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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Sep 22. 2024

숙면이 소원인 사람들

슬리포노믹스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잠 퍼자기’ 대회가 열렸다. 대회 참가자들은 지급된 손목밴드형 심박측정기를 차고 1시간30분 동안 에어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면 된다. 기본 심박수와 평균 심박수의 변동 폭이 가장 큰 사람이 우승하는데, 깊이 잠들수록 심박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30분마다 깃털로 간지럽히기, 모기·코골이 소리 들려주기 등 방해공작이 펼쳐지지만 참가자들은 꿋꿋이 잠을 이어갔다. 이미 잘 알려진 ‘멍 때리기’ 대회에 이어 잠을 자는 것도 대회를 열 만큼 현대인에게 숙면이 귀한 일이 된 것이다. 




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잠을 줄여 가며 공부한다’는 표현처럼 자는 시간을 아까운 시간으로, 수면 부족을 성실함이나 성공의 징표로 생각했다면 이제 잘 자는 것을 필수적인 건강관리이자 삶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로 인식한다. 그만큼 숙면이 어려운 일이 되고 있어서다.


각 개인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된 이래 숙면을 방해받을 요소가 많아졌다. 이뿐만 아니라 직업·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 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도 편안한 잠을 방해한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진료를 본 사람은 2018년 85만5025명에서 2022년 109만8819명으로 28.5% 늘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2년 국내 만 19~5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1.4%는 ‘수면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0년 조사에 비해 2030세대의 응답비율이 크게 증가했는데, 30대의 경우 절반에 해당하는 50.4%가 수면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외국에서도 수면 위생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각종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일명 ‘슬리포노믹스(sleep+economics)’라고 부르는 수면경제가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먼저, 잘 자고 있는지 수면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다. 최근 반지 형태로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링’도 수면 측정을 중요한 기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피부 온도와 심박수를 측정해 수면 단계와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다.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호흡 소리를 측정해 수면의 질을 분석해 주는 ‘에이슬립’ 같은 서비스도 있다. 


잠과 직결되는 제품, 즉 침대와 매트리스도 나날이 진화한다. 예를 들어 코웨이에서 출시한 스마트 매트리스는 사용자의 체형과 수면 자세에 따라 매트리스의 경도가 자동으로 조절된다. 사용자가 살이 찌는 등 체형이 달라진다거나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처럼 단기적 변화에도 맞춤화가 가능하다. 수면 솔루션 전문기업 몽가타는 아기들이 자는 요람에서 착안한 ‘스웨이 침대’를 선보였다. 요람처럼 침대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인데, 귀 안의 전정기관을 자극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2030세대도 수면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숙면을 위한 각종 제품도 인기다. 예를 들어 기상시간 전에 서서히 밝아져 일출효과를 내는 스마트 조명이나 숙면을 돕는다는 향을 머리맡에 뿌리는 필로 미스트 등이다. 수면 무호흡증에 도움이 되는지 등 논란은 있으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코로만 숨을 쉬도록 하는 ‘마우스테이핑’이나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다양한 ‘컬러소음’(백색소음과 대비돼 일정한 파장대를 가진 소리) 영상이 SNS상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일출효과 조명 (사진출처: 사진속링크)


먹는 방법도 있다. 미국 밀레니얼 사이에선 ‘수면 목테일(mocktail: 무알코올 칵테일)’이 인기다. 수면에 좋다고 알려진 타트체리주스 등을 재료로 넣는 것이다. 최근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알코올-프리’ 운동을 넘어 카페인 섭취를 절제하는 ‘카페인-프리’가 중요해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국내에서도 디카페인을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은 5년 전인 2018년 대비 278% 증가했다고 한다.


나아가 자는 것 자체를 즐겁게 만드는 게임도 등장했다. 잠을 자는 동안 포켓몬을 모으는 ‘포켓몬 슬립’ 게임은 잘 때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잠들기만 하면 플레이된다. 오래 잘수록 높은 점수를 얻으며 플레이어 영역에 더 많은 포켓몬이 모여든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패턴을 가진 포켓몬이 모이기 때문에 때때로 희귀한 포켓몬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슬립파고치’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다마고치처럼 매일매일 업그레이드시키는 게임이다. 수면 목표를 지키면 아이템을 모을 수 있으며 게임 속 자신의 집을 취향대로 꾸미고 집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포켓몬 슬립'의 화면



슬리포노믹스는 시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수면 관련 직업이 각광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수면 코치’는 국내에선 낯선 개념이지만 해외에서는 공인된 자격이수과정이 존재할 만큼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운동선수들이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멘털 코칭을 받는 것처럼 수면 전담코치를 두고 컨디션 관리를 받기도 하고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임직원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수면 코치를 고용한다. 이들은 별도의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수면 위생을 개선할 수 있수록 돕는 역할을 한다.


기존의 기업들도 시장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보일러 기업은 밤사이 사용자의 체온 변화를 감지해 자는 동안 쾌적한 환경이 되도록 실내 온도를 조정해 주는 인공지능(AI) 기능을 제품에 탑재하고, 가전제품 기업은 밤새 소음이나 빛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든 가전제품에 ‘수면 모드’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잘 자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잘 자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건강한 생활습관과 더불어 잠을 ‘과도하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정통파의(orthodox)’ ‘잠(somnia)’을 더해 ‘오소섬니아(orthosomnia)’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완벽한 수면법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병이라는 말이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갈수록 푹 잠들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잠 걱정을 하지 않고 누구나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원해 본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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