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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Feb 24. 2020

'기생충' 알고 보면 마케팅의 승리다!

봉감독, 아니 네온(Neon)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지난 20일,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들이 청와대로 초대받았다. 코로나19 지역 확산이 본격적인데, 아무리 '기생충'의 수상이 역사적인 일이라지만, 조용히 진행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러 비판에 억울한 건 '기생충'일 것이다. 영화 자체가 코로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과거였다면, 대대적인 카퍼레이드를 했어도 모자를 정도의 기념비적 사건이 아니던가.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영광도 점차 코로나19라는 빅이슈에 덮여 사라져 가는 모양새이다.


물론 이미 '기생충' 수상의 의미와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충분히 다루긴 하였다. 이미 국제 영화계에서 명성이 있던 봉준호 감독인 데다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보편적인 주제의식. 그 어려운 주제를 잘 버무려낸 스토리까지, 영화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기에 이번 쾌거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처럼, 단지 영화 만이 훌륭했다면,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 특히 미국 현지 배급사인 네온(Neon)의 뛰어난 마케팅 지원이 없었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모르지만, 어찌 보면 기생충의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케팅'의 힘을 최근의 마케팅/커머스 트렌드와 엮어서 정리 해보고자 한다.


01 들어는 봤나? 플랫폼릴리스



 지난 10월 넘쳐났던 '기생충' 북미 개봉 소식 관련 기사를 혹시 기억하는가?  "북미도 ‘기생충’ 쇼크… 상영관 단 3곳에서 역대급 기록" 보통 대략 이런 식의 기사들이었다. 이 극장당 평균수입(PTA : Per-Theater-Average)이 2016년 라라랜드 이후로 최고 수준, 역대 기록으로도 6위이니, 문자 그대로 '역대급' 기록이 맞았다. 더욱이 외국어 영화 한정으로는 압도적 1위인 흥행 기록이었다. 하지만 기사를 보다 보면 의문이 생기게 된다. '기생충' 흥행이 역대급이라는데, 박스오피스 순위는 고작 13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급사 네온에게는 계획이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플랫폼릴리스 전략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플랫폼릴리스는 제한상영의 한 형태로 와이드릴리스와 대조되는 상영 전략이다. 보통 600개 미만의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해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확인해가며 상영관을 확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와이드릴리스의 경우,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서 초반에 확 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봉일 혹은 첫 주차의 흥행수입이 중요하다. 하지만 플랫폼릴리스는 소수의 스크린만 확보하기에, 규모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고, 극장당 평균 수입액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즉 아무래도 자본이 적은 소규모 배급사와 영화와 어울리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네온은 여기에 디테일을 추가하는데, 뉴욕과 LA의 단 3개 극장으로 한정지어서 개봉해버린 것이다. 이중 유일한 뉴욕의 상영관이던 IFC센터는 첫 주말 모든 표가 매진사례를 일으키며, 제대로 바이럴을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플랫폼릴리스 전략 사실 낯설지 많은 않다.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서, 고객의 반응을 보고 리텐션이 올라오면 광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 바로 린스타트업을 비롯해서, 스타트업들이 주로 사용하던 방법론 그대로이지 않던가. 적은 자본으로 펼칠 수 있는 전략의 핵심은 아무래도 비슷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지금은 유니콘 혹은 예비 유니콘 후보로 자리자리 잡았지만, 쿠팡의 로켓배송도, 마켓컬리의 샛별배송도, 쏘카나 타다의 서비스도 모두 강남이나 판교 혹은 제주 같은 소규모 지역에서 테스트를 거쳐 전국적인 서비스로 확장해나갔다. 하지만 결국 좋은 제품/서비스는 바이럴을 일으키고, 볼륨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기생충은 오스카 수상 이후 스크린 2천 개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02 스크리닝 VS. 스크리너, 체험 마케팅의 힘


 한국 경제는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어 시장의 크기는 커지지 않는데,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그나마의 파이도 줄어들어 역성장으로 돌아선 산업, 바로 오프라인 커머스이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커머스가 대안을 내놓은 것이 바로 체험과 경험이다. 영화 속 가상현실이라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 현실의 체험이 주는 힘은 가상공간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말하다가, 웬 오프라인 커머스의 체험 마케팅 이야기를 하냐고? 당연히 오스카 레이스에서 네온이 바로 이 체험 마케팅을 영리하게 써먹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영화 산업도 온라인에 물결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전통산업 중 하나이다. 실제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 Service) 서비스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아니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진짜 블록 버스터들이 등장하고 있고, 어벤저스로 대표되는 그러한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용산 아이맥스 같은 진짜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기 위한 예매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네온이 건드린 건 단지 그런 시각적이나 음향적인 체험이 아니었다. (사실 그런 체험으로 승부를 걸기에, '기생충'은 적합한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를 여럿이서 함께 보고, 같이 감상을 나누는 정말 기본적인 체험을 잘 활용하였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한 오스카 레이스가 매년 벌여지곤 한다. 실제로 CJ가 투자한 거액이 '기생충' 수상에 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본의 힘이 모든 걸 결정하지도 않는다. CJ보다 10배 넘는 돈을 오스카 레이스에 베팅한 넷플릭스는 주요 부분 수상에 실패한 걸 보면 말이다. 여기서도 빛을 발한 것은 오히려 네온의 영리함이었다. 


기본적으로 투표를 하려면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에, 보통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2가지 방법으로 영화를 제공한다고 한다. '스크리닝'이라고 부르는 시사회에 초대하거나, '스크리너'라고 부르는 DVD를 발송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표를 얻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스크리너'를 여유를 두고,  발송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스크리닝'보단 '스크리너'가 기한 내 영화를 보여주기에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상 투표는 2월 초 마감이다. 하지만 네온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스크리너'를 발송했다고 한다. 네온이 상 받기를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작은 배급사다 보니, 대량 발송 준비가 오래 걸렸을까? 아니었다. 네온은 '기생충'은 극장에서 여러 명이 함께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눌 때 빛을 발하는 영화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늦게까지 '스크리너'발송을 미루고, '스크리닝' 행사를 열고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 집중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네온이 처음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작년 아카데미의 최대 화제작인 로마도 12월 둘째 주나 되어서야 '스크리너'를 발송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네온은 보다 더, 시의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일정을 최대한 뒤로 미뤘다. 너무 늦게 발송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오스카 시상식이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03 뉴미디어 마케팅? 너무 당연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정도 되면, 네온이라는 회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네온은 고작 2017년에 탄생한, 정말 업력이 보잘것없는 신생 배급사이다. 하지만 신생 배급사가 이런 노련함을 보일 리가 있을까? 알고 보면, 네온은 한 때 메이저 배급사의 자리까지 넘보던 그 와인스틴 컴퍼니의 임원들이 차린 회사이기도 하다. 와인스팀 컴퍼니 시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배급을 담당한 인연으로 이번 '기생충' 배급을 맡게 되었다는데. 이미 설립한 첫 해부터 영화 아이, 토냐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을 정도로 오스카 레이스에 일가견이 있던 회사였으니, 좋은 배급사가 좋은 영화를 만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네온은 확실히 깨인 회사라고 느껴졌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시카 징글 밈이 나왔을 때였다. 제시카 징글? '기생충'을 봤다면, 혹은 보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예고편은 봤다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박소담 배우가 초인종 앞에서 설정한 내용을 암기하려 부르던 그 노래.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독도는 우리 땅 멜로디에 맞춰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로 이어지던 그 노래가 바로 제시카 송 혹은 제시카 징글이다. 영화의 대표적인 개그 장면 중 하나였는데, 독도는 우리 땅을 모르던 미국인들에게도 인상적이었는지, 북미 관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 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유튜브에도 온갖 패러디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네온은 재빠르게 움직인다. 공식 SNS에 박소담 배우에게 배우는 제시카 징글 영상을 업로드하고, 음원을 무료로 배포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 패러디 콘텐츠도 늘어나고 '기생충'이 제대로 바이럴 버프를 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이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웬만한 콘텐츠 회사들은 저작권을 생명처럼 중요시 여긴다. 얼마 전 KBO도 유튜브 등에서 야구 경기 영상을 사용하면 저작권 위반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오히려 네온은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공포도 이겨내고, 제대로 놀라고 판을 오히려 깔아줬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넷플릭스이다. 넷플릭스가 처음 국내 진출하던 때 유명 영화 유튜버들에게 영상을 저작권 걱정 없이 제작하라며 등 떠밀었던 사례가 유명하다. 이때 바이럴로 넷플릭스는 초기 사용자들을 확보했었고, 킹덤이 제대로 터지면서 한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BTS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보며 마치 자신들이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 같이 기뻤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옛날 같았으면, 너무 오버한다고 했을 텐데, 이제는 BTS 너도 한번 해보라는 격려의 댓글들이 잔뜩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 이처럼 어느덧 한국 콘텐츠 산업은 오스카를 수상하고, 그래미를 넘볼 정도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잘 만든 콘텐츠를 알리는 마케팅은 그만큼 발전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걸린 케이스를 제외하면, 우리 안에 작은 영화나 가수들이 성공한 사례를 찾긴 어렵다. 단지 스크린 독과점의 횡포, 대형 기획사의 갑질을 성토하는 목소리 만이 남을 뿐이다. 물론 자본의 힘을 이겨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불합리한 경쟁을 강요하는 구조를 장기적으론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생충'이 이룬 쾌거의 또 다른 주역 네온이 보여주었듯이 우리도 지혜로운 마케팅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단지 콘덴츠 산업뿐 아니라, 작은 커머스 회사들, 더 나아가 모든 스타트업들에게도 매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생충'은 단지 계급 사회가 불러일으킨 사회 문제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보여준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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