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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Sep 27. 2021

DOOH의 힘은 오프라인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보여준 아르떼 뮤지엄 제주

날씨 흐려 방문하게 된 아르떼 뮤지엄 제주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었습니다 (출처: 아르떼 뮤지엄)

 모처럼 여행을 떠났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거나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면 맘이 좋지 않습니다. 지난여름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제주도가 그랬습니다. 여행 일정 거의 대부분을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하며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에겐 플랜 B가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를 대비하여 실내 공간을 갈만한 데를 몇 군데 찾아둔 것인데요. 그중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 아르떼 뮤지엄 제주도 있었습니다.



수상하다 수상해!

 그런데 이거 뭔가 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일단 위치가 너무 외진 곳에 있었는데요. 이 때문에 코스 짜기가 조금 애매했습니다. 숙소랑도 거리도 멀고, 다른 관광 명소를 들렀다 가기에는 동선이 꼬일 것 같았거든요. 내비게이션 상으로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길도 뭔가 좁고 험해졌습니다. 이거 무슨 박물관이 있을 법한 곳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보기만 해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게 딱 느껴지지 않습니까 (출처: 카카오맵)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박물관의 첫인상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최근 박물관, 미술관 등은 안에 있는 전시물도 신경 쓰지만, 공간 자체에도 힘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 건축가를 초빙해, 건물 설계를 맞기 기도 하고요. 혹은 의미 있는 공간을 개축하여 활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르떼 뮤지엄 제주도 나름 의미 부여를 할만한 스토리가 있긴 했습니다. 소개 글에 따르면, 원래 스피커 제조공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전시 공간으로 다시 꾸민 거라고 하더라고요. 미디어 아트와 스피커라, 뭔가 연결하면 재미가 있을 수도 있어 보이지 않나요? 


음 근데 스토리는커녕 그냥 창고였습니다 (출처: 필자)


 하지만 일단 주차장부터 뮤지엄스러운 건물은 보이지 않더군요. 이렇게 생뚱맞은 곳에 차들만 엄청 드나들고 있었고요. 사람들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공장도 아니라, 가건물 창고 같은 느낌이었고요. 오던 길부터 건물까지 정말 수상함이 가득했습니다. 기대했던 스피커 공장에서 나온 스토리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은 기가 막히더군요

 이처럼 무언가 기대감이 많이 낮아진 데로 입장한 아르떼 뮤지엄 제주. 허름한 외관에 실망한 마음은 입장 후 곧 180도 달라졌습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공간의 힘이란 정말 대단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사실 모든 전시에 감탄을 보냈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래 공식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 보면 화면인 게 아무래도 티가 나기도 하고요. 보다가 그냥 바로 지나친 작품도 있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었고요. 덕분에 말 그대로 오롯이 관람시간 내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사진과 살짝 다르긴 했지만 정말 멋있고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출처: 아르떼 뮤지엄)


 특히 무엇보다 아르떼 뮤지엄 제주가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같이 갔던 일행들 중에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사진들이 예쁘게 나오자, 그 뒤로는 엄청 열정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좋은 스팟을 찾아 포즈를 취하고 인증샷을 찍는 이들도 넘쳐났고요. 확실히 잘 만든 콘텐츠가 주는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까는 허름하다고 무시했던 창고 같은 공간이 힘을 발휘하더군요. 천장도 높고 넓이도 광활하다 보니 미디어아트가 주는 압도적인 경험을 담기에 오히려 제 격이었던 겁니다.


체험형 공간이 주는 매력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출처: 필자)


  하지만 관람 내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이상하게도 대형 전시물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기자기했던 '나이트 사파리'였습니다. '나이트 사파리'는 아르떼 뮤지엄 제주를 대표하는 체험형 전시 콘텐츠였는데요. 주어진 밑그림에 색을 입혀 전송하면, 스크린에 해당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위에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다채로운 모습의 동물들이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요. 아이들은 물론, 어르신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체험형 콘텐츠가 주는 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입지도 인테리어도 초월하는 힘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르떼 뮤지엄은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 모을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말씀드렸던 입지와 외관, 기억하시나요? 장소도 관광 명소라 하기에는 너무 외진데 있었고요. 최근 트렌드와 동떨어진 허름한 건물 모습까지 조건들은 하나 같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곳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든 곳은 바로 디스트릭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통해 혁신적인 공간기반 사용자 경험(UX)을 디자인하는 디자인 회사라 정의하는데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가지고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주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스트릭트의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분야가 DOOH(Digital Out Of  Home)입니다. 


 DOOH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OOH(Out Of Home)이라고 칭하던 옥외광고에 디지털을 가미한 것인데요. 기존 옥외광고와 달리, 표현의 제약이 없다는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시공간적, 혹은 물리적 환경을 초월한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고요. 앞서서 소개해드린 '나이트 사파리'처럼 상호교감이 가능하다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디스트릭트가 만든 DOOH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웨이브'입니다. 코엑스의 거대한 LED 스크린에 펼쳐진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해변으로 떠나지 못한 이들이 도심에서 파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요. 외신에서 취재를 올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높은 점수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르떼 뮤지엄도 같은 연도에 수상을 했다고 하네요)


도심 속에서 파도를 느끼게 해 주었던 '웨이브'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출처: 디스트릭트)


 이처럼 검증된 전문가가 만든 아르떼 뮤지엄 제주. 이곳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할 정도로 명성답게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의 수준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DOOH가 품고 있는 가능성이었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입지 조건을 뛰어넘는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있더라도, 멋진 자연 풍광이 있다던가요. 아니면 건축물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르떼 뮤지엄 제주는 그 둘에 모두 해당되지 않습니다. 입지 환경은 특별할 게 없고요. 설비 투자 역시 적지 않게 했겠지만 아예 멋들어진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보단 적게 들었을 게 확실합니다. 또한 건물은 한번 만들면 다시 바꾸기 어렵지만, 미디어 아트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상대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즉 방문객들이 단발성으로 방문하고 끝이 아니라, 마치 극장처럼 지속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설비 투자와 달리, 미디어 아트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기술력은 쉽게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우위도 일정 기간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근래 들어 온라인이 뜨면서 오프라인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온라인 대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오프라인 공간들은 크게 2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로컬라이징을 통해, 그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던가요. 아니면 아예 압도적인 공간을 통해, 감동적인 경험을 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전자가 로컬 비즈니스를 잘 구현한 사계생활이라면, 후자는 상반기 최대 히트작 더 현대 서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로컬라이징은 규모를 갖추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고, 반면에 압도적인 공간 구성은 너무 많은 초기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DOOH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지만, 확실히 투자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요. 로컬라이징보다는 더 광범위하게 집객을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남은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프라인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오프라인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놓쳤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미 DOOH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활용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롯데가 그룹의 미래를 걸고, 집중하는 전략 매장입니다. 여기서 디스트릭트의 히트작 '웨이브'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디스트릭의 대표작 웨이브를 들여왔으나, 활용하는 방식은 아쉽습니다 (출처: 아주경제)


 아직은 유통업계에서 DOOH에 거는 기대가 낮아서 그런지 활용하는 방식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곳곳에서 이를 만나볼 순 있었지만, 스크린이 작아서 압도적인 경험 자체를 느끼기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왕 협업하는 것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여 거대한 스크린을 제작하고, 기존 작품이 아니라 동탄점을 잘 알릴 수 있는 맞춤형 콘텐츠를 의뢰했으면 명소로 거듭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넥센 R&D 센터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는 회사의 브랜딩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현대카드 다이브)


 오히려 신기하게도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은 기업의 홍보실들이었는데요. 대표적으로 넥센의 경우 2019년에 새로 만든 R&D센터 넥센 유니버시티에 가로 30m, 세로 7m 규모의 미디어아트를 설치하여 방문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넥센타이어의 경영철학과 핵심가치를 담아 영상을 제작했다고 하네요. LG CNS도 2020년 3월 본사 1층 커뮤니티 센터에 디스트릭트와 협업하여 '비트'라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하며 동일하게 이를 브랜딩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DOOH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적용하는 사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지만요. 이와 같이 여전히 단순 브랜딩이나 홍보 목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미디어아트는 아르떼 뮤지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체적으로도 판매가 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오프라인 커머스의 숙원인 더 많은 집객에 주요한 역할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DOOH가 바꿀 오프라인의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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