)를 갖게 되었다는데 믿어야 하는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세요. 당연히 책임은 안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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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의 방. 더 이상 사용치 않지만 그녀의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철거가 한창인 동네에 덩그러니 그녀의 옛날 집만 홀로 남아 있었다.

2. 친구의 아버지. 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자신이 아끼는 청나라 때 제작된 귀한 그림과

서예 작품들을 선물해줬다.




사정이 그러하니 처음 북경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들만의 친구 사이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친해지기까지는 너무 쉬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불편해지는 것이죠. 맛있게 먹은 찹쌀떡이 목에 걸린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북경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특히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의 사회, 경제의 빠른 변화만큼이나 이러한 친구를 대하는 그들만의 태도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해요. 이는 마냥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기기들의 급속한 확산이 불쏘시개가 되어 개인적인 취향이 우선시되고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맹우는 옛말일 뿐 적당히 친구라고 부를 수 있으면 되는 것이죠. 뭔가 안타깝네요.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패싸움을 볼 수 없게 된 건가요? 손에 든 작은 손도끼도? 아쉬워요. 좋은 구경거리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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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金丝胡同

얼마 만에 보는 칙칙폭폭이란 말인가. 간단한 놀이지만 이상하게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놀이였다. 누구는 빠르고 늦고. 마지막은 항상 모두가 뒤엉켜 깔깔대고 웃고 끝나던 놀이. 그런데 중국어로 칙칙폭폭은 뭐라 부를까.




저도 북경에 친구들이 있습니다. 북경에 살지는 않았어도 특유의 친화력(잘생긴 얼굴 때문일까?)으로 짧은 시간 내에 친구를 만들어 낸 것이죠. 또래의 아저씨도 있지만 주로 일로 만난 학생들이 많아요. 친구라기보다는 지인이라는 표현이 더 잘 맞겠지만 저는 북경에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북경인들이 한번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거든요. 그저 두 팔을 벌리고 묵묵히 받아내야만 하는 겁니다. 그들이 기껏 베푼 호의를 거절당하는 것만큼 그들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도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익숙해지면 정겹고 즐겁습니다.


언제인가 하루 종일 저의 통역을 해주기로 한 날, 꼭두새벽부터 호텔 앞을 찾아와 제 방을 알아내겠다고 소란을 피워도, 귀국 전날 이별이 아쉬워 아르바이트까지 빼먹으며 검은 봉다리 가득 중국차(茶)를 들고 와 사람 많은 대로변에서 참으로 유별나 보이는 단체 사진을 찍히면서도 저는 즐거웠습니다. 그동안 제가 그들에게 해준 건 별로 없었는데 말이죠. 잘생긴 얼굴을 공짜로 보게 해준 것 이외에는(엇, 그럼 손핸가).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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莉蒂娅城堡

숙소 인근 지엔삥 직원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아무리 줄이 길어도 나를 발견하면 내 것(고수를 뺀)을 먼저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곤 왜 나보다 늦게 온 저 뚱땡이 것을 먼저 주냐며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버럭 화를 내곤 했다. 늘 부담스러웠지만 이들에겐 그것이 우정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또래의 아저씨, 이 사람은 북경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민박집 사장님인데 언제인가 그곳에 며칠인가를 묵게 되었고 그 며칠 사이 죽이 맞아 하루 종일 함께 다니다 친구가 되어버렸죠. 아저씨 따위와는 친구가 되기 싫었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제 방문 앞에 아침 식사를 담은 작은 쟁반을 놔두고 갔습니다. 그곳은 아침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고, 그는 여러 곳의 숙소를 운영하고 있어 평소엔 저 혼자 묵던 그곳엔 거의 오지도 않았거든요. 중국 남자 특유의 빡빡 민 머리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나는 처음에 그의 나이를 열 살이나 많게 봤지만 사실은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다.) 투박한 손으로 손수 아침을 준비하며 기뻐할 내 모습을 상상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웃음부터 나옵니다. 특히나 처음 만났을 때의 “조폭이래도 누구나 믿을만한” 그의 험상궂은 얼굴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죠. 이러면 친구가 아니 될 수가 없어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후로 그는 북경을 찾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북경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좀 늙어 보이는 까까머리 아저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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纳福胡同

골목에서 노래를 부르며 술래잡기를 하던 아이들. 오래된 후통은 아이들에겐 천상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의 보다 끈끈한 친구 관계는 싸움판에서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북경에서 무슨 일인가로 시비가 붙으면 당사자 모두 잠시 사라져(물론 서로 양해를 구하고) 각자 전화로 친구들을 부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곤 어색함을 참으며 맞담배라도 피우며 기다리다 보면 30분쯤 뒤 의리로 똘똘 뭉친 수십 명의 친구들이 나타나 두 패로 갈려 소리를 지르고 기 싸움을 하는 것이죠.


"너네 우리가 누군지 아라? 앙??"

"건 관심 없고 우리가 누군지나 들어봐라!"

"시끄럽고 우리가 누구냐면~"

"에에에에에~ 하나도 안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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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북경에서 친해진 자일린이 한국에 왔다. 이스라엘인인 그녀는 나처럼 북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나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큰 기대를 안고 마침내 한국에 왔는데... 막상 한국에서 자신의 카메라가 고장 나자 내 소중한 콘탁스 iia를 강탈했다. 다행히 나의 인내심이 바닥나 경찰에 신고하기 직전에 그녀의 카메라는 충무로의 솜씨 좋은 분에게 단 3일 만에 고칠 수 있었고 콘탁스도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




저는 실제로 북경에서 이러한 패싸움을 구경한 적이 있어요. 한쪽은 스무 명쯤 모였고 다른 쪽은 평소의 인간관계가 엉망이었는지 고작 여섯 명이었는데, 수에서 밀리다 보니 애초에 싸움이 안 되더군요. 스무 명 쪽에선 고성을 지르고 연장을 휘두르고 난리블루스를 췄지만 상대인 여섯 친구들은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참는 거다~ 그 점을 알아줬으면 해~ 정말이라니까?” 라는 표정 관리만 열심히. 결국 공안이 출동하자 모두 줄행랑을 쳤지만, 그들이 들고 있던 손도끼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어차피 쓰지도 않았겠지만 손에 든 도끼가 주는 공포감은 실로 대단하지 않나요? 중국인들의 싸움이 왜 계투(鷄鬪)라 불리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때로 싸우는 겁니다. 인원수든 손도끼든, 기세 싸움을 즐기는 것이죠. 실제로 도끼를 사용할 정도의 큰 패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흑룡강 사람들이나 진짜로 쓴다고 한족 친구가 말했다. 중국에서 동북 3성에 대한 이미지가 그런 것이다. 거칠고 사납고.. 일종의 인종차별) 그저 누구의 세가 쎈지를 겨룰 뿐이에요. 그러니까 입으로.


그래도 친구를 위해 기꺼이 도끼라도 들고나와 주는 이들의 의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친구를 위해 도끼까지 휘두르는 이들은 다른 형태의 도움도 기꺼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부럽네요. 그런 우정.

손도끼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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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자일린이 또 한국에 왔다. 맛난 것을 사달라길래 장난끼가 발동해 아주 매운 떡볶이를 사줬다. 그랬더니 내 것까지 먹어 치웠다. 이게 아닌데..

그 후로 거의 두 달간 날 괴롭히다 그녀의 나라 이스라엘로 떠났다....가 작년에 또 왔다. 제발 또 오지마.





우리도 빨리 중국과 맹우(盟友)가 되든 혈맹(血盟)이 되든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살살 꼬셔 시모노세키(욕 같다.)조약으로 빼앗긴 간도를 돌려받고 일본에게 그 죄를 물어(혹은 중국의 미안함을 상쇄시키려) 대마도를 빼앗아 오라고 조르는 것이죠. 그들의 손도끼라면 대마도쯤은 쉽게 뺏을 수 있으니까요.


이때 일본과 맺는 조약의 이름은 “일본노무세키”로 합시다.


그리고 대마도 초대 지사로 “비사이로막가”씨를 임명하고 일본인들이 그렇게나 두려워한다는 “도끼로이마까”씨와 “깐대또까”씨를 경비대장으로 임명해 대마도를 지키게 합니다. 원래 괴뢰정부의 수장은 현지인이어야 하잖아요. 이것이 힘들다면 우리도 서방세계의 유태인처럼 중국 정치계의 막후세력을 키우는 겁니다. 그리고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려 친한국통의 “나한국조아라한다해~”씨를 주석으로, “난더조아라한대해~”씨를 총리로 앉히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그럼 동북아 군비경쟁 끝. 아, 친구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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