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베팅은 다 이유가 있어서 가능한 겁니다
네이버 창사 이래로 최대의 규모의 빅딜이 성사되었습니다. 무려 2조 3,441억 원이라는 거액을 베팅하여 네이버가 북미 최대 C2C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한 것인데요. 국내 기업의 해외 유명 스타트업 인수라는 낯선 사례인 데다가, 역대급 규모까지 더해져 정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인수 소식이 알려진 직후 주주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인수 소식이 발표된 당일 네이버의 주가는 8.79%나 급락하며 장중 52주 신저가를 새로 기록하기도 했고요. 고환율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의사결정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때문에 너무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는 식의 부정적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작년 엣시가 비슷한 포지션의 디팝을 16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이보다 매출이 5배 큰 포시마크를 12억 달러에 인수한 건 잘 산거라는 옹호론도 존재하긴 하고요. 그리고 당연히 네이버 역시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손익을 계산한 후에 인수 결정을 내리긴 했을 텐데요. 이미 이번 인수를 숫자적으로 평가한 좋은 아티클들은 많이 있으므로, 조금 더 사업 전략인 관점에서 네이버 경영진이 이번 포시마크 인수 배경을 유추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10월 4일 네이버 주가의 급락은 포시마크 인수 소식이 끼친 영향도 있긴 했지만, 씨티증권의 매도 의견이 담긴 리포트가 결정타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씨티증권은 네이버가 카카오나 쿠팡과의 경쟁으로 인해 광고 부문이나 패션 카테고리에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고, 스마트스토어의 점유율이 더욱 하락할 위험 요소가 존재하며, 인건비를 유연하게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 전망이 어둡다고 평가하였는데요. 이번 포시마크 인수 역시 이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네이버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 성공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특히 네이버는 그간 참여형 커뮤니티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로 큰 성공을 거둔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는 유사한 모델인 C2C에 베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검색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네이버는 참여형 서비스였던 지식iN 서비스로 반전을 일으키며 검색 점유율 1위 사업자로 등극하였고요. 커머스 영역에서도 스마트스토어라는 SME 셀러들을 위한 서비스를 출시하며 성공을 거두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서비스들의 특징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없이 자산을 최대한 가볍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요. 포시마크의 사업 모델은 최수연 네이버 CEO가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Asset Light Commerce(자산을 가볍게 가져가는 커머스)'라는, 네이버의 전략적 방향성과 완전히 부합합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번 인수야말로 아마존 같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보다 자본도 기술력도 열위에 처한 네이버에겐 정말 딱 맞는 선택이라 평가할 만한 거죠.
또한 C2C 커머스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 왔다는 점 역시 이번 인수 성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네이버는 이미 내부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중고나라를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고요. 크림이라는 리셀 플랫폼을 조 단위 거래액 규모까지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스페일 왈라팝에 투자하는 등 글로벌 C2C 경험까지도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특별한 시장 지배자가 없는 C2C 영역에서 만큼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가지고 있는 크림 등을 가지고 해외로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인수라는 방식을 택했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무엇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신생 시장을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의 속도와,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역으로 플랫폼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시점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자본적 여유만 있다면 인수라는 방식은 시장 내 점유율을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인데요. 가장 큰 허들이라 할 수 있는 인수가격마저 시장이 겨울을 맞이하며 지불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놓칠 수 없는 호기라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과거 네이버는 국내 시장에 진출한 빅테크 기업들과 수없이 경쟁하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면서 만든 네트워크 효과의 무서움을 체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늘 당하던 입장을 넘어서, 먼저 글로벌 서비스로 거듭나는 기업이 되겠다고 결심한 거 아닐까요?
물론 떨어진 주가가 말해주듯, 네이버의 앞길은 결코 장밋빛 만은 아닐 겁니다. 아니 오히려 단기적으론 여러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시선을 익히 알고 있기에 네이버는 인수 소식을 발표한 당일, 기자 간담회를 열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는데요. 네이버는 특히 비용적인 측면의 개선 효과를 강조하였습니다. 포시마크의 주식 상장 폐지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고, 네이버 인하우스 솔루션 대체를 통해서도 추가적인 수익 개선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러한 성과를 단기간 내에 거두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네이버 생태계의 솔루션이 국제적으로 탁월한 경쟁력을 지녔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서로 다른 서비스의 인프라를 통합하여 효율을 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와 함께 내세운 네이버의 또 다른 전략인 광고 매출의 도입 가능성은 상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긴 합니다. 네이버는 시장 최저 수준의 수수료 혹은 아예 무료 수수료로 서비스 트래픽을 확보하고, 여기에 광고 BM을 붙여 수익을 올리는 방법에 매우 능숙합니다. 이와 같은 노하우를 적극 활용한다면 근시일 내에 성공적인 광고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일 가능성이 농후하고요. 네이버의 로드맵처럼 정말 포시마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C2C 시장을 장악한다면 이러한 수익은 스노우볼처럼 급격히 커져나갈 겁니다. 이처럼 포시마크 인수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해보며 네이버는 확실히 국내 1위 테크 기업답게 정말 스케일이 남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는데요. 국내 IT기업 전체 생태계를 위해서도 이번 인수가 정말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