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아름다운 창고형 할인점의 전성시대
아래 글은 2021년 09월 22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9월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가 롯데마트 창원중앙점을 내년 상반기 빅마켓으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총 3개의 지방 점포를 추가로 빅마켓으로 리뉴얼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빅마켓은 롯데에게 있어선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 5개 점포를 운영하다가 점포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작년 3개 점포를 폐점하였고요. 빅마켓 MD조직이 롯데마트 산하로 흡수되며 아예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서 철수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출점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창고형 할인점 시장 진출에 대한 롯데의 의지가 여전함을 보여준 겁니다. 이렇게 롯데가 빅마켓 문을 다시 연 배경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성공이 있었습니다.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 코스트코가 잘 나가고 있다는 건 아마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올해는 무려 연간 매출 5조 원을 바라볼 정도라 합니다. 하지만 롯데에게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트레이더스의 성장세도 코스트코 못지않았다는 점입니다. 트레이더스도 하는데 빅마켓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트레이더스는 도대체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가 궁금하실 겁니다. 트레이더스는 오픈이래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고요. 작년과 올해엔 무려 20% 중반대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추가 출점을 통해 매출이 신장하는 것도 있지만, 올해 1분기 기준으로는 기존점도 전년 대비 15.7%나 매출이 늘어났을 정도로, 모범적인 성적표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렇게 소비자들이 창고형 할인점에 열광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롯데는 물론이고, 홈플러스도 아예 전체 매장을 창고형 할인점과 대형마트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창고형 할인점이 고객들에게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축형 소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요. 외출을 자제하면서, 한번 장을 볼 때 더 많이 구매하고자 하는 행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더욱이 코로나 이전부터 소비가 초저가 상품과 초고가 상품으로 양극화되는 트렌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중요한데요. 마치 명품과 SPA 시장으로 패션 시장이 양분화된 것과 유사하게, 장보기 시장도 친환경 유기농 시장과 대용량 저가 시장 등으로 양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스트코는 이러한 시장 트렌드에 완벽히 부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걸로 유명한데요. 적은 수의 상품을 취급하며 비용을 줄이고, 15%의 낮은 수수료율을 유지하며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대신 연회비와 PB 브랜드 커클랜드를 통해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온라인 대비해서도 경쟁력을 갖춘 가격은 물론, 매력적인 해외 상품들과 다양한 델리 먹거리까지 갖췄으니 고객이 몰릴 수밖에요.
한편 트레이더스는 이러한 코스트코식 성공 방식의 뼈대는 유지한 채 한국식 특성을 가미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가격 전략은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회비 없는 창고형 할인점을 표방한 것을 제외하곤 코스트코와 판박이입니다. 최대 10만 개에 달하던 대형마트의 SKU 수를 5,000여 개로 과감히 줄였고요. 티 스탠다드라는 자체 PB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이라는 2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시장 특성을 고려하여 신선식품을 강화한 것이 포인트인데요. 그 덕에 이마트보다도 12% 높은 42%의 매출이 신선식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축산 비중이 15%로 전체 1위인데, 이마트 때부터 다져온 공급망을 기반으로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고요. 더욱이 이와 같은 신선식품 경쟁력은 온라인과의 경쟁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온라인 채널이 신선 쪽에서는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는 높은 매장당 매출과 여전히 출점 여력이 크다는 측면에서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고 볼 수 있는데요. 코스트코는 5조 원을 바라보는 매출에도 매장이 고작 16개에 불과하고요. 이보다는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트레이더스도 이마트 대비 2배 이상의 점포 매출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높은 매장 효율성은 온라인과도 비용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실상 추가 출점이 어려운 대형마트와 달리, 창고형 할인점은 여전히 확장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합니다. 코스트코는 내년 오픈 예정인 김해점을 필두로 청라, 고척 등에 신규 출점을 계획 중이고요. 이미 20개 점포를 운영 중인 트레이더스는 2030년까지 무려 50개까지 점포를 늘리고 10조 원 매출에 도전한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즉 양적인 성장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창고형 할인점은 앞으로도 쭉 오프라인의 희망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창고형 할인점에도 온라인은 필요합니다. 이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채널의 구분이 무의미하고, 얼마나 통합적인 경험을 제공해주냐가 핵심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스트코조차 신선식품의 온라인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이커머스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코스트코 사업의 본질인 비용 관리를 통해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만 유지하면 채널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거죠. 더 나아가 그러한 본질을 지키기 위해선 온라인 채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기도 하고요. 또한 반대로 온라인 채널에서 창고형 할인점을 보완재로 선택한 사례도 있습니다. 알리바바가 허마X회원점을 오픈하면서,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신유통을 창고형 할인점까지 확장하는 실험을 시작한 건데요. 이는 곧 창고형 할인점이 단순히 오프라인 유통의 대안이 아니라, 온라인과 결합될 때 더 큰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국내에서도 대형마트의 역할을 확장하여, 다크 스토어 형태로 활용하는 등 온오프라인 채널을 결합하여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유사한 관점에서 유통기업들은 단순히 창고형 할인점을 확장하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창고형 할인점이 이커머스와 연계될 때 어떠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