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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돈이 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6 (2) 기분경제, 필코노미

by 권정윤
“오늘 입은 옷 색감 미쳤다… 진짜 느좋템임.”
“요즘 피드에 뜨는 여행지, 완전 느좋카 많아졌네.”



최근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신조어 중에 ‘느좋’이 있다. 얼핏 들으면 비속어인가 싶지만 사실은 ‘느낌 좋다’를 줄인 말로, 패션·사진·물건·공간·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사용된다. ('느좋카'는 '느낌좋은 카페') 정확히 무엇이 좋다고 콕 짚어 이야기하지 않고 뭉뚱그려 ‘느낌 좋다’는 표현 한마디면 이유가 더 필요하지 않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요즘 시대 어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특히 ‘질감이 좋다’거나 ‘분위기가 따듯하다’ 등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나의 느낌’이라는 주관적 기준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느좋’의 유행은 소비에서 기능적 가치를 넘어 감성적 가치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요즘 소비자들은 ‘예쁘다’ 정도의 감성을 넘어 현재 자신의 기분을 읽어내고 최상의 상태로 관리하고자 한다. 이러한 소비의 변화를 일컬어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는 ‘기분경제, 필코노미(Feel+economy)’라 명명했다. 엄밀히 말해 학술적으로 ‘감정’ ‘기분’ ‘느낌’은 모두 다른 용어지만 통상적으로 세 단어를 혼용한다는 점을 고려해 여기에서 기분이란 다소 넓은 개념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필코노미에서 기분은 어떻게 소비로 이어질까?




먼저, 기분을 세밀하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서비스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무디’ ’마음정원’ 등 기분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하는 사람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감정 일기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화난 표정 혹은 웃는 표정 등 몇 가지 표정으로 하루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에 그쳤다면 요즘의 기분관리 앱은 ‘긍정 감정’ 안에도 ‘신나는’ ‘뿌듯한’ 등 수십 가지 감정 단어로 기분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잠에서 깼을 때, 출근길, 점심시간 등 상시적으로 기분을 기록하고 추후 데이터화해 분석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표정 인식 기술을 활용해 기분을 읽어내는 제품도 등장했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전시회인 ‘CES 2024’에서 공개된 ‘BMind’라는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거울은 사용자 표정을 비롯한 여러 단서를 포착해 기분을 감지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선 사용자의 기분이 침울해져 있다면 거울이 알아서 기운을 낼 수 있는 문구를 띄워주거나 색상을 바꿔 기분 전환을 돕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의 기분에 맞게 제공되는 기분 큐레이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찻집 ‘아도’는 맛에 따라 차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에 맞는 차를 주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뉴판에 적힌 주요 감정 7가지(희로애락애오욕)를 보고 직접 차를 고르거나 혹은 사장님에게 ‘차’방전을 부탁할 수도 있다. 현재 내 기분이 어떠한지, 그리고 기분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적어내면 그에 맞는 차를 추천해 준다. 예를 들어 ‘피곤하고 우울해요’ 하면 활력을 주는 ‘화(花)차’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또한 불편한 기분을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서비스도 인기다. 일본에서는 젊은 직장인이 퇴사를 대신 해주는 ‘사직 대행 서비스’를 많이 찾는다. 사직 대행은 퇴사 의사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감정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정 절약’은 소비 과정에도 적용된다. 배달 음식 주문을 전화 대신 앱을 통해 간편하게 하는 것처럼,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불만을 접수하는 등 불편한 기분이 유발되는 과정 또한 최소화한다. 미국의 AI 스타트업 ‘파인(Pine)’은 사용자 대신 AI가 전화를 걸어 구독 해지, 항공기 지연에 따른 보상 요청 등 번거로운 절차를 처리해주는 ‘AI 전화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는 기분을 올려주는 소비가 일상 전반으로 스며든다. ‘오늘의집’에 따르면 최근 ‘스트라이프 수건’ 및 ‘컬러 샤워기’ 검색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품목으로 보자면 흔한 생필품이지만 감성을 더한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내 일상의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조명이나 멀티탭 등 비교적 적은 비용의 ‘기분템’이 인기가 많다.




이처럼 필코노미가 등장한 배경에는 ‘기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기분이 좋고 나쁨이 개인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당하는 것이었다. 반면 요즘에는 기분이 우울하다면 왜 그러한지 원인을 분석하고 호르몬을 비롯한 과학 지식과 기분추적 앱 같은 기술을 동원해 우울함을 개선하고자 한다. 기분을 관리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젊은 연령층으로 갈수록 기분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조절하는 ‘기분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어릴 때부터 여러 명의 형제나 친척 어른, 심지어 친구들과 부대끼는 일이 적어지며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자신의 기분을 다루는 연습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한 공간 안에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소통하고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적확하고 풍부한 단어를 고르기보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대변하는 일이 익숙하다. 특히, 부정적 감정을 마주할 일이 적었던 만큼 불편한 기분이란 얼른 벗어나야 하는 상태로 여겨진다.






앞으로 필코노미에서는 비즈니스에서 소비자 기분을 공략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된다. 이는 소비자의 충동을 북돋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분이라는 소비자의 현재 상태, 즉 ‘맥락’을 잘 읽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자는 지금 어떤 감정의 맥락 속에 있는가?’ ‘제품 및 서비스를 통해 어떤 기분을 경험하는가?’ 두 질문을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위 사례처럼 항상 기분을 완벽하게 유지하려 하는 사람이라면 필코노미에 의존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마음도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필코노미 속에서 긍정적인 감정만 취하는 사람은 점차 마음근육이 약해져 작은 어려움에도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감정적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도전하지 않고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감정 편식 대신 낯선 감정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 본 글은 필자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에 연재하는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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