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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Feb 18. 2024

스탠리 텀블러의 인기가 시사하는 것

트렌드 코리아 (8) 디토소비


최근 미국에서는 40온스(1.18L) 용량의 거대한 핑크색 텀블러를 구하려는 젊은 소비자들이 오픈런을 위해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캠핑하는 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 한정판으로 출시된 이 텀블러는 1020세대에서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스탠리 텀블러'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이었다.

 스탠리 텀블러가 급부상하게 된 것은 틱톡에 올라온 한 영상 때문이다. 불이 난 자동차 안에 남아있던 텀블러에 얼음이 녹지 않은채 있는 것을 보여 준 영상인데, 그 텀블러가 바로 스탠리사(社) 제품이었다. 원래 캠핑용품 회사인 스탠리사는 텀블러 덕에 작년 한 해 매출이 4년 전 대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스타벅스 X 스탠리 텀블러



이처럼 하나의 상품이 한 회사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강력한 돌풍에 휩싸이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시장에는 항상 유행이 존재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무언가를 따라 사는 ‘동조소비’ 혹은 ‘추종소비’ 양상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패션처럼 유행이 중요한 품목에서만 동조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여행, 생활용품, 책과 자기계발용 교육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따라서 산다. 따르는 대상도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이 아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올라온 SNS 콘텐츠일 수도, 아는 사람만 아는 인플루언서일 수도 있다.

‘어떤’ 물건을 사야 하느냐는 고민을 넘어 심지어 ‘왜’ 사야 하는지, 구매 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누군가의 제안을 따른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요즘 소비자들이 따라 사는 행위에 ‘디토소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디토(Ditto)’는 ‘나도’ ‘이하 동문’이라는 뜻인데 사람이나 콘텐츠, 커머스처럼 내가 아닌 대리체가 제안하는 선택을 그대로 따르는, 추종소비의 새로운 모습을 지칭하는 용어다. 

디토소비는 소비자들의 구매 의사결정 과정을 바꾸고 있다. ‘필요 인지 - 정보 탐색 - 대안 비교 - 구매’에 이르는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대신 강력하게 디토할 대상을 발견함으로써 구매 이전 단계를 과감히 단축한다. 

디토소비 시대의 소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먼저, 디토할 수 있는 영역이 무한 확장되고 있다. 과거 동조소비의 대표적인 영역은 패션과 뷰티였다. 유명 연예인이 무언가를 입거나 바르는 장면이 대중매체에 나오면 ‘품절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 최근엔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도 디토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스테이폴리오’는 숙소를 감성적으로 제안하는 플랫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행지를 정한 후 날짜, 가격, 시설 등 객관적 정보를 중심으로 숙소를 탐색한다. 그런데 스테이폴리오에서는 최대한 많은 선택지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특별한 경험에 초점을 두고 숙소를 제안한다. 마치 건축상을 받은 건물을 소개하는 잡지책처럼 작품 같은 사진과 함께 그곳에 머무는 경험이 어떠한지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스테이폴리오를 디토하는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제안하는 숙소에 따라 여행지를 정하기도 한다.



디토를 이끄는 대상도 다양화됐다. 말 그대로 ‘우상(idol)’이 아니더라도 디토하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디토 대상이 된다. 오히려 유명인은 일반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대신 팔로어가 적게는 몇천 명, 많아야 1만 명 단위인 나노인플루언서, 마이크로인플루언서가 작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특정 영역에 남다른 애정이나 경험이 있다면 좋은 디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임플로이언서(Employencer: employee+influencer)가 대표적이다. 특정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이 직접 자사 제품에 애정을 드러내며 솔직한 후기와 구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인기가 높다.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후기보다 전문성과 신뢰도 있는 정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디토소비의 영향력은 상품과 서비스 선택에서 나아가 어떻게 사용할지, 심지어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할지까지 결정한다. 가령 구독자 90만 명이 넘는 패션 유튜버 ‘옆집언니 최실장’은 추천 제품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코트 관리법’을 알려 주거나 ‘절대 말릴 템’처럼 구독자가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물건을 보고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고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대신 해당 분야에 노련한 인플루언서의 식견에 문제를 맡긴다.



무엇이 내게 필요한지 아는 것부터 디토가 시작되기도 한다. 요즘 젊은 층에 유명한 문구 브랜드 ‘포인트 오브 뷰’는 다소 높은 가격의 필기구를 판매하지만 인기가 많다. 해당 필기구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소구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명(Point of View·관점)처럼 각 제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 사소한 물건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소비자의 정보력이 이렇게 높아진 시대, 왜 오히려 누군가를 따르는 디토소비는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정보 때문이다. 

시장에 정보가 과도하게 넘쳐나는데 반해, 개인의 정보 처리 능력은 제한적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의 질 측면에서도 개인이 정보의 품질을 판단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이 때 소비자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FOMO(Fear of Missing Out)’와 ‘FOBO(Fear of Better Option)’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넘쳐나는 정보를 놓치기는 싫으면서도 정보 탐색 결과를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디토소비는 이러한 정보 처리와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된다.




그렇다면 기업들도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이 커졌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에서 최대한으로 제품을 탐색하고 구매를 결정하거나, 혹은 쓰던 브랜드를 그대로 다시 구매하는 경향이 현저히 줄고 있다. 대신 그 때 상황, 목적, 품목에 맞추어 최선의 선택을 위한 디토의 대상을 고른다. 따라서 좋은 품질, 좋은 가격의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만으로 소비자들에게 발견되고 구매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고객은 특정 상황이나 품목을 구매할 때 어떤 쇼핑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가? 어떻게 디토를 결정하는가?  소비자의 ‘디토’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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