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는 단지 시작점에 섰다는 걸 의미할 뿐입니다
지난 9월 14일 SSG닷컴이 작년 6월부터 진행해온 오픈마켓 사업을 단계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SSG, 아니 신세계 그룹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걸어온 행보를 돌이켜 보면 이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신세계가 온라인에서 쿠팡, 네이버와 한 판 붙어보기 위해 이베이코리아 인수라는 과감한 한 수를 두었던 건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후 실적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인수 시너지를 내기엔 여전히 교통정리라는 큰 숙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사업 재조정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SSG닷컴의 오픈마켓 사업 철수는 비록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올바른 의사결정이라 평가할만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교통정리와 사업 영역 통합 자체는 단지 반등을 위한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SSG가 승자의 저주에 빠진 거 아니냐는 우려를 씻고, 인수 결정 당시 꿈꿨던 디지털 전환을 이루려면 아직 갈 길이 먼데요. SSG가 반등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앞으로 SSG가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려면 무조건적으로 네이버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두에서 교통정리와 통합이 SSG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한 이유도, 이를 위한 추진력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모으기 위함인데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활발히 벌어지던 당시 참전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네이버와 카카오가 막판에 발을 뺀 것도 G마켓, 옥션의 네이버 의존도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네이버에 의존하는 것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네이버 쇼핑 검색을 통한 유입은 달콤합니다. 거래액을 금방 키워주니까요. 하지만 이는 독이 든 성배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이 먹으면 탈이 납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자체적인 플랫폼 파워를 계속 잃게 되고요. 장기적으로는 셀러들의 스마트스토어 이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와 브랜드스토어를 키우며 자체적인 오픈마켓 사업의 비중을 늘려가는 상황 속에서 결국엔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협력 관계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네이버로부터 독립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자체 채널, 특히 앱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과거 이베이 시절에 이미 G마켓 등은 네이버에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바 있습니다. 네이버와 갈등 끝에 상품 DB 공급을 중단했다가, 실적이 떨어지자 다시 재개하였거든요. 반면 쿠팡은 달랐습니다. 쿠팡도 한 차례 네이버에 상품 공급을 중단했다가 다시 원복 한 적이 있긴 한데요. 실적 부진에 떠밀린 의사결정이라기보다는 거래액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쿠팡에겐 네이버 쇼핑을 거치지 않고 오직 쿠팡만 찾는 앱 이용 고객을 이미 2019년 초에 천만 명 이상 확보하고 있었거든요. 최근에는 이러한 숫자가 무려 2,700만 내외를 기록하고 있는데, 쿠팡 위에는 카카오톡, 네이버, 유튜브 정도만이 더 높은 순위에 자리 잡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SSG닷컴, G마켓, 옥션의 앱 방문자 수 추이는 어떨까요? 아이에이지웍스 모바일인덱스HD 기준으로 작년 1월부터 정체 혹은 오히려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SSG가 다소 분전 중이지만 여전히 규모가 너무 작고, 덩치가 큰 G마켓과 옥션은 오히려 방문자가 줄고 있고요.
특히 무엇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업계 선두주자인 쿠팡과의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1월만 하더라도 쿠팡의 MAU는 범 SSG 플랫폼 대비 1.75배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2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어떻게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남길 앱을 정하고, 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SSG는 기본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상품과 배송인데요. 경쟁력 있는 상품을 확보하고, 배송 서비스 변화를 통한 고객 경험 혁신이야 말로 플랫폼 파워를 키울 수 있는 가장 정석적인 접근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SSG는 대형마트 시절 쏠쏠하게 써먹던 최저가 싸움을 통해 승부를 보려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격 경쟁의 주도권마저 쿠팡 등에게 넘어간 상황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여전히 가장 잘하는 분야인 상품 개발과 소싱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브랜드와 피코크라는 PB브랜드를 키워내고, 와이너리를 통째로 인수할 정도로 과감한 상품 소싱을 선보였던 능력을 살려 차별화된 상품으로 접근한다면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로켓배송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배송 서비스 개편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이미 SSG는 오프라인 거점이라는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단기간에 막강한 물류 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지금처럼 퀵커머스 사업 하나를 테스트하는데도 이마트와 이마트24 등 사업부 별로 각개전투하는 방식으로는 희망이 없고요. 전사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SSG가 비상하기 위해 갖춰야 할 3가지 요건, 앱 활성화, 차별화된 상품 확보, 배송 서비스 개선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았는데요. 이를 모두 손에 넣으려면 우선 내부의 교통정리와 통합이 이루어지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자원 배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말 할 일이 많지 않나요? 이는 그만큼 SSG, 아니 신세계 그룹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반증하는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골든타임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SSG는 야구단 이름 랜더스처럼, 정말 잘 연착륙할 수 있을까요?