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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Jan 12. 2023

저마다의 북극성을 찾는 시대

평균실종 - 'N극화'가 나타내는 것

필자가 속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23년을 전망하며 10대 트렌드를 발표했다. 


첫 번째 키워드는 ‘평균실종’이다. 

‘평균실종’은 평균이 유명무실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일컫는 거시 트렌드인데 최근 나타나는 여타 트렌드의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균실종의 의미는 평균이 본래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키는 반 평균보다 작다’처럼 평균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평균은 ‘우리 반’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나타내는 대푯값이면서 평가나 비교의 기준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를 좀 더 확장하자면 사회적 시각에서 평균은 ‘전형성’을 나타내며, 산업적 시각에서 보자면 평균은 대중(mass)의 취향을 상징한다. 결국, 평균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평범·보통·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틀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의 위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사회의 분포와 관련이 깊다. 우리가 평균을 사용할 때 가정하는 사회의 모습은 평균을 중심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이다. 가운데(평균)가 가장 높게 솟아 있고 양옆으로 점차 낮아지는 모양의 분포인데 우리는 이러한 분포를 그 이름처럼 정상적인(normal)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 혹은 소비자 집단이 정규분포에서 벗어나게 되면 평균은 힘을 잃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elfareact.net/m/320)






정규분포에서 벗어나는 평균실종의 양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N극화’이다. ‘N명의 사람이 있으면 N개의 극이 생겨난다’는 의미인데,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북극성을 찾아 흩어지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저마다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분포에서 평균과 같은 대푯값 하나가 전체 분포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N극화 현상은 다양한 산업에서 확인된다. 최근 외식업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카페를 예로 들자면, 과거에는 어디선가 본듯한 인테리어와 가게마다 크게 다르지 않은 메뉴가 카페 창업에서 안전한 선택이었다. 최근에는 ‘유행하는 콘셉트가 없는 것이 유행’이라 할 만큼 가게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시그니처 메뉴를 갖는 것이 중요해졌다. 해외 현지 콘셉트가 대표적인데, 호주식 라떼·터키식 커피 등 온갖 국가와 도시가 콘셉트로 등장하고 있다.




터키식 커피 (이미지 출처: 논탄토 인스타그램 @nontanto.roasters)




이러한 변화에는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함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자신만의 사업을 운영하고 싶은 젊은 창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2021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소상공인 사업체는 1년 전에 비해 1만 개(0.2%)가 감소했으나 대표자가 20대 이하인 사업체는 21만3000개로 2020년 대비 11.7% (2만2000개) 증가했다. 이 중 숙박·음식업에 분류된 사업체만 놓고 보면 청년 대표는 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시장에서도 N극화를 찾아볼 수 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만큼,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출판업계는 난항을 겪고 있지만 최근 일반 도서의 신간 등록 수는 오히려 증가해 2021년의 경우 10만여 권이 등록됐다고 한다. 여기에는 독립 출판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큰 기여를 했다. 독립 출판이란 대형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기획부터 제본, 유통까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독립 출판이 많아질 수 있었던 것은 POD(Publish on Demand, 주문형 출판)가 발달하면서 몇천 부씩 책을 만들지 않아도 개인에 맞춤화된 소량 출판이 쉬워진 덕이 크다. POD 서비스를 오래전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교보문고에 따르면 사업을 시작한 해인 2012년과 비교해서 2021년 POD 서비스는 약 9배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책을 만드는 사람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 역시 N극화 추세이다. ‘2022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한국의 서점은 총 2528개로 집계됐다. 2019년 2320개에서 208개(0.9%) 늘어난 것으로, 편람 작성 이래 최초로 증가했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에 자리를 넘겨줬으나 독립 출판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독립 서점이 많아진 탓이다. 이러한 독립 서점은 작지만 명확한 색깔을 중시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취향과 통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N극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N극화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 전망과 부정적 전망 모두를 던진다. 부정적 전망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노사회 키워드에서도 우려한 바와 같이 공동체가 와해되고 사회가 개인 단위로 해체되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는 현 시대를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라 진단하기도 했다.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현대인은 누구와도 깊은 연대를 갖기 어렵다는 모순을 겪고 있다. 그 결과로 사회에는 공감이 결핍된 극단주의가 팽배하고 개인은 외로움이란 질병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 전망도 그려 볼 수 있다. 평균의 시대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평균이라는 단일 기준에 의해 평가받고 정답과 같은 삶을 좇아야 했다면 평균실종의 시대, 특히 N극화 흐름 속에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인정받는다. 『평균의 종말』 저자인 토드 로즈 교수는 교육 분야에서 특히 N극화를 중시한다. 사람을 평균이라는 지표 아래 뭉뚱그리지 않고 ‘개개인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저마다 다른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시장에 적용해본다면, 거대 자본의 힘으로 품질·가격·유통 모든 것을 갖춘 대표 상품만이 시장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색다른 스토리가 있는 비주류 상품이 팬을 모으는 현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N극화 시장이 발달할수록 소비자는 같은 돈을 쓰더라도 뻔하지 않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재미를 만끽하고 소상공인도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 전망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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