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시장에 접근하는 공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 해 이커머스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건, 역시 명품 플랫폼들이었습니다. 대형 스타들을 내세운 TV광고를 선보였고요. 급기야 앞다투어 거래액 신기록을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상위 3개 플랫폼이 모두 거래액 3,000억 원을 넘겼을 정도로 역대급 한 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늘어난 거래액만큼 적자도 같이 증가했다는 겁니다. 빠른 외형성장 대신 내실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이커머스식 출혈 경쟁, 계획된 적자 모델이 명품 플랫폼 경쟁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쟁 양상을 둘러싸고 우려의 시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존, 쿠팡과 달리 명품 시장에서도 계획된 적자 모델이 통할 거냐를 두고 이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쿠팡은 되는데, 명품 플랫폼은 왜 안 되는 걸까요? 우선 '계획된 적자' 전략이 통하려면, 시장 점유율이 커질수록 경쟁자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고객의 충성도는 올라가야 합니다.
그 유명한 아마존 성장 플라이휠이 여기서 나왔는데요. 시장 지배력이 커질수록, 더 많은 상품을 더 저렴하게 공급 가능하고, 이에 따라 고객 경험이 개선되고, 더 많은 고객이 플랫폼에 모이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아마존이 초기 적자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이러한 성장 플라이휠을 돌림으로써, 시장을 장악하고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품 시장은 그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아무리 트래픽이 늘어나더라도, 플랫폼이 주도권을 가지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왜냐하면 상품을 공급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무조건적으로 우월한 입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이미 오프라인에서도 검증된 바 있습니다. 백화점들과의 파워 게임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이미 완승을 거둔 바가 있거든요. 아무리 적자를 내서 고객을 모으더라도, 브랜드가 더 많은 상품을 더 저렴하게 경쟁 채널에 제공하면, 바로 고객은 떠나가게 되는 것이 명품 시장입니다. 따라서 명품 플랫폼들도 건실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자신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캐치패션입니다. 적자 경쟁이 계속될수록, 캐치패션이 추구하는 사업모델이 더 빛을 발할 거라는 자신감인데요. 도대체 캐치패션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명품 플랫폼들과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요?
우선 일반적인 명품 플랫폼은 직매입 혹은 오픈마켓 모델을 택하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 중간 유통업자인 부티크나, 해외 백화점 등에서 직접 상품을 매입해 오기도 하고요. 부티크나 병행 수입 셀러들을 플랫폼에 입점시켜 판매하고 중개 수수료를 수취하는 모델입니다. 직매입은 물론이고, 오픈마켓 형태에서도 재고나 가격 통제권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TV 광고 이후 외형 성장을 위해 주요 업체 모두 병행 수입 비중을 크게 늘렸습니다. 거래액을 키우려면 팔 상품이 있어야 하니까요.
대신에 재무 건전성은 악화되었는데요. 우선 명품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반드시 가격 비교를 거쳐 구매를 결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최저가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였고, 이를 위해 막대한 쿠폰 비용을 태웠습니다. 더욱이 고객이 원하는 인기 상품 품목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있는 셀러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도 여러 메리트를 줘야 했고요.
반면 캐치패션은 명품 애그리게이터를 표방하며, 일종의 메타 쇼핑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사의 상품 DB를 모아 비교하여 보여주고, 고객이 구매하면 파트너사로부터 일종의 수수료를 수취하는 형태이고요. 여기에 캐시백이나 카드 제휴 할인 등을 붙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아예 다른 명품 플랫폼들과는 사업 모델이 태생부터 다른 겁니다.
그래서 캐치패션은 작년 거래액 신기록 경쟁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메타 쇼핑이라는 사업 특성상, 재고나 가격 통제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트너사의 재고를 특별히 당겨올 수도 없고, 자체 쿠폰을 붙여 최저가를 만드는 것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만약 파트너사와 협의 없이 마음대로 쿠폰으로 가격을 꺾으면 계약 위반이었거든요.
이와 달리 경쟁자들이 병행수입 비중을 늘려나가자, 상대적으로 거래액 규모로는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치패션은 거래액 경쟁에 끝까지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가품 논란이 없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고, 한번 병행수입 상품을 입점시키면 현재의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관계를 앞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상품 공급 루트가 다양해지면, 결국 캐치패션이 추구하는 100% 정품 보증도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캐치패션은 빠른 성장보다는, 늦더라도 조금 더 안정적인 길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안전한 정품 공급 구조는, 가품 이슈가 시장을 뒤흔드는 상황 속에서 차별화된 요소로 확실히 고객에게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캐치패션이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파트너사의 세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협의를 통해 특가상품을 확보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을 제공하면서도, 효율적인 수익구조 확보가 가능합니다. 당장의 거래액 성장은 더딜지언정, 요즘과 같이 적자 기업의 생존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는 매우 적합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무조건 올바른 선택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당장의 거래액 규모 경쟁에서 밀리면서, 소비자의 인식 속에 확실히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품 하면 연상되는 플랫폼으로 캐치패션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들의 수는 확실히 적으니까요. 이러한 낮은 브랜드 인지도는 캐치패션이 지향하는 명품 애그리게이터 모델에서도 매우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충분한 트래픽이 모이지 않는다면 글로벌 파트너사가 캐치패션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파트너십 자체가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경쟁 역량이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사에 기대고만 있으면, 계약 변동에 따라 플랫폼의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가격 결정권도 없고, 인기 상품 물량 확보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치명적인 요소입니다. 바로 저 2가지가 기존 명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유명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잘 팔리는 상품은 정해져 있고요. 결국 해당 상품의 물량을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저렴하게 확보하여 판매하느냐에 따라 플랫폼의 우위가 결정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불리한 환경 속에서 캐치패션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으려 하는 걸까요? 캐치패션이 당장의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콘텐츠 기반 큐레이션'입니다. 우선 타 명품 플랫폼 대비 캐치패션이 가진 강점은 정품 보증이 확실하다는 것과 15,000여 개 브랜드, 350만 종이나 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상품 구색입니다. 하지만 일단 온라인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경우, 가품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정품 보증 자체가 아주 강력한 요인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캐치패션은 오히려 가격 비교에서 자유로운 해외 컨템퍼러리 브랜드 상품 구색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경쟁 플랫폼은 물론, 백화점 같은 오프라인 매장보다 더 구색 측면에서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인데요. 꼭 인기 품목이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상품이 많으니 이를 콘텐츠로 널리 알려 고객의 구매를 유도한다는 전략입니다.
사실 명품 브랜드라는 범주 자체가 최근 몇 년간 확장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정말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로 대표되는 하이엔드 브랜드 만이 명품 브랜드로 취급받았다면, 요새는 MZ세대 사이에선 가격은 다소 낮지만 특징적인 디자인을 지닌 신명품 브랜드가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미, 메종 키츠네, 메종 마르지엘라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을 소비하는 주 고객들은 늘 새로운 트렌드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치패션은 이러한 소비자들을 공략하여, 아직 국내에선 덜 알려진 해외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신명품화'를 리딩 하는 역할을 맡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인 셈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결국 핵심은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여러 콘텐츠들을 자체 제작하여 제공하며 역량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패션 매거진이 했던 역할을 캐치패션이 하는 셈인데요. 브랜드의 최신 트렌드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소개하며 고객의 흥미를 끕니다. 매거진과의 직접적인 차이점은 콘텐츠로 소개한 상품을 바로 하단에서 구매 가능하다는 점이겠지요.
그리고 앞으로 콘텐츠 큐레이션 역량이 일정 부분 이상 쌓인다면, 명품 플랫폼과의 경쟁은 물론, 파트너사와의 장기적인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트래픽 측면에선 대체재가 많지만, 이렇게 명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콘텐츠 기반 큐레이션이 가능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공동 프로모션 진행, 시즌 세일 연계, 단독 캐시백 이벤트 등이 확대될 것이고요. 이러한 추가적인 고객 혜택들이 곧 타 플랫폼 대비 가격 경쟁력 확보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캐치패션의 노림수입니다.
물론 캐치패션이 택한 전략에도 당연히 허점이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 예상되는 여러 어려움들이 산재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파트너사로부터 수취하는 수수료율 자체가 10% 이상으로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하고, 앞서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쿠폰 비용 또한 효율적으로 사용 가능한 구조이긴 합니다. 다만 메타 쇼핑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거래액 대비 실질 매출액 비중이 낮기 때문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돌고 돌아 결국 거래액 성장이라는 챌린지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캐치패션도 이러한 과제는 잘 알고 있지만, 당장은 우선 플랫폼의 기초 체력을 쌓는 게 우선순위라고 판단한 상황이라 합니다. 그래서 플랫폼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콘텐츠 강화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패션뿐 아니라, 리빙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 덕에 작년엔 월별 거래액 기복이 심했지만, 올해는 완만하되, 대신에 꾸준하게 성장 중이라 합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캐치패션에게도 분명 스케일업이 요구되는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다만 아무리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성공하지 못합니다. 오직 준비된 곳에게만 기회가 찾아오지요. 캐치패션은 작년 11월 '판가이아'라는 친환경 브랜드의 국내 진출을 돕는 등,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글로벌 브랜드를 발굴하여, 신명품 브랜드로 성장시켜가는 역할을 점차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고, 유니크한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해 나간다면, 캐치패션이 꿈꾸는 건실한 스케일업의 꿈도 언젠가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 글은 캐치패션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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