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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렌드버터 Jan 21. 2021

유학생으로서 경험한 힘든 시간들

처음 영국으로 유학을 오고나서 처음 2년 동안은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다.


당시의 느낌을 묘사하자면 매일 강한 펀치를 얼굴에 맞고 쓰러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야 했다 (이 부분이 정말 힘들었다).


당시에 난 철저히 고립된 느낌이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기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도 무엇 하나 나아지는게 보이지 않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임상아가 쓴 'SANG A 뉴욕 내러티브'라는 책을 보면 그녀가 뉴욕에서 철저히 이방인으로 느끼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무력감을 표현하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영국에 살면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 임상아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힘들수록 혼자서 고민하고 극복해내는 스타일이였기에 힘들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바뀌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나만 힘든 것 같았다. 다른 한인 유학생들은 괜찮아 보였다. 다들 웃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떠들어 대는 것 같았다. 이는 홀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은 고독함과 함께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유학을 오기 전의 나는 거만했고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내 뜻대로 끌고 나가려는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렇게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당시에 끊임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미성숙했고 여유가 없었다. 매일 과제에 시달렸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참여하고, 그룹 미팅을 하고 집에 오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특히 영국애들과 부딪히며 함께 그룹프로젝트를 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도통 영국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우리 과에는 90퍼센트가 영국인이고 단 3-4명만이 인터내셔널 학생이었다. 다수의 영국인들 사이에 껴있는 마이너리티. 여기에서 오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꽤 컸다.



세미나와 그룹 모임을 할때마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의견을 내고 싶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그런 장애를 가진 분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대답을 할때면 날 싸늘하게 쳐다보는 영국애들의 시선 또한 견디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였다.


유학을 오기 전, 난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않은 나라(예를 들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잘못된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에서 온 학생들은 최소한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영어를 잘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영국인들에게는 한국은 생소한 나라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봤다면 북한에 대해 더 들어봤지 남한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예전에 내가 생각했었던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같은 나라였다.


유학하는 동안 꽤 여러번 영국인 특유의 포커 페이스를 경험하였다. (이거 아주 놀라운 능력이다, 자기의 속마음을 웃고 있는 얼굴 뒤로 꽁꽁 숨길 수 있는 능력).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얄미운 몇몇의 영국인 친구들을 겪으면서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온갖 가식을 떠는 이들에게 나도 똑같이 속마음을 웃음 뒤에 숨긴채 가식을 떨었다.


KBS '승승장구'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에드워드 권 셰프가 한말이 기억난다. 자신이 미국에서 주방 보조로 일할때 현지 사람들에게 엄청난 무시를 받으며 일했다고 한다. 그때 진심으로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는 심정까지 생겼었다고.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난 죽이고 싶은 심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대충 이해가 갔다.


1학년을 마치고 코펜하겐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에서 1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너무 분했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 호텔룸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소리내서 울었다. 영국에 있을 때 절대 영국애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괜히 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역 꾸역 하루하루를 견디고 나니 졸업반이 되었다. 유학온지 3년차때부터 박람회 통역 가이드, 트렌드 회사 인턴십 등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씩 빛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졸업 후 바로 석사에 진학하면서 런던으로 이사를 했다. 꾸준히 다양한 경험들을 쌓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도 생겼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고 '그때 그랬었지' 하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유학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리 가족 중에서 학위과정을 해외에서 한 경우는 내가 처음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 한국이라는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내가 꿈꿔오던 이상향이 영국에 있을 것 같았다. 반대하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온 유학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이거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이도저도 아니라는 사실이 빤히 보였다.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 그냥 묵묵히 견뎠다. '칼을 뺐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힘들고 짜증났지만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고, 그룹미팅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고, 나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가끔씩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갔고 (정말 문화생활이 큰 힘이 되었다), 다른 유럽국가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서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답하고 싶다. 영국에 오기 전, 서점에 나와있는 유학수기들을 모아놓은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 책들은 성공담으로 가득했었는데 (공모전에 참여해서 수상을 했다거나, 처음부터 엄청나게 유명한 회사에 인턴으로 뽑혔다던가) 힘든 점에 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막상 겪어보니 울고 싶을때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것. 이게 현실이다.


힘들때마다 온라인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힘을 얻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적이 수없이 많았다. 성공담 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과정을 공유하는 것, 이게 주는 위로는 엄청나다. 난 다른 사람들이 유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일부러 인터넷에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검색하기도 했었다. (해커스 유학게시판에 올라오는 익명의 유학생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이것은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유학생이라면, 매일 과제에 치이고 함께 공부하는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혹은 인종차별을 당해서 상처받았다면 진심으로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 비슷한 것을 겪었고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겪고 있는 힘든 이 시기가 언젠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그때 그랬었지'하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날이 올것이라 믿기를 바란다.


그리고 외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현지인들과 동등한 잣대로 학교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평가 받는 것. 이게 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당신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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