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는 잊어라. 아니 취소
여러분이 북경을 처음 찾으셨다면 뭐가 뭔지,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 잘 압니다. 세상 어디든 초행길은 다 그렇죠.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북경에서 길 찾기는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중심지는 계량된 논 마냥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반듯이 구획을 나누고 있어 목적지를 찾아가기에 큰 어려움이 없으니까요.(대로변 코너마다 주변 지도와 현 위치가 표시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는 북경을 설계할 때 앞서 소개한 대로 남북으로 중축선이라는 기준선을 긋고, 그 아랫부분에 동서로 연결되는 장안대로라는 아주, 아주 넓은 도로를 위치시켜 “+” 모양의 꼭짓점을 만든 뒤, 다시 이를 중심점으로 삼아 “ㅁ” 모양의 환(環)이라는 개념을 더해 구획을 나누고 있기 때문인데요. 중축선과 장안대로가 각각 동서남북을 나타낸다면 이 환은 각 방향 사이의 넓은 중간지대를 형성합니다. 이 환은 북경의 중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나타내기에 어느 환 지역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집값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하죠. 특히나 북경은 골목의 도시, 곧 좁은 후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각각의 환은 실핏줄 같은 수많은 골목(후통)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수월한 길 찾기는 어디까지나 대로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후통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몇 환(環)의 00후통이라고 말하면 정확하게 그 골목 앞에 데려다준다고 합니다만 우리 여행자들은 그런 경험을 누려보지 못하겠네요. 여행자들은 언제나 일정에 쫓기기에 유명 관광지 위주로 이동을 하니까요. 지하철 노선이 몇 안 된다는 점이 여행자들에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었지만 최근 들어 지하철 노선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어 살짝 곤란한 면이 있어요. 여행자들에게 여행지의 발전이란 때때로 “너는 이제 미아~”를 뜻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도시의 규모에 비해 노선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고 이는 역설적으로 여행자들에게 거대한 도시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합니다.
西绒线胡同
도대체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하는 거야.
화장실의 방향을 여기저기 써놔 뭔가 안내는 친절한 것 같은데... 결국 화장실은 못 찾았다.
하지만 북경을 처음 찾는 여행자들에겐 단순한 북경의 도시구조 역시 강제로 보잉747 조종실에 앉혀진 마을버스 기사만큼이나 낯설 수 있습니다. 반듯한 대로변이 아닌 라면 면발 마냥 구불거리는 후통은 더욱 그렇겠죠. 그러니 영어까지 안 통하는 북경에서 원하는 장소를 찾기란 매우 어려울 수 있어요. 더구나 북경이라면 파리나 뉴욕 등 다른 대도시와는 분명히 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다. 도시의 크기나 복잡함과 상관없이 우리를 헤매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죠. 석연치 않은 무엇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水道子胡同
어느 지역의 후통이던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애초에 도성을 침략한 적이
자금성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더디게 하기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저의 두 번째 북경 여행 당시의 에피소드.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저렴한 호텔은 북경역 인근에 있었는데 지도가 인쇄된 바우처(voucher)를 들고 북경역에 내리니 위치를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지도대로 찾아가 보니 분명 근사한 호텔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지만 그 호텔은 예약한 호텔이 아니었어요.(나의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외관부터 비싸 보였다.) 북경역 주변엔 호텔이 많기 때문에 더욱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북경역에 내린 지 두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이 흐르고 나서야 호텔에 짐을 풀 수가 있었죠. 지독히 무더운 한여름의 북경에서 무거운 배낭과 트렁크를 끌고 두 시간 반을 헤매보세요. 돌아 버립니다.(이날의 고생만 아니었다면 보다 똑똑하게 살았을 텐데)
한심했던 것은 호텔의 위치가 제가 처음 길을 물어보기 시작한 곳에서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인데 그곳에 서서 두 시간 반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도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뿐이었거든요. 대답들에 어찌나 일관성이 있는지. 게 중엔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 엉뚱한 곳을 가리키며 횡설수설하는 사람, 누구보다 인근지역을 잘 알 것 같은 교통경찰(공안)도 있었는데 그도 모른다고 했었지만 결국 찾아낸 호텔은 경찰서 바로 옆 건물이더군요.(오마이~) 이쯤 되면 모두가 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뭐 공산당의 사주를 받았겠죠. 잘 먹어 살이 찐 뚱뚱이들은 언제나 브루조아의 상징적 이미지이자 공산당의 관념적 타도 대상이니까요.
北官园胡同
어찌 보면 후통은 이방인들에게 일종의 미로와 같다. 애초에 후통이 시작된 역사가 원나라 시절 적의 침략을 저지키 위함이었으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넓은 이해심과는 별도로 다리는 아픈 것이다.
그럼 어떻게 호텔을 찾았냐고요? 결국은 예약된 호텔 찾기를 포기하고 현실 세계에서 바우처 상 지도에 위치하는 그 고급스러운 호텔에 들어가 묻기로 했습니다. 마음으론 제발 여기가 그 호텔이고 이름만 바뀌었어라 하면서. 설령 아니더라도 같은 업종에 있으니 근처 호텔 위치 정도는 알겠지 싶은 마음에서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해낸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음은 물론이고요.
安定門
후통과 달리 대로변은 도지 표지판이 무척 잘 되어 있어 길 찾기가 수월하다.
번쩍거리는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데스크에 서 있던 모든 직원들 눈길이 제게로, 그리곤 잽싸게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더군요. “아, 저 구질구질한 뚱땡이는 뭐야...” 로비 데스크엔 직원들이 무려 네 명이나 있었음에도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어느누구 눈길을 주지 않는 거예요. 커다란 옷 보따리를 들고 나름대로 여행자(곧 잠재적인 호텔투숙객)의 외양을 갖추었는데도 말이죠. 눈이라도 마주쳐야 물어볼 텐데 그녀들에겐 빈틈이 없었어요. 바쁘지 않음에도 그런 척하는 특유의 어색함과 과장된 일관성도 보였죠. 그러한 그녀들의 과장된 어색함엔 구질구질한 놈과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묻어났습니다. 젠장. 뭐,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저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데. 그래 그녀들의 빈틈을 노리며 헛기침도 하고 대리석 바닥에 소리 나게 발도 굴려보고 로비의 고급스런 대리석벽에 코딱지도 몰래 바르고 있으려니 그중 가장 참을성이 없어 보이는 아가씨가 포기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라봐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작은 승리감에 도취 되어 미소를 날리며 이미 땀에 절고 구겨진 바우처를 내밀자 너 수준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두 번째 한숨을 푹~ 쉬며(머리까지 좌우로 흔들 필요는 없었다.) 로비 구석에 서 있던 도어맨 청년을 손짓으로 불러 뭐라고 지시합니다.
대답 없이 고개만 까딱거린 그 청년, 고개를 돌려 저를 흘낏 보더니 흡사 텔아비브 번화가 카페에서 발견된 “아랍계 얼굴을 한 손님이 놔두고 간” 수상한 짐 가방 다루듯 제 캐리어를 뺏어 발로 퉁퉁 차 호텔 정문을 나서며 손가락을 쭉 뻗어 직진을, 손목을 오른편으로 한번 꺽어 우회전을 하라고 알려줍니다. 어우~ 난을 치던 겸재의 손사위가 이렇게 간결했을까. 이렇게 심플하고 쿨한 길 안내는 제 생전 처음이었어요. 뻗은 손목을 꺽으며 짓던 그의 표정 “심플 이즈 베스트다 해~“ 절대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중국어를 못하는 걸 알고 친절한 배려의 마음에서였는지 입 한번 벙긋 안하고 말이죠. 감사의 마음으로 제 점심값이었던 소중한 10위안을 꺼내주자 “니 돈은 차마 못 받을 줄 알았지 메롱.” 하며 미소였는지 울음이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0.3초가량 지어 보이곤 인사도 없이 돌아서 자신의 근무지인 로비 구석 자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大金丝胡同
“ㅁ”형태를 이루는 동네의 외곽은 언제나 주민들로 활기가 느껴진다. 동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가게들이 이곳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뭔가 한심하다고요? 천만에~ 저는 비싼 호텔의 비싸게 구는 호텔리어들 덕분에 무더웠던 8월의 북경역 앞을 달랑 두 시간 반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당시는 그게 중요했고 그것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북경의 산타였고 어찌 보면 그들은 제 생명의 은인. 고맙다 해~
南锣鼓巷
유명한 난뤄꾸샹으로 연결된 조용한 후통에 누군가 그러놓은 익살스런 얼굴
북경에서 길을 물어보면 사람마다 참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데 그중 가장 괘씸한(?) 부류는 길을 알지도 못하면서(혹은 알면서)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는 이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상당한 거리까지 직접 발걸음을 해 가며 과도한 친절함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막상 알려줬던 곳까지 가보면 엉뚱한 곳인 경우가 있어요.(이들 중 열에 아홉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활짝 웃는다.) 이들은 대체로 진심으로 보였고 저는 여러 번 당했습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사람 보는 눈이 생겨 제대로 대답해 줄 사람에게만 질문을 하는 것이죠. 중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이러한 중국인들의 행동을 남을 속여먹기 좋아하는 그들만의 전통(정말이라면 슬프다.)이라고도 하는데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아마 중국인에 대한 과장된 수많은 오해 중 하나겠죠. 더구나 설령 그런 취미(?)가 있더라도 경제적인 이문이라도 남는 일이라면 몰라도 단순히 길을 묻는 정도에 그러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진심으로 알려주고 싶었을 거예요. 비록 자신이 모르고 있더라도 말이죠. 순수한 북경인들에게 결과는 중요치 않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결과주의에 찌들어버린 불쌍한 우리들은 이들을 보며 반성해야 하는 거예요. 그들에겐 과정의 미학이 있고 말만이 아닌 스스로의 행동으로 그 아름다움을 쫓으니까요. 간절히 무언가를 도와달라는 사람이 있고 그들에겐 그럴 마음이 있는 것이죠. 그 둘 사이에 무한한 선의와 꽃처럼 아름다운 인간애가 피어나는 겁니다. 그러한 순수함 앞에 기껏 목적지를 알고 모름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요. 선량한 과정 앞에 결과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요. 알고 모름은 그다음 문제인 겁니다.
하지만 제발 그만둬라.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