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고도(古都)

오래된 도시

by 신정훈



오랜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로서의 북경엔 많은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가 무려 3,000년,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며 국가의 수도로서도 8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니 세월만큼이나 화려하고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남겨진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겠죠. 흔히 중국을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나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중국에서도 그러한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도시인 북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계사를 살펴보면 중국만큼 왕권이 강했던 나라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오랜 세월, 그렇게 많은 왕조를 거치면서도 왕의 통치력이 시대와 왕조를 초월해 변함없이 구석구석 미쳤던 국가는 중국 외엔 없었습니다. 그런 강한 왕권은 도시의 설계와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수도인 북경의 중심에 역대 중국 황제들이 지내던 자금성이 위치하고 도시는 이 자금성을 중심으로 설계, 발전되게 됩니다.



경산 정상에서 바라본 자금성 북문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도성의 남문인 첸먼(前門),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天安門), 사진 중앙의 북문, 그리고 촬영 시점인 경산, 뒤로 종루, 고루까지 증축선으로 이어진다.




북경이 수도로 정해지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도시설계의 기준선이 되는 중축선(中軸線)의 설정이었습니다. 이는 일종의 기준선입니다. 쉽게 말해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한 줄로 선을 주욱 긋고, 그 선을 기준으로 삼아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인 것이죠. 예로부터 풍수지리를 따지는 동양에서, 그것도 원류(原流) 중국에서 이 중심선은 너무나도 중요했을 겁니다. 아마 내노라하는 당대의 풍수, 지리학자들이 앞다투어 여기저기 선을 그어대며 자신이 선이 반듯하니 이걸로 하라며 스팸 수준의 상소를 올렸겠지만 결국 도시의 중심선인 중축선은 원나라 때 북경이 도읍지로 정해지면서 홀필렬(忽必烈)에 의해 지정됩니다. 그리고 이 중심선의 중심에 자금성이 지어지는 것이고요. 먼저 왕의 집터를 정하고 도시를 설계한 셈이네요. 왕이 앉을 자리를 먼저 봐놓고 거대한 도시를 설계하다니, 역시나 중국에서 황제의 위치는 대단합니다.


“자, 내가 여기 앉으면 된다 이거지?‘

“네이~ 근데 왕님~ 여기 대문을 세울 건데 줄이 맞나요?”

“응? 아니 오른쪽으로 조금...”

“지금은 맞나요?”

“응~ 아니, 조금, 조금만 더... 오우~케이~”




古樓

고루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경산이 보인다. 그 너머는 자금성이다. 앞 사진 촬영지점의 증축선 상 북쪽인 셈이다.




중축선의 중심점인 중심대(中心臺)는 애초에 지금의 고루가 위치한 지점이었지만 명나라 때 중심대는 지금의 경산으로 옮겨졌습니다. 청 왕조가 물러나고 공산화가 되면서 도시의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변화되었지만 지금의 건축물들로 살펴보자면 남쪽의 첸먼부터 천안문광장, 천안문, 자금성, 경산공원을 지나 종루, 고루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북경의 가장 핫한 라인인 셈이죠.


저는 언제인가 이 중축선을 걸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건축물들과 변형된 도로 등으로 인해 반듯한 직선으로 걸어볼 순 없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세상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 들만 골라 걸은 셈이고 더불어 가장 시끄러운 곳이기도 하니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긴 힘들지 모르겠네요. 힘들어 죽는... 이 아니라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거든요. 아, 내 고막이야~ 하지만 여러분 중에 “은둔형 외톨이”성향의 분이 계시고 “이제는 내 삶이 달라져야 해. 그게 설사 나쁜 방향이더라도~” 하시며 인간의 체온 및 체취, 소음 등이 사무치게 그리우셨다면 꼭 걸어보세요. 한 달 내내 명동 한복판에 서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 구경을 하루 만에 해내실 겁니다. 질리도록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도시를 설계하면서 800년 전 그어놓은 중축선 위를 지금도 걸어볼 수 있다니 이것은 분명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북경은 이미 과거부터 완벽한 계획도시였음을 증축선을 따라 걸으며 느껴볼 수 있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워도 이 점은 인정을 안 할 수 없죠. 무엇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도시의 기본 뼈대가 남아 있다는 점이 저는 오히려 살짝 부러웠습니다.


세상엔 오래된 도시들이 많지만 다른 고대국가의 수도들과 북경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작부터 철저히 황제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건설되었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황제는 곧 천인의 아들인 천자(天子)였으니 왕을 중심으로 수도를 건설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볼 때 어찌 보면 당연한 설계였을 거예요. 덕분에 지금껏 북경에 남아 있는 대다수의 유적지도 모두 황제와 관련된 것들뿐이라 여행자 입장에선 조금 아쉽긴 합니다. 우리는 중국 황제들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는 솔직히 궁금하지 않잖아요(후궁은 좀 궁금하다.). 자금성은 물론 이화원, 원명원, 천단공원등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북경 내 유적지들과 작은 공원들조차도 황제를 위한, 황제와 관련된 곳인 경우가 많아요. 모두 왕이 살고, 놀고, 쉬고, 제사를 지낸 곳들이죠.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에 왕권이 강한 전제국가였고 제 나라도 아니니 제 맘에 차지 않아도 어쩔 수는 없습니다만. 하긴 우리는 왕과 관련된 유적지조차 제대로 못 지켜 냈으니 남의 사정이 어떻듯 뭐라 할 입장이 못되긴 합니다. 일제가 물러나고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궁(宮)으로 승격(?)된 창경궁을 떠올려 봅니다. 저의 유년 시절엔 그곳이 애초에 궁이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거든요. 이름도 궁이 아닌 창경원(昌慶苑)이었고요. 그곳에 가야 호랑이를 볼 수 있었고 그래서 호랑이 집인 줄로만 알았죠. 어흥, 일본 막 깨물고 시프다.



북경에서 마오의 얼굴은 어디에나 있다. 과거에 붉은 표지로 장식된 그의 어록이 중국전역을 뒤덮었지만 허울뿐인 공산중의 중국에선 그는 그저 하나의 아이콘, 희미해진 역사일 뿐이다.




여기서 코미디 하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마오는 천안문에 올라 개국 선언까지 했음에도 문화혁명 당시 부르조와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며 자금성을 밀어버리고자 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 그리고 당시의 공산당에게라면 흔했을 “아무거나 다 부신다 해~”식 붉은 열정으로 말이죠. 자신의 권력 강화와 정적 제거가 주목적이었던 문혁이었지만 당시 마오의 사회주의에 대한 편집증은 극을 달렸던 것 같아요. 혹은 본심을 숨기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거나 누구에겐가 보여줘야 할 강한 본보기가 필요했겠죠. 흔히 마오의 과가 셋이면 공이 일곱 개라고 하는데 만약 마오가 자금성을 밀어버렸다면 그 일곱 개의 공 따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겁니다. 공이 정말 일곱 개나 되는지도 불확실하고요. 설마 축구공 일곱 개 말하는 건가? 하지만 마오의 무덤은 사후에 북경의 황제 라인(line), 곧 도시의 중축선 상에 지어지게 됩니다. 마오기념관이란 그럴싸한 이름도 붙여진 채 말이죠. 자신이 부르조아의 상징이라 매도했던 과거의 황제들도 죽으면 훌훌 털고 북경을 떠나갔는데 정작 자신은 뭐가 아쉬운지 중국 최고의 부르조아 지(地)에 드러누워 버린 거예요.


물론 마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시신이 화장되길 원했었죠. 살아생전 너무나 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잘못된 통치로 수천만의 인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부관참시라도 걱정했을지 몰라요. 그러니 사정이야 어떻든 마오의 잘못은 아닌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마오”라는 브랜드를 유지해야 할 필요를 느낀 중국공산당은 그의 유언과 상관없이 그를 방부제 처리하여 황제 라인에 뉘어 버린 겁니다. 권력을 그리 좋아했으니 죽어서도 느껴보라며 그 위에 자금성만 한 건물도 뚝딱 지어서.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였지만 죽어 공산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코미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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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禁城 五門

자금성의 다섯 대문중 가장 상징적인 우문. 다섯 번째 문이란 뜻이다.




도시의 중심선을 벗어나면 동쪽으론 그 유명한 왕푸징이 있고 서쪽으론 북경 젊은이들이 쇼핑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북경 최대의 쇼핑거리 시단(西單)이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첸먼(前門), 천단(天壇)공원등이 있고 북쪽으로는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유명한 관광지 스차하이와 증축선 위에 세워진 역사적인 건물들인 종루, 고루가 있어요. 멀리 더 북쪽으론 새로이 건설된, 그래서 요즘 북경을 찾는 거의 모든 패키지 여행상품에 빠지지 않는 올림픽 타운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인민대, 북경대, 칭화대등 북경 내 유명 대학들과 원명원, 이화원이, 동북쪽으로는 수도 국제공항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그 밖의 지역은 곳곳에 원, 명, 청나라 시대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랄 수 있는 오래되고 삶이 꿈틀거리는 후통들이 구불거리고 자금성만큼이나 거대한 빌딩과 최신식의 고층 아파트들이 북경 이곳저곳에서 올라가고 있어요. 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음식 냄새로 가득하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끄러우며 활기찹니다. 북경은 과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에너지가 넘쳤을 거예요. 거대제국의 정치와 문화, 생활의 중심이었을 테니 최고로 발전되고 가장 화려한 도시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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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절 적의 침입을 더디게 하기 위해 구불거리게 만들어진 후통은 수백 년 북경인들의 삶과 역사가 녹아있는 소중한 곳이다.




수천 년간 왕조들의 등/퇴장과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 등 수많은 격변을 겪으면서도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의 역사적 장소들이 지금까지 대부분 건재하다는 점은 북경을 여행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이들 중국인들이 역사와 전통을 얼마나 사랑하고 집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마오가 “노년의 마오-혹은 변질된 마오”가 되기 전, 아직은 중국인들의 관념 속 “정상적인 마오”였을 때, 그들 개국 세력은 개국 선언을 하기 이전부터 북경의 옛 모습을 살리면서 동시에 도시의 근대화를 이루려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이점은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높이 평가받아야 하겠죠.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얼마간의 과도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비록 이름만이 남아 있는 서직문(西直門), 동직문(東直門)등의 성문들과 북경의 중축선 상의 남쪽에 서 있던 대명문(大明門 : 대청문, 중화문이라고도 불린다.), 북쪽에 위치했던 지안문(地安門)과 천안문을 좌/우로 보필하던 장안좌문(長安左門)/장안우문(長安右門)등을 철거한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말이죠. 당시 도시 개조의 최대 과제는 늘어나는 인민들과 자동차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을까와 얼마나 멋들어지게 인민 해방군의 가두 행진을 펼칠 수 있을까였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아, 물론 철거업자가 당시 공산당 지도부와 죽이 맞던 사이여서 뭐든 부셔야 돈이 되었다면 또 모르지만요.(예로부터 관에서 시행하는 공사만큼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도 없다.) 사정이야 어떻든 지금으로서 아쉽고 또 아쉬운 부분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한낱 스쳐 가는 여행자도 이럴진대 북경인들에겐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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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천안문 말고도 자금성으로 통하는 문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




한편 역사적인 도시의 구조나 기능상/행정상의 구조와는 상관없이 여행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북경을 바라보고 돌아다니게 됩니다. 지도상의 도시의 모습과 여행자들 머릿속 도시의 구조는 항상 다른 법이니까요. 여행자들은 언제나 점과 점 사이를 바삐 움직이며 그 동선의 결정엔 교통편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도 교통이 편하다면 심리적 거리는 가까운 법이니까요. 북경에선 지하철을 중심으로 하루 이동의 큰 뼈대를 짜고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는 지역들은 버스나 도보 등으로 보충한다면 북경이 제아무리 큰 도시라고 해도 무리 없이 북경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습니다. 기존의 1, 2, 5, 13호선 외에 새로이 개통된 4, 8, 10호선 등(총 17개 노선이 있다.)을 이용한다면 북경 거의 모든 지역을 고루 갈 수 있으니 북경에선 역시 지하철이 가장 편리한 셈이고 제가 가장 추천하는 교통편이기도 합니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적어도 3km 이내라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도 결국엔 지하철역을 만나게 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노선의 버스 편을 이용하면 되니 걷다 길을 잃을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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什刹海

겨울의 스차하이. 북경엔 흔하지 않은 눈까지 쌓여 한결 고풍스러워 보인다.

여행자로서 북경에 왔다면 되도록 많이 걸어봅시다.




북경이란 도시가 걷기에 그다지 이상적인 곳은 아니겠지만(동구 밖 과수원길은 아니겠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느껴질 겁니다. 치안도 나쁘지 않아 아주 늦은 밤에 술에 취해 주머니 속 동전을 마구 뿌리며 유흥가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거나 마주친 공안의 얼굴에 침만 뱉지 않는다면 별다른 위험도 없을 테니 마음껏 걸어 보세요.


북경은 거대하고 때론 거칠고, 나른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속 터지고 무질서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거대하고 희한한 세상을 이룹니다. 만족스럽고 충분히 걸을 만합니다. 감상할만합니다. 그러니 여행지로서 북경이란 도시는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당신을 저 먼 역사 속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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